“운문종의 가풍은 빵 먹고 차 마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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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종의 가풍은 빵 먹고 차 마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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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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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선지식들 11

몇 해 전, 한국의 한 선승이 중국 운문산 대각선사(구 운문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화다. 대각선사 방장실에서 불원(佛源) 방장스님과의 필담으로 선문답이 오고 갔다. 먼저 한국의 선승이 물었다.

“운문(雲門, 864~949) 선사의 가풍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불원 스님이 답했다.
“빵 먹고 차 마시는 것, 그것이 바로 운문 선사의 가풍입니다.”
“그렇다면, 다선일미(茶禪一味: 차와 선은 한 맛)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농선병행(農禪竝行: 농사와 참선을 병행함)의 정신, 그것이 바로 차와 선입니다.”예상 밖의 고준한 답변이 나오자, 한국 선승은 다시 자세를 갖추고 필담으로 물었다.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말로써 드러낼 수 없는 것, 그 자체가 선이니 말에서 선을 찾지 마십시오.”

참으로 명쾌한 답변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 선종이 이미 사라졌으리라고 예측했던 그 선승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불원 스님을 깍듯이 대했다는 후문이다. 이 장면처럼, 불원 스님은 큰 법회가 있는 때를 제외하고는 평소에도 거의 묵언을 한다. 임제 선사 방장 유명 스님이 30여 년간 묵언정진을 했듯이, 중국의 80대 고승들은 묵언을 하거나 말을 아끼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공산당 체제 아래서 문화대혁명(1966~1976)과 같은 법난을 통해 엄청난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많이 개방화가 되었지만, 외국 스님들을 만날 경우는 여전히 공안이 감시를 하고 있기에,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 선문답에서 보았듯이, 스님의 답변이 무척 간명한 것은 마치 운문 선사가 한 글자나 단어로 대답하던 가풍을 보는 듯하다. 어떤 스님이 운문 선사에게 “부처와 조사를 초월한 말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데 대해, 선사는 “호떡”이라고 답한 공안이 한 예다. 실제로 불원 스님은 근곀測育�고승인 허운(虛雲, 1840~1959) 대사로부터 운문종의 법맥을 이은 전인(傳人: 한국의 종정격)으로서, 운문종의 개창도량인 운문사 방장을 맡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운문사와 함께 남화사 방장도 겸임하고 있는 불원 스님은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대사의 영골(靈骨: 사리)을 수호한 공로로, 오늘날 중국불교의 어른으로 존경받고 있다. 문화대혁명 중 남화사에 보존된 혜능 대사의 진신사리가 훼손 위기에 처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영골을 구룡천 뒤의 거목 아래 묻어 보존한 것이다. 그 뒤 고(故) 조박초 중국불교협회 회장은 불원 스님으로부터 감화를 입어 조사선(祖師禪)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처럼 혜능, 운문 선사의 선풍을 어렵게 지켜온 불원 스님은 1993년 한국의 숭산 스님이 남화사를 방문하면서 깊은 교류를 맺었으며, 1996년에는 남화사에서 ‘제4회 선종 세계일화(世界一花) 법회’를 공동 개최하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스님은 1995년 5월 19일, 서울 화계사 보살계 수계법회에 증명법사로 초청되어 참석했다. 당시 9일간 전통사찰을 둘러본 스님은 “남화사는 육조 대사의 등신불을 모시고 있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조사스님의 진리를 이어받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1,300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퇴색한 중국불교에도 여전히 ‘선의 종지(禪旨)’가 전해지고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말이다.
현재 중국불교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불원 스님은 허운 대사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참선은 물론 참회겳갰怒ㅑ坪�병행하며, 운문종(雲門宗)의 수행가풍을 이어오고 있다. 당신 스스로 계율을 엄격히 지키면서 대중에게도 이를 강조해온 스님은 사찰의 파괴를 막는 한편, 각종 불사를 직접 일으켜 수십 여 사찰과 불당을 건립했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 계를 주어 불문에 귀의시켰으며, 여러 법회에서 설법과 경전 강의를 통해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허운 대사의 운문종 법맥 이어 묵언정진
1922년 2월 29일 호남성 익양시에서 태어난 불원 스님은 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농사일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7세에 익양 회룡산 서하사에서 지휘(智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19세에 남악 복엄사에서 진청(鎭淸) 화상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스님은 1941년 형양 나한사에서 경학을 공부했는데, 탁월한 경지를 보여 다시 남대사 불학연구소에서 수학하며 연구했다. 한때 도반 3인과 함께 관음성지인 절강성 보타도 낙가산을 참배했는데, 배를 타고 들어간 조음동(潮音洞)에서 결가부좌한 백의관세음보살을 3인 중에서 홀로 친견하기도 했다.
1952년 상해 옥불사에서 허운 노화상이 주관한 세계평화법회를 도와 사부대중이 수계식을 봉행하도록 했다. 이듬 해 항주 정자, 소주 서원에서 화평(和平)법회를 주관한 스님은 곧바로 남통 낭산의 대세지보살 성지를 순례했고,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중국불교협회 창립에 기여한 후 산서성 대동의 운강석굴을 참배했다.
스님은 1953년 운문사 주지에 취임하면서 허운 대사의 입실제자(入室弟子)인 동시에 전법제자[嗣法傳人]로서 실질적인 후계자 역할을 맡게 된다. 허운 대사는 97세부터 103세 사이에 육조 대사의 도량인 남화사에 머물고, 이듬해부터 수년간에 걸쳐 운문종의 본산인 운문사를 복원하였다. 또 115세 되던 1954년, 강서성 영수현의 운거산으로 옮겨가서 진여사를 중흥하고 여기서 주석하다가, 1959년 10월 13일 세수 120세로 입적하였다. 허운 대사는 입적하면서 불원, 법운, 낭요 스님 등에게 운문종 가풍을 전수했으며, 불원 스님이 운문사를 책임지도록 한 것이다.
불원 스님은 육조겳儲�선사의 가풍 그대로 깨달음과 실천을 둘로 보지 않는 삶을 살았다. 1952년 2월 19일 왼쪽 약손가락[無名指]을 태워 부처님 전에 소신공양(燒身供養; 몸을 태워 부처님께 바침)하고 부모와 스승의 은혜에 보답한 것이 한 예다. 1958년, 우익(右翼)으로 오인 받아 박해를 받고 투옥되는 신세에 처한 스님은 이후 3년 만에 석방되었지만, 남화사에서 강제 노동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는 고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스님의 육신은 매우 쇠약해져 고통이 뼈를 가는 듯했다. 여러 스님들이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환속하는 이들이 늘었지만, 스님은 굳은 심지로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날마다 『지장경』을 외우며, 생지옥과도 같은 사바세계가 극락정토로 바뀌어 고통 받는 인민들이 하루 빨리 행복을 되찾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자신의 본성을 단박에 보는 것이 돈오(頓悟)”
불원 스님은 평소 제자들에게 “나에게 한물건(一物: 본래면목)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며 맑기는 해와 같고 검기는 칠(漆)과 같아 활동하는 사이 항상 있으나 활동하는 사이에서 찾을 수 없으니, 그대들은 무엇이라 부르겠는가?”라고 육조 대사가 대중에게 말한, 알쏭달쏭한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스님에 따르면, 참선 대중화의 기반을 닦은 혜능 대사는 결코 몸의 좌선을 강조하지도 않았으며, 마음으로 화두 드는 것도 주창하지 않았다. 다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단박에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볼 것(見性)’을 강조하였을 따름이었다. 이것은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거나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고,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을 돌이켜 확인하면 되는 까닭에 ‘단박’인 것이다. 본래마음인 ‘참나’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스님은 오랜 불사 와중에서도 종풍을 잊지 않고 끊어져 가는 선맥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매년 겨울철 제방의 고승들을 청해 교학과 선방의 계율을 가르치고 정기적인 참선, 석가모니불 정근, 관음정근 법회 등을 열어 총림제도를 유지했다. 천년고찰 운문사는 이제 종교 활동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관광명소이며 해외교류 활동을 전개하는 창구로서, 유원현의 경제건설과 중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스님의 고행과도 같은 원력은 국겞뼁�사부대중을 감동시켰으며, 마침내 공산당과 정부 각급의 지원과 찬양을 받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불원 스님의 일생을 살펴보면 ‘중국에 선사가 없다’는 평이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도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인을 알아보는 눈이 적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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