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한 흑인 사형수? ‘자비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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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흑인 사형수? ‘자비 마스터’!
  • 최호승
  • 승인 2024.07.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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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공모 혐의 누명을 쓰고 30여 년 넘게 사형수로 복역 중인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www.freejarvis.org
살인 공모 혐의 누명을 쓰고 30여 년 넘게 사형수로 복역 중인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www.freejarvis.org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Jarvis Jay Masters). 이번에 편집한 책 『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를 쓴 저자의 이름입니다. 뭐랄까? 저자의 이름을 듣고 막연하게 여러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어벤져스>의 히어로 아이언맨의 인공지능(AI) 비서 자비스부터 <스타워즈>의 제다이 마스터 요다까지. 본격적인 교정교열 전 번역 원고를 한 번 읽고 나니 다른 수식어가 생각났습니다. “자비의 마스터.”

책 서문을 쓴 세계적인 영적 스승 페마 초드론과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www.freejarvis.org
책 서문을 쓴 세계적인 영적 스승 페마 초드론과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www.freejarvis.org

어찌보면 편집자에겐 색다른 인연일지 모르겠습니다. 편집자는 2023년 8월 페마 초드론의 신작 『죽음은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의 서문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 페마 초드론이 썼습니다. 페마 초드론은 또 한 명의 인연과 연결됩니다. 페마 초드론이 자신을 인터뷰하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오프라 윈프리에게 이 책(원서 제목은 That Bird Has My Wings)을 소개한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책을 읽고 나서 “중독, 빈곤, 폭력, 위탁 보호 시스템, 사법 시스템의 희생양이 된 어린 소년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 나에게 깊은 감동을 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면서 북클럽에 선정, 이 책은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됩니다.

“이 주목할 만한 책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희망을 발견하는가?”(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 해당 책을 추천한 오프라 윈프리 ©www.freejarvis.org
북클럽에 해당 책을 추천한 오프라 윈프리 ©www.freejarvis.org

맞습니다. 이 책은 죄의 유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원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삼엄한 사형수 감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볼펜 심지로 눌러 쓴 이 이야기는 누군가 자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저자의 삶 그 자체입니다. 저자는 방치와 학대, 헤로인 중독 등 온갖 폭력적이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 책은 헤로인에 중독된 부모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 위탁 가정의 학대, 범죄에 노출된 삶, 그리고 불교를 포용한 어느 흑인 소년의 성장기입니다. 『톰 소여의 모험』처럼 개구쟁이의 자유분방함과 모험심을,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동심을 지키려는 신념이 저자의 소년 시절에서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온갖 사건들로 비극의 문턱을 넘을 뻔하면서도 넘지 않는 대목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리게도 합니다. ‘그땐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한 인간의 성장기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면 먹먹해집니다. 헤로인에 중독된 엄마를 향한 사랑, 가족들의 보살핌이 부재한 순간에 마주한 상실감으로 드러나는 폭력성이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감옥 샌 퀜틴에서 폭력으로 얼룩졌던 저자의 인생은 두 번째 챕터를 엽니다. 스승 차그두드 툴쿠 린포체를 만났고 불교 신자로서의 삶을 서원합니다. 사형수들이 있는 공간에서 반복되는 폭력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지만, 저자는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서원을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교도관 살인 사건 당시 저자는 감옥에 갇힌 상태였음이 밝혀졌고, 그를 유죄로 만든 증언이 뒤집혔습니다. 사형 판결은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사형수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의 무죄를 믿고 그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지음 | 권혜림 옮김 | 456쪽 | 22,000원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지음 | 권혜림 옮김 | 456쪽 | 22,000원

아뿔싸! 한 편의 소설 같은 이 성장 드라마는 그리웠던 어린 시절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방치한 모든 아이들의 가슴 아픈 성장 일기입니다. 좁은 감옥에서 볼펜 심지로 눌러 쓴 이 회고록은 상실과 위로 그리고 불교에서 찾은 삶의 방향을 고백합니다. 또 폭력에 방치된 아이들의 상실감과 그 상실감을 채우는 어른들의 관심과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성장기였을지도 모를 이 이야기는 이제 어른이 된 우리에게 무엇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되묻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저자의 이름은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입니다. 폭력이 화폐인 감옥에서 불교를 만나 계율을 지키면서 사는 흑인 사형수이기도 합니다.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수로 복역 중이면서도 교도관과 수감자들에게 붓다의 감성을 전하는 존재입니다. 그야말로 ‘자비의 마스터’입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무고한 흑인 사형수라고 쓰고 자비의 마스터로 읽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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