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 창간 50주년] 진여불성의 마음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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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 창간 50주년] 진여불성의 마음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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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7.0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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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불광 ⑦ 1994~1996
20주년 기념 연속 대담 |
대담. 청화 큰스님(곡성 태안사 회주)・이남덕(전 이대 국문학과 교수)

이남덕 

큰스님께서는 48년의 법랍 중 무려 30여 년 토굴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신도 중에는 스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실례의 말씀인 줄은 알고 있지만, 스님의 출가담이나 그동안의 수행담 등을 듣고 싶습니다.

청화 스님 

제 출가담에는 그렇게 흥미진진한 내용은 없습니다. 단순하고 평범하지요. 스물다섯 때 인연 상황이 출가를 안 하면 안 되게끔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회의도 느낄 때였고, 문학도로서 시도 쓰고 그러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출가한 처소가 보통의 대본산이라든가 그런 곳이 아니었고, 그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가장 고행주의로 꼽히는 분이 계신 백양사 운문암으로 출가했습니다. 운문암 생활이란 것은 철저히 원시불교, 부처님 당시의 생활을 따랐습니다.

이남덕 

많은 다른 스님들은 우리 불교의 전통은 화두선이라고 생각하고 이 공안참선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화두선만이 아닌 여러 참선수행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셔서 상대적으로 염불선을 주장한다는 오해도 받고 계신 것 같습니다. 

청화 스님 

나더러 수행방법에 대해서 전통적인 화두선을 안 하고 염불선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염불선을 주장하진 않습니다. 화두선이 참선이 아니라고 한 적도 없는데 다만, 그것만이 참선이고 다른 방법들은 아니라고 하면 그것에는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부처님도 참선을 안 하신 게 됩니다. 또, 달마 스님이나 육조 스님도 참선을 안 한 것이 됩니다. 

화두도 하나의 참선법이고 묵조도 염불도 하나의 참선법입니다. 화두란 중국의 당에서부터 송나라까지 연간에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에는 어떤 참선을 했겠습니까? 아마 그 이전에 참선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달마조사 『관심론』을 보나 『육조단경』을 보면 그때의 참선은 진여불성을 관조하는 법을 참선이라 했습니다. 반야관조라고, 『육조단경』의 마지막 「부촉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그대들이 만약 부처님의 일체종지를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통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화두가 아니거든요. 그것은 일종의 관정이지요. 그렇다면 일상삼매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천지 우주 모든 것을 하나의 부처로 보는 것이에요. 사람뿐만이 아니라 흙이나 동물이나 우주에 있는 일체의 것을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것이 일상삼매입니다.

화두를 든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본래면목 진여불성의 자리, 즉 참다운 지혜와 선정의 정혜쌍수가 돼야지 그렇지 않고 덮어놓고 의심만 하면 화두를 잘못 든 경우가 됩니다. 이런 정혜쌍수의 수행일 때 화두도 참다운 참선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참선과 참선 아닌 것을 우리는 뚜렷이 구별해야 합니다.

이남덕 

스님의 거의 모든 설법집이나 저서들에는 현대 물리학이나 제반 과학, 생물학이나 심리학 등을 다 포함합니다만 특히 현대 물리학에 치중하셔서 불법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현대의 첨단 물리학이 불법과 상통하는지요.

청화 스님 

부처님 법은 아주 철두철미한 과학인 동시에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철학이요, 영생불멸한 행복을 우리에게 보장하는 가장 훌륭한 종교라 생각합니다. 불법의 대강(大綱)은 연기법이요 인연법이 아닙니까? 연기법을 떠나서 불법은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최초로 깨달으신 것도 바로 연기법입니다. 그런데 현대의 물리학에서 가장 큰 강령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상대성이론이란 말입니다. 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이론도 현대 물리학의 핵심적인 이론입니다. 그런 것들이 다 이 연기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법이나 현대 물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일체 존재는 인연을 따라서 잠시 현상적으로 나타날 뿐이지 고유한 존재는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아끼는 몸뚱어리도 인연 따라서 이와 같은 세포가 구성되어서 순간순간 변화, 전변하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지 고유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도가 높다는 다이아몬드는 어떻습니까? 탄소라는 것이 단단한 결합체로 보이지만 실상을 보면 그 안에서 탄소가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가 원소라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다시 전자라든가 양성자, 중성자로 나눕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현대 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들은 하나의 에너지 파동으로 보지 물질이 아닙니다. 에너지란 시간성도 공간성도 없는 것입니다. 이 시간성도 공간성도 없는 것에다가 우리 중생들이 다이아몬드라는, 몸이라는 상(像)을 내는 것입니다. 제로(0)를 몇천 번, 몇만 번 곱해봐야 제로인 것입니다. 그림자를 천번 만번 포개봐야 그림자입니다. 에너지가 만들어낸 이 여러 가지 것들은 그야말로 상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온이란 현상계의 물질 전부와 관념계의 개념 전부가 오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연법으로 본다면 단지 인연 따라 잠시 상을 냈을 뿐인 것입니다. 본래로 상이 없는 것입니다. 본래로 상이 없는데 ‘나’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중생들이 탐진치 삼독심에 가려져 잘못 봐서 분별심을 내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인들이 수행 이전에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내 몸뚱어리인데 그것이 본래 없는 것이라고 하니 쉽게 수긍하지 않습니다. 수긍해도 여전히 아집(我執)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법집(法執)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정치체제 아래에서도 이 아집, 법집이 있다면 참다운 행복도 생활도 없습니다.

이남덕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현대의 물질만능주의랄까 이런 데서 오는 상처들을 치유할 방법으로써 참선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느끼게 됩니다. 

청화 스님 

이 공(空)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얘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싫든 좋든 간에 이 반야 공(空) 소식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 공 소식은 우리가 공부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본래로 공인데 중생들이 번뇌로 낸 상에 걸려서 본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부라는 것은 우선 이 상을 쳐부수는 것인데 상을 쳐부수지 않으면 공부가 안 됩니다. 가령 우리가 기복적인 기도를 올린다고 해도 이 공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비운다고 하듯이 ‘나’라는 생각을 비우고 해야 가피가 훨씬 깊은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지금 암에 걸려 있다고 합시다. 불교에서 보면 이 암균도 공입니다. 천지만물이 다 공인데 이 암균도 공인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다시 말하면 이 암균도 본질은 진여불성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진여불성의 자리에다가 마음을 두고 기도를 드린다고 생각하면 본래로 있지도 않은 것에 암균이라고 상을 낸 것에 불과하므로 그 근본인 진여불성을 앎으로 자연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설사 기도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아도 그 기운은 본래로 하나인 이 우주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원융무애한 하나의 생명, 진여불성으로 된 한 몸이기에 우리가 가령 흙을 오염시키면 당장 그 피해가 우리에게 돌아오듯이 공덕도 나누어집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름에 있어서 출가승은 하기 편하고 재가자들은 하기 힘든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의 사상은 가장 따라 하기 쉬운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기보다 미운 사람을 풀어보는 것이고, 장사하는 사람이 자기 집에 오는 손님을 부처님 보듯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사상을 따라 하는, 바로 반야바라밀을 실천하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순수한 참선을 하거나 생활하는 중에도 영생불멸한 이 진여불성의 자리에 있으면 됩니다.

 

*1994년 8월호(통권 238호)에 실린 당시 곡성 태안사 회주셨던 청화 큰스님과 전 이대 국문학과 교수였던 이남덕의 월간 「불광」 창간 20주년 기념 기획 대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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