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고르고 분별함을 꺼릴 뿐이다 - 에드가 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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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고르고 분별함을 꺼릴 뿐이다 - 에드가 드가
  • 보일 스님
  • 승인 2024.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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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서 찾은 사성제 이야기
에드가 드가, <자화상>(1863), 포르투갈 칼루스테 굴벤키안 박물관 소장

수행자들은 궁극의 진리를 추구하며 뼈를 깎는 자기 극복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이는 고행을 하고,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갖가지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깨달음의 길은 멀고 인생은 짧기만 하다. 그나마 깨달은 스승의 가르침과 덕행에 의지해 그 진리가 현전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 볼 뿐이다. 스승들은 하나같이 그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분별심을 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도’라고 가르친다. 좋든 나쁘든, 숭고하든 추악하든, 귀하든 천하든, 이쁘든 밉든, 그 분별하는 마음이 생기기 이전의 마음에 관해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분별을 해대는가. 때로는 정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치나 종교적 신념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 등으로 서로 구별하고 차별한다. 주관적 기준으로 그 부정적인, 혹은 반대되는 것들을 제거해 나가면 결국에는 원하는 이상적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고르고 분별함을 꺼릴 뿐이다.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분명하게 꿰뚫어 보리라(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중국 수나라 양제 당시, 승찬(僧璨, ?~606) 스님은 『신심명(信心銘, 믿음을 마음에 새기는 글)』에서 후학들이 깨달음에 대해 그릇된 환상을 품지 않도록 경책한다. 

승찬 스님은 분별하는 이분법적 사유로부터 고통이 초래된다고 보고, 그 대립적 경계를 허물어 그 마음속 분별이 시작되는 이전 자리를 참구하라고 설한다. 결국 깨달음은 기나긴 여정 끝에 맞닥뜨리는 ‘결승라인’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끊고 그 마음이 일어나는 그 근원에 자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구분마저도 모두 사라진 그 자리 말이다. 

결국 우리가 좋다 나쁘다, 착하다 악하다, 아름답다 추하다는 것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불이不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마음에 속지 말라[중도中道]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아름다움과 추함, 드러난 환상과 감춰진 현실 등 두 대립된 개념들이 자아내는 긴장감을 통해 인생의 통찰을 전해주는 화가가 있다. 바로 에드가 드가다.  

    

벨 에포크 시대의 양면성
 - 아름다움과 추함의 뿌리는 같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1834년 파리의 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성장하면서 처음에는 파리 명문가 출신들이 선호하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이내 미술로 전향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드가는 다양한 경로로 예술적 영감을 받게 되는데, 들라크루아, 앵그르 등 선배 화가들의 영향은 물론 1856년 이탈리아 피렌체, 나폴리, 아시시, 로마 등지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모사(模寫)를 통해 시야를 넓혀 간다. 특히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유럽 각지의 미술관에서 르네상스 미술과 프랑스 고전주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따라 그리면서 자신이 어떤 묘사를 선호하는지 자각하게 된다. 그것은 움직임과 그 움직임 속에 드러난 곡선이 가진 아름다움이다. 그가 훗날 남긴 각종 발레리나 연작과 경마 연작을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드가가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기는 이른바 ‘벨 에포크(Belle Époque)’와 겹친다.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의미다.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 유럽은 평화 속에서 발전과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드가는 파리에서 만개한 예술적 실험의 중심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벨 에포크’ 시기는 어두운 이면을 동시에 지니는데, 당시 빈부 차이와 불평등은 정점을 찍었고 노동자들과 도시 빈민들의 삶은 처참한 수준을 드러낸다. 드가의 눈에 비친 ‘벨 에포크’의 자화상은 희망과 절망, 풍요와 빈곤, 선과 악이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드가의 작품에는 아름다움과 숨길 수 없는 이면의 고통이 한 캔버스 위에 공존한다. 

일반적으로 드가를 인상주의 계열의 화가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인상주의’라는 말 자체를 싫어할 정도로 자신이 인상주의 화가로 지칭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사실주의’로 자신을 규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드가의 작품 세계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독창적이다. 무엇보다 드가는 인상주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자연 풍경이나 색채에 대한 지나친 강조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러면서도 드가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후견인을 자처하거나 인상주의 전시회에 동참하기도 한다. 이런 면모가 드가를 인상주의 그룹으로 편입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기 쉽지 않은 드가의 면모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다양한 측면에서 여전히 논쟁적이다. 

드가는 젊어서는 고집이 세고 냉소적 성향이 강했지만, 말년에는 르누와르나 마네 등과 교류하며 사교적으로 지낸다. 그는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어 가면서도 커다란 화폭에 파스텔화 작업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1917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벨 에포크와 함께 세상을 떠난다.    

“사람들은 단지 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새로 만들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에드가 드가

아마도 미술사에서 ‘발레’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화가가 드가일 것이다. 평생 드가는 공연을 위해 준비하고 훈련하는 발레리나들의 다양한 모습을 연작 형식으로 담아낸다. 흥미롭게도 그는 발레 공연 자체보다는 무대 이면을 더욱 주목하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긴장감을 즐겨 묘사한다. 

에드가 드가, <스타 무용수>(1876~1877),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소장

특히 <스타 무용수>(1876~1877)에서 프리마돈나가 무대 위에서 홀로 우아한 포즈를 취하려는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다. 무용수는 시선을 극장 천장에 두고 두 팔을 벌리면서 발끝으로 서려는 찰나다. 눈에 띄는 붉고 노란빛의 꽃장식으로 일반 무용수와 구별되고, 목을 장식한 검정 리본 자락이 움직임의 속도감과 도약의 느낌을 더해준다. 이 순간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오직 프리마돈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무대 왼편으로 일반 무용수뿐만 아니라 어두운 그림자가 보인다. 바로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성이다.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얼굴이 커튼 뒤로 가려져 있어 궁금증을 더하는데, 묘한 긴장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아마도 발레리나의 후원자를 자처하는 남자일 것이다. 

에드가 드가, <무대 위의 발레 리허설>(1874),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이처럼 발레리나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은 <무대 위의 발레 리허설>(1874)에서도 발견된다. 발레리나들이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 리허설을 하는 듯 각자가 열심히 동작을 반복연습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마치 ‘신스틸러(scene-stealer)’처럼 두 명의 남자가 다수의 발레리나에 향해진 시선을 빼앗아 자신들에게 고정한다. 한 명은 의자를 돌리고 앉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려는 자신의 욕망을 감추려는 듯 균형을 잡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그마저도 귀찮다는 듯이 위자 위에서 배를 내밀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곡선을 음흉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 하얀 발레복과 검은 양복은 대조를 이루며 순수함과 추악함이 더욱 날카롭게 대조된다. 

드가는 이 그림에서도 태연하게 도사린 긴장감을 찾아내게 만든다. 더불어 발레리나의 아름다움 이면에 고단함과 어두운 인생의 씁쓸함이 묻어난다. 발레리나들을 오직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남성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듯하다. 

“예술은 아름다움으로 고통을 지배한다.” 
- 에드가 드가

드가가 그의 작품에서 묘사하는 것은 긴장감만이 아니다. 그는 벨 에포크의 어두운 이면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소외된 사람들 특히 세탁부들, 매춘부들의 모습까지 담아낸다.

에드가 드가, <카페에서, 압생트>(1876), 오르세미술관 소장
에드가 드가, <다림질하는 여인들>(1884~1886), 오르세미술관 소장

<카페에서, 압생트>(1876)에서는 긴장감이 아니라 그 반대로 권태로움과 피곤, 무력감이 느껴진다. 잠에 취한 것인지 술에 취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두 남녀의 얼굴은 참으로 묘하다. 카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남녀, 여성의 직업이 대충 짐작이 가고 남성은 충혈된 눈으로 무언가를 불만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아래편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신문으로 보아 아침인 듯한데, 이들은 여전히 술집에서 독한 압생트를 마시고 있다. 

드가가 <다림질하는 여인들>(1884~1886)에서 묘사하는 순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여인은 와인병을 쥐고 늘어지게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오른쪽 여인은 고개를 양어깨에 사이로 푹 숙인 채 힘껏 다리미를 누르면서 무언가를 다림질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한 사람은 완전히 풀어져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완전히 조여져 있는 느낌이다. 보는 이는 이 대조가 가져다주는 긴장감으로 인해 시선을 쉽사리 떼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드가는 상반되고 대조되는 현상과 상태를 은밀한 긴장감으로 드러낸다. 결국 그 상반되고 대조되는 느낌은 그의 화폭 안에서 하나가 되면서 애초에 상반될 것도 대조될 것도 더 나아가 대립할 것도 없음을 말해준다. 드가의 말대로 아름다움 이면의 고통, 그 속에 감춰진 냉혹한 현실, 이 모두가 둘이 아닌 하나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통해 다만 그 고통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보일 스님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해인사승가대학에서 경전과 논서를 강의하며, 예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붓다의 지혜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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