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 달마고도의 시작과 끝에서 다시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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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달마고도의 시작과 끝에서 다시 일상으로
  • 송희원
  • 승인 2024.07.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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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 아름다운 절, 미황사] 달마산 둘레길 달마고도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禪)을 전하고,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이름 지어진 ‘달마산’. 땅끝을 향해 남서쪽으로 길게 뻗은 이 달마산에 달마대사가 걸었다던 옛길, ‘달마고도(達摩古道)’가 있다.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관, 미황사와 도솔암, 삼나무·편백나무 숲, 너덜겅 등 온갖 아름다운 풍경은 다 품고 있는 보물 같은 길, 달마고도로 향했다. 

 

원점회귀의 길

땅끝에 꼭 한 번 가봤다. 20대 어느 날, 문득 땅끝을 찍고 다시 시작하자는 호기로운 열정 같은 게 치솟았다. 그 치기 어린 충동이 날 아무 연고도 없는 땅끝으로 이끌었다. 배낭에 여름용 침낭 하나 챙겨 당일 오후에 출발하는 해남행 버스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밤이 돼서야 도착했고, 할 수 없이 터미널 근처 지구대에 들어갔다. 양해를 구하고 그곳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여행 시작도 전에 지쳐 그날 아침 땅끝을 인증하는 땅끝탑만 찍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갔더랬다. 

30대에 다시 찾은 땅끝. ‘국토의 끝을 다시 찍자’는 미션 같은 건 추호도 없었다. 예전의 달뜬 마음과 명분보다는 그저 이곳의 풍광을 충분히 즐기고, 눈에 담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천천히 숨 고르며 해남을 느끼고자 찾은 곳이 바로 미황사에서 출발하는 달마고도였다.

달마고도는 중장비 없이 사람들이 직접 괭이와 호미로 옛 12암자가 있었다던 곳들을 잇고 다듬어 2017년 11월 개통했다. 데크 같은 인위적인 길 없이 제 본연의 모습을 갖춘 자기다운 길이다. 미황사에서 시작해 큰바람재~노지랑골~물고리재를 거쳐 다시 미황사에서 끝난다. 땅끝이 곧 시작의 길이듯, 이곳 역시 시작이 곧 끝이기도 한 원점회귀의 길이다. 

달마산은 일만 부처의 모습을 빼닮은 기암괴석이 솟아올라 멀리서 보면 산세가 험해 보이는데, 그 바위 능선을 두른 달마고도는 전체적으로 오르내리는 게 적어 걷기 평이하다. 1코스 ‘출가길’, 2코스 ‘수행길’, 3코스 ‘고행길’, 4코스 ‘해탈길’ 총 17.74km를 6시간 정도면 수월하게 모두 돌 수 있다. 코스 중간중간 세워진 7개의 표지판에 있는 QR코드를 모바일로 인증하면 해남군청에서 주는 완주인증서와 메달, 배지를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는 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너덜겅 소원탑

출가의 길, 수행의 길 

1코스 출가길(미황사~큰바람재, 2.71km)은 미황사 천왕문 왼편으로 난 길에서 시작한다. 이름표로 제 이름을 알리는 굴참나무, 동백나무, 졸참나무 그리고 삼나무숲을 지나서 노래하는 새들의 호송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서인지 길들이 참 소담하게 나 있다. 

임도가 잠시 나오다가 다시 산길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로 마주친 너덜지대. 달마산 돌들은 대부분 규암(硅岩)으로 이뤄졌다. 이 규암 석이 쪼개지고 흘러내려 군데군데 너덜겅을 형성했는데, 코스마다 이런 지대를 두서넛 지난다. 하지만 길이 잘 정비돼 건너기에 수월하다. 돌들은 대개 분홍빛이나 은빛을 내는데, 너덜겅에는 이런 돌로 쌓은 소원탑들이 여기저기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다. 

2코스 수행길(큰바람재~노지랑골, 4.37km)은 달마산 정상 불썬봉(1.1km)과 대흥사(20.3km)로 가는 분기점에서 시작한다. 해남의 붉은빛 너른 평야와 완도 쪽 바다가 보이며 곳곳이 절경이다. 또한 소사나무, 사스레피나무, 꾸지뽕나무 대규모 군락이 우거져 몸과 마음을 정화해 준다. 

얼마쯤 가자 처음으로 QR코드를 인증하는 ‘관음암터’가 나왔다. 인증 완료 후 계속 걷는데 2코스에서 두 번째로 인증해야 할 ‘문수암터’가 나오질 않는다. 빨리 완주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지나친 건 아닐까, 무엇을 위해 주변 풍경 다 놓치고 빨리 전진만 했을까 후회하며 걷는데, 다행히 ‘문수암터’ 표지판이 나왔다. 그때부터 챙겨온 음료수도 마시고 발걸음을 늦추며 다시 여유를 되찾는다. 

 

도솔암

고행의 길, 해탈의 길

3코스 고행길(노지랑골~물고리재, 5.63km) 달마고도 전체 코스의 중반으로 접어드니, 길 이름처럼 고행이다. 힘차게 걸어온 두 다리에도 점점 과부하가 걸린다. 빨라졌던 발걸음을 다시 늦추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걷는다. 3코스 1/3지점 갈림길에서 암자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달마고도 코스에 포함된 길은 아니지만, 방향을 틀어 암자 길로 오른다. 고작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좁은 비탈을 300m쯤 힘겹게 오르길 20여 분, 나무 그늘이 걷히고 하늘이 열리며 바위 골로 휘몰아치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감싼다. 12암자 중 유일하게 복원된 암자, 도솔암이다.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도솔암은 통일신라 말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기도도량으로 정유재란(1597) 때 명량해전에 패해 퇴각하던 왜구에 의해 화마를 입었다고 한다. 그렇게 빈터로 있던 곳을 법조 스님이 다시 세웠다. 스님은 2002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기도드리던 중, 영몽(靈夢)을 꿨고 이곳으로 와 32일 만에 암자를 지었다. 

아슬아슬한 높은 절벽 위, 석축을 쌓아 올려 확보한 작은 마당에 들어선 작은 법당 한 칸. 온몸이 땀으로 젖어 법당엔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삼배를 올린다. 바다 위로 점점이 멀어지는 배 한 척 넋 놓고 바라보니, 바닷가에서 실려 온 바람이 땀에 젖은 옷을 살랑살랑 말린다. 도솔암에서 낙조까지 보면 좋으련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올라왔던 비탈을 내려간다.

4코스 해탈길(물고리재~미황사, 5.03km)은 미황사 창건 설화에 나오는 검은 소가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간 길이라서인지 다른 코스보다 길이 넓고 우직하게 나 있는 느낌이다. 4코스의 백미는 코스 마지막 지점인 미황사에 도착하기 500m 전에 있는 부도암 옆 부도전이다. 승탑의 조각이 섬세하고 비교적 선명해 보는 재미가 있다. 승탑을 지키는 게, 물고기, 새, 도마뱀을 잠시 감상한다. 완주 완료 시간을 늦춰도 좋을 만큼 시간을 들여 충분히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달마고도 이정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길

1코스 시작부터 4코스까지 세워진 모든 이정표는 길을 나선 출발점이자 도착점 미황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먼 길을 둘러 다시 시작점에 서게 한 달마고도. 땅끝이 그렇듯, 달마고도도 결국 돌아오기 위한 길이었다. 

풀냄새 한 번 맡고 나무에 기대어 땀이 난 등의 열기를 식히는 것, 신발에 들어간 작은 돌 하나 빼내어 다시 길로 향하는 것, 가는 길에 돌멩이 주워 염원 담아 하나씩 쌓아보는 것, 너무 열심히 달려와 목마를 땐 물 한 모금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서는 것, 길을 재촉하다가 잘못 든 길에서 이정표 보고 다시 길을 재정비 하는 것. 다만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것. 달마고도는 한 발 한 발 내딛는 순간들만이 존재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회귀의 길이었다. 

다시 달마고도의 끝이자 시작점에 섰으니, 자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차례다.

 

 

사진. 송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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