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황사의 아름다움은 바라보는 자리마다 다른 미美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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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美황사의 아름다움은 바라보는 자리마다 다른 미美에 있습니다”
  • 김남수
  • 승인 2024.07.0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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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 아름다운 절, 미황사] 대웅보전 해체·복원 불사, 미황사 주지 향문 스님

외국인이 찾는 템플스테이

해남의 미황사를 찾는 외국인들이 제법 된다. 외국인들의 한국 여행은 흔히 도심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굳이 반도 남쪽 끝의 미황사를 찾는 외국인들은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거나 반도 종주를 위해 찾는다. 한마디로 반도 종주의 출발점으로 땅끝마을을 찾고, 미황사는 첫 출발점이 된다.

“미황사를 찾는 외국인들은 자동차로 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와요. 그래서 ‘인천공항에 내려 어떻게 미황사에 갈 것인가’라는 미션이 있다고 해요. 이르면 오후 4시경, 늦으면 9시경에 도착하는데, 70% 정도는 무사히 미션에 성공한다고 합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이역만리의 미황사를 찾아와 그렇게 머물기 시작한 외국인들은 며칠 동안 달마고도를 돌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반도 종주를 위해 동으로는 부산, 서로는 목포, 남으로 제주도로 떠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렇게 미황사를 찾는 외국인들 국적이 60개국이 넘는다. 거의 모든 국적의 유럽인, 미국인이 방문했고, 아프리카에서도 왔다고 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를 안내하고 있는 향문 스님. 미황사 안내견 ‘아미’가 따라다닌다.
보존처리를 한 천불도와 건축 자재는 별도로 보관 중이다.

270년 만의 대웅보전 불사

미황사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것이 달마산을 병풍으로 서 있는 대웅보전이다. 현재는 아쉽게도 대웅보전이 한창 공사 중이다. 미황사가 조선 후기 중창된 후, 270년 만에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복원을 준비하고 있다. 

2021년 초, 미황사 주지로 발을 디딘 향문 스님에게 대웅보전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일이 첫 과제였다. 대웅보전 보수가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주지로 부임했지만, 쉽지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목조 건축을 해체하고 복원하는 일은 1년이면 되죠. 그런데 미황사 대웅보전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보물이고, 법당 안의 천불도(千佛圖)나 단청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종이에 그려 벽이나 보에 붙인 거예요. 
대웅보전 보수는 결정이 됐지만 해체 범위와 시기, 복원 방법을 결정하기까지 4년 넘게 걸렸습니다.”

대웅보전 천 분의 부처님은 20여 군데의 벽면과 보에 붙어 있다. 벽이나 보에 직접 그리지 않고, 종이에 그린 후 이를 부착했다. 천불도뿐 아니라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단청 무늬 역시 나무에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종이에 그린 후 천장의 반자에 붙인 것이다. 학, 연꽃, 실담자 문양 등 이런 그림이 200개를 넘는다.

“언제쯤 천불도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대웅보전 건물은 내년 하반기 정도나 되어야 복원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불도나 반자의 단청은 보존처리를 해 보관하고 있는데, 어떻게 복원할지를 논의 중입니다.” 

이런 경우 ‘복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원본을 직접 붙이는 방법이 최선이겠지만, 복원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이 손상된 원본의 또 다른 훼손이 불가피하다. 천불도 및 단청의 원본을 다시 붙이는 방법과 원본을 현상·모사한 복원 단청을 붙이는 방법 중에 여러 자문을 구하고 논의 중이라 한다.

“다른 사찰처럼 벽에 그리지 않고, 왜 종이에 그려서 천장이나 보에 붙이는 방법을 사용했을까요?”

“나무로 만든 건물에 단청을 그리기 위해서는 나무가 마르고, 자리를 잡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립니다. 이곳이 땅끝마을 오지라 그림을 그리는 화공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종이에 그려 붙이는 게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그런데 대웅보전의 나무는 물론 벽화의 종이나 안료 등 그림의 질은 굉장히 좋아요. 그림은 왕실 건축물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입니다.”

대웅보전을 지탱하고 있는 12개 기둥 중 9개만 남아 있다. 마룻바닥까지 해체됐으니 사실상 전면 해체된 상태다. 향문 스님은 목재만큼은 최대한 살려서 복원할 예정이다. 다행히 대들보를 비롯한 보는 상태가 양호하다. 

“목재만 3,200개가 넘는데 일일이 숫자를 매겨 가능한 것은 최대한 사용할 계획입니다. 조사보고서상으로는 40% 이상 교체가 필요한데, 세부적인 것은 현장의 상황을 지켜봐야 하고요. 처마에서 내려온 흙까지 포대에 담아 두고 있습니다.”

옛말에 건물을 새로 짓는 것보다, 해체하고 복원하는 것이 몇 배는 더 힘들다고 한다. 미황사 주지 첫 소임에 꽤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

 

서산대사 제향(祭享) 사업

향문 스님은 미황사 주지 소임 외에 대흥사 성보박물관장 소임을 맡고 있다. 주력하고 있는 일은 서산대사의 표충사 제향 의례다. 대학원 논문의 주제도 서산대사 관련이다. 

“서산 스님이 1520년에 태어났으니, 올해가 탄생 504주년 되는 해입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참 후인 정조 임금 시대에서나 대흥사에 표충사(表忠祠) 편액이 내려졌고 축문까지 내려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이죠.”

향문 스님은 그로부터 250여 년이 지나 대흥사에 ‘호국대전’을 건립한 것을 강조한다. 대흥사 위로 올라가면 240여 평 규모의 전통 목조건축물이 있는데, 바로 호국대전이다. 

“대흥사에서는 호국대전을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희생된 스님들, 또 산성을 축조하고 지키신 의승군을 추념하는 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명단이 확인된 분만 수천 명이고, 이름 없는 분까지 하면 1만 명 가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법명과 충의(忠義)를 기리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거죠.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의발이 내려온 곳이잖아요? 그리고 조계종의 많은 스님이 서산대사 후손입니다.”

대흥사에서는 ‘표충사 향례보존회’를 구성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산대사 제향의례’를 무형문화재로 등재하고자 한다. 

“정조 임금이 편액을 내리면서 제향 의례가 진행됐는데, 그때는 국가 차원의 의례였죠. 탄생 500년이 지난 지금, 국행(國行) 규모의 제향 의례로 복원 및 지정됐으면 합니다.”

스님은 지역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녔고, 제향 의례에 지역 향교 및 설행위원들이 함께할 것을 요청했다. 몇 년 전부터는 불교식 추모재와 유교식 제향의례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

 

땅끝마을 미황사

미황사는 지난 20년간 불교문화 및 공동체 수행공간으로 꽤 알려진 곳이 됐다. 템플스테이, 산사음악회, 괘불재 등을 통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이름이 났다. 그만큼 향문 스님에게 부담이 컸던 자리가 ‘미황사 주지’ 소임이었다.

“이름 있는 절이었지만 처음 왔을 때, ‘내부 소임자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미황사를 지킨 오랜 인연들이 떠난 자리는 아쉬움의 기억 탓에 오랫동안 남겨졌다. 바로 이어진 코로나19 펜데믹이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에 미친 영향도 꽤 컸다. 그렇게 3년 넘은 시간이 흘렀다. 

향문 스님은 미황사에 대해 두 가지 꿈을 이야기한다. 미황사에 대웅보전의 천불도와 단청을 전시하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미황사만의 테마를 지닌 ‘달마산 미황사 불교문화 유산센터’의 건립을 꿈꾼다. 

그곳에 들어서면 미황사 괘불을 먼저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를 위해 스님은 대웅보전 해체와 보수 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CCTV로 촬영하고 기록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요 장면을 세밀하게 3D로(3차원 공간으로) 촬영하고 있다.

“조계종 중앙종회 문화분과 활동 중, 성보박물관이 축소형 수장고 역할로 끝나는 대다수의 경우를 보며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시민들이 천불도와 단청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동시에 3D로 촬영한 해체보수 과정을 체험하면서, 법당의 소중함을 느꼈으면 합니다. 책도 읽고 차도 마시면서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친근하게 사찰문화를 나눌 수 있는 문화복합센터를 꿈꾸고 있어요.”

조계종 차원에서도 여러 논의가 있지만, 미황사가 그 첫발을 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또 다른 하나는 대웅보전의 해체 보수 불사를 원만히 마치고 템플스테이도 새로 거듭나면서 코로나 이후의 시대정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프로그램된 대중의 수행생활보다 자율적이고 개별적인 절집 생활문화가 중요해졌어요. 스스로 와서 혼자 머무릅니다. 최소한의 지침과 안내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토닥토닥하고 쓰담쓰담하도록 치유하고 회복하는 쉼표를 템플스테이가 담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비추어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마음 건강을 충전하는 ‘템플라이프’, 절집이 그러한 공간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다. 미황사를 느끼기 위해서는 ‘낙조’를 꼭 봐야 한다고. 미황사(美黃寺)의 ‘미(美)’는 소 울음소리고, ‘황(黃)’은 미황사를 창건한 금인(金人)의 색이다. 산내 암자인 부도암으로 가는 길 어귀에서 ‘낙조’를 바라보며 달마산과 미황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눈망울이야 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달마산을 안내하는 강아지로 유명해진 ‘아미’, ‘타미’와 함께하면 더 멋지다.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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