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함께 나누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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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함께 나누는 마음
  • 관리자
  • 승인 2007.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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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겨울도 깊었다. 마른 나무 가지 위로 소담스레 함박눈이 내려앉던 어린 날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이 겨울이 결코 춥지만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지구 전체의 온난화현상 때문에 겨울에도 눈다운 눈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아주 드물게나마 내리는 눈발을 보며 탄성을, 혹은 마음 한구석을 싸아하게 적셔오는 기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수업 중 잠시 바라본 창 밖, 세상의 어느 끝에서 내려오는지 모를 희끗희끗한 눈송이에 환호성를 지르던 아이들의 눈빛이 그리운 계절이다. 그리고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한 학년을 마치고 진급을 하거나 졸업을 하는 때가 다가온다. 해마다 맞이하는 일이지만, 마무리라는 말이 가져다주는 어감은 약간은 쓸쓸하고 또 허전하기도 하다. 특히 다른 학년으로 진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로 발을 내딛는 아이들을 마주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학교 안에서 필요한 것만 배우게 되어 있다. 때문에 졸업이 가져다주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그 동안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 하는 수고를 되풀이 해야 한다. 그만큼 우리의 교육은 실제의 삶, 현실의 삶과 동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결과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얽매이도록 만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갖는다. 겨우내 꽁꽁 언 땅 속에서도 봄은 따스한 온기를 감추며 기다리고 있듯이 이 땅의 젊은이들이야말로 온갖 비인간적인 교육의 틀 속에서도 건강한 자신의 생각들을 기르는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마음으로 나는 졸업을 앞둔 젊은 친구들에게 맹자의 얘기 한 구절을 들려주곤 한다.
맹자가 어느 날 양혜왕을 만나러 갔다. 마침 그 때 양혜왕은 자신의 뜰 안 연못가에 서서 온갖 새떼들과 사슴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맹자에게 물었다.
“어질고 의로운 임금들도 이런 것들을 즐겨했습니까?”
양혜왕의 질문을 들은 맹자가 대답하였다.
“어질고 의로운 임금들이라야 이런 것들을 진실로 즐기는 법이지죠. 옛날 주나라 문왕께서는 맨 처음에 정자를 하나 짓기 위해 터를 잡고 측량를 했습니다. 그러자 나라 안의 백성들이 모여들어 정자를 짓고, 연못도 파고 하여 순식간에 커다란 정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문왕이 어진 임금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도운 것이지요. 완성된 정원에는 온갖 물고기와 새떼들, 짐승들이 즐겁게 놀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임금 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비록 그 정원은 문왕의 것이었지만 문왕은 정원을 자기 혼자의 것이 아니라 백성들 모두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백성들과 함께 즐겼기 때문에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란 말이 있다. 백성들과 함께 즐긴다는 뜻이다. 임금이 올바른 정치를 한다면 모든 것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의 이 일화를 들려주며 나는 우리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 살아가는 자세도 바로 이러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잘못되고 삐둘어진 사회도 올바른 삶의 자세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웃과 함께 나눌 줄 아는 삶이다.
요즘 우리 청소년들의 일회적인 생각과 단순한 생활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햄버거에, 패스트 후드에, 편의점에서 마시는 다른 나라에 상표값을 치러야 하는 온갖 물건들이 우리 청소년들의 생활 곳곳에 배어있다. 그런 일회적이고 단순한 것에 익숙한 습관은 세상의 모든 일을 생각하지 않고 즉각적이고 즉흥적으로 반응하도록 청소년들을 길들인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 알고 남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와 같은 자기 중심적, 이기적 사고들이 참으로 곳곳에 널려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은 우리 아이, 우리 식구만 잘 되면 된다는 가족 이기주의로 이어지고, 세상에 대한 무관심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남을 밟고 일어서는 그릇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배워서 남 주자’는 말이 있다. ‘남 주려고 배우냐’는 말이 흔한 시절에 ‘배워서 남 주자’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배워서 남을 줄줄 아는 자세야말로 올바른 배움의 시작이다. 배워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과 나누어 가질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배움이고 올바른 삶의 자세이다.
창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무기를 어떻게 하면 더 날카롭게 벼려 남을 해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방패가 어떻게 하면 좀 더 단단해서 사람의 목숨을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고 한다.
나만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 더 나아가서는 고통받는 이 땅의 모든 이웃들을, 제 나라의 역사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 땅을 몇몇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나라로 만드는 길이리라. 그리고 그 길은 이제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게 되는 젊은이들의 걸음 걸음마다에서 열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느새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겨울이 겨울답기 위해서는 혹독하게 추워야 한다. 죽어있는 것같은 겨울 들판에서도 봄을 길어올리기 위해 온갖 해충과 추위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추위는 해충을 없애고 봄을 봄답게 하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이다. 추운 사회의 겨울속으로 나서는 우리 젊은 친구들 마음 구석구석에 봄을 준비하는 귀퉁이 하나쯤 남아 있기를 나는 이 겨울에 빌어본다.

최성수: 강원도 횡성에서 출생하여, 국민대, 성균관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전 대신고등학교 교사였으며 현재는 교육문예창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등 시집, 소설집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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