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무량백천만억겁 동안을 몸으로써 보시하더라도
만약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슬리지 아니하면 그 복이 저보다 수승하리니.
어찌 하물며 이 경을 베끼고 받아지니며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하여 해설해 줌이랴.
수보리야, 간추려 말할진대 이 경은 생각할 수도 없고
칭량할 수 없고 가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지송공덕분(持經功德分)」 중에서
『금강경』을 비롯한 숱한 대승 경전에는 경전을 베껴 쓰는 필사의 공덕을 찬탄한다. 반면 대승 경전을 비방하는 행위는 금기시된다. 경전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은 경전의 귀중함과 성스러움을 드러내는 일이다.
종이 발명 이후 대부분의 문자는 종이에 기록되지만, 경전을 쓰는 행위는 성스럽고 무한한 공덕을 짓는 행위이기에 값지고 다양한 재질에 기록하기도 했다.
갑골문(甲骨文)과 나무에 새긴 경전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중국에서는 문자를 거북의 배딱지(갑甲)나 동물의 뼈(골骨)에 기록했고, 이 문자를 갑골문자(甲骨文字)라 한다. 갑골문자는 중국 한자의 원형으로 여겨지며, 기원전 1200년경 처음 등장했다. 제사나 점 등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나무에 경전을 새기기도 했다. 대나무에 새긴 것을 죽간(竹簡)이라 하고, 나무에 새긴 것을 목간(木簡)이라 한다. 충남 부여의 사비시대 왕궁에서 발견된 7세기 목간에는 『논어(論語)』 구절이 기록돼 있다. 이 외에도 신라와 백제 시대 목간이 다량 발견돼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가공한 나무에 글을 새기고, 이를 종이에 찍었다. 고려시대 조성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대표적이다. 이를 목판(木板)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금석문(金石文)
철이나 청동 등 금속에 기록된 문자를 금문(金文)이라 하고, 돌에 새긴 문자를 석문(石文)이라 한다.
이 모두를 합해 금석문(金石文)이라 한다. 기와 혹은 도자기 등에도 글을 새기는데, 이처럼 금속·돌·도자기 등에 새겨진 글을 명문(銘文)이라 칭한다.
돌에 새긴 글 중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사찰 고승의 탑이나 탑비에 새긴 글이다. 1,000년이 지나도 글의 윤곽이 뚜렷하다. 돌에 경전을 일일이 새겨 법당을 장엄하기도 했는데, 구례 화엄사에 소장된 화엄석경(華嚴石經)이 가장 유명하다. 중국에는 북경 근처 운거사에 조성된 방산석경(房山石經)이 이름났다.
금속에 조성된 경전으로 가장 이름난 것이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금강경』이다. 기본적으로 탑은 사리를 모시는 것이고 사리를 모실 때 여러 장엄물을 함께 안치하는데, 『금강경』 역시 장엄물의 일종이다. 제작 시기는 백제, 혹은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경전의 거룩한 말씀은 기와, 법당을 장엄하는 벽돌, 흙을 구워 조성한 그릇 등에도 기록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인 성파 스님은 흙으로 구운 도자에 해인사 소장 팔만대장경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