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의 발견] 간다라에서 전승된 『팔천송반야경』과 대승불교 사상의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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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의 발견] 간다라에서 전승된 『팔천송반야경』과 대승불교 사상의 태동
  • 최성호
  • 승인 2024.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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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경의 출현

대승불교의 출현

붓다의 출생 지역은 인도 동북부다. 고대 인도에서 마가다(Magadha)라고 불렸으며, 오늘날 인도와 네팔 접경 지역이다. 이 지역은 북부 인도에서 베다(Veda) 문화가 가장 늦게 전파된 지역이며, 슈라마나(śramaṇa, 사문沙門)라는 수행자 전통이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지역이다. 붓다는 슈라마나들을 따라서 수행을 시작했고 이후 자신만의 수행법을 개발해 기존과는 다른 슈라마나 교단을 운영했다.

마가다 지역에서 태동한 불교는 점차 교세를 확장하다가 인도 서북부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마우리아 왕조의 3대 황제인 아쇼카(Aśoka)가 불교로 개종하고 불교 교단을 후원한다. 마우리아 왕조가 통치했던 인도 서북부 지역을 간다라 문화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간다라 지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쇼카의 지원 아래 불교는 이 지역에서 사상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등 흔히 북방 아비달마라고 부르는 불교 교단들이 형성됐으며, 인간과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서 다르마(dharma)에 대한 논의가 증가한다. 설일체유부라는 용어도 ‘다르마가 과거, 현재, 미래에 항상 존재한다’라고 주장하는 교파를 의미한다.

‘다르마가 세계를 구성하는 영원불멸의 기본 요소’라는 입장에 반대해 ‘다르마가 궁극적으로는 비존재(非存在)한다’라는 사유가 불교 전통에서 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사유가 대승불교 철학 발전의 핵심 토대 중 하나가 된다. 아비달마 불교가 ‘감각기관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영원불멸한 자아가 없다’는 무아론(無我論)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새로운 사상적 입장은 중생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마저 영원불멸한 실체가 없다며 무아론의 논의 범위를 확장한다.

대승불교 철학은 이 사상적인 전환을 반영하고 있다. 대승불교라는 용어에서 대승(大乘)은 산스크리트어 마하야나(mahāyāna)의 번역어로 ‘큰 수레’를 의미한다. 붓다 본인은 대승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후대의 불교도들이 본인들의 종교적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승’이라는 용어의 유래, 그리고 대승불교의 기원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승불교의 기원을 재가자 중심의 불교 운동 혹은 보살이라는 이상을 지닌 불교 수행자의 엘리트주의로 보는 다양한 시각이 학계에 존재한다. 최근에 ‘큰 수레’를 뜻하는 마하야나가 ‘큰 지혜’를 뜻하는 마하즈냐나(mahājñāna)에서 비롯했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이렇게 대승불교의 기원과 특징에 대한 다양한 학설이 생기는 이유는 대승불교에 관한 기록이 매우 다채롭기 때문이다. 대승불교 경전도 마찬가지다. ‘대승경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는 경전들은 내용상 통일돼 있기보다는 다원적이며 때로는 상충적이다.

 

반야경전

대승불교의 철학적 맹아를 논한다면 반야경(般若經)을 빼놓을 수 없다. ‘반야(般若)’는 산스크리트어로 지혜와 통찰을 뜻하는 쁘라즈냐(prajñā)를 비슷한 발음의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언뜻 듣기에 쁘라즈냐와 반야 사이에 발음상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불교의 전파와 관련 있는 인도 중세언어를 고려하면 이 정도 변형은 충분히 가능하다. 예를 들어 쁘라즈냐는 빨리어로 빤냐(paññā)로 발음된다. 

반야경 계열에 속하는 경전은 매우 방대하다. 한국불교에서 많이 독송되는 『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도 반야경 계통의 경전이다. 그중 가장 초기 형태의 경전은 『팔천송반야경(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팔천 개의 게송으로 설하는 완벽한 지혜와 통찰)이다. 지루가참(支婁迦讖, Lokaṣema)은 기원후 2세기경의 『팔천송반야경』의 한 판본을 한문으로 번역했는데,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이라는 제목으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도행반야경』의 존재를 통해 『팔천송반야경』의 내용이 2세기 이전에 유통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오직 구전(口傳)으로만 전승됐는지 문서의 형태로도 유통됐는지는 『도행반야경』만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학계에 소개된 간다리(Gāndhārī, 간다라)어 『팔천송반야경』을 통해 필사된 경전의 유통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간다리어는 앞서 설명한 간다라 지역에서 사용하던 중세인도어다. ‘아라빠짜나(arapacana)’라고 명명된 42개 알파벳을 사용한다. 

간다라어 『팔천송반야경』, Falk&Karashima (2013), Plate 5.

파키스탄의 개인 소장가에 의해 공개된 이 문헌은 자작나무 껍질에 카로슈티 문자로 기록됐다. 카로슈티 문자는 그리스 문자와 아람(Aramaic) 문자의 영향으로 간다라 지역에서 만들어진 문자며 기원후 3세기까지 이 지역에서 사용됐다. 또한 이 사본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에 따르면, 이 사본이 기원후 1세기 무렵, 아무리 늦어도 기원후 2세기에 작성된 문건이라고 한다. 문자에 근거한 추정 및 사본 재료에 대한 탄소측정을 종합했을 때 늦어도 기원후 2세기 무렵에는 이 사본이 작성됐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이 사본으로 『팔천송반야경』이 늦어도 기원후 2세기 무렵 필사된 경전의 형태로 유통 및 전승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야경은 다양한 형태로 작성되고 유통됐다. 중국에서도 지루가참 이후 쿠마라지바, 현장(玄奘) 등의 역경승(譯經僧)이 여러 차례 반야경 계열의 경전을 번역했다. 그만큼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으로 중요시됐다. 

[도판 1] 네팔에서 출토된 『팔천송반야』 필사본. 1015년 작성했다고 기록돼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장. 

반야경 필사본을 검토하다 보면 후대로 갈수록 반야경 사본이 점차 화려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도판 1’은 네팔에서 출토된 『팔천송반야』 필사본이다. 네빨라(Nepāla) 문자로 기록돼 있다. 1015년에 수자타바드라(Sujātabhadra)가 네팔의 사원인 흐람(Hlāṃ)에서 작성했다고 기록돼 있다. 재료는 보라수스(Borassus) 야자수 잎이다. 필사본에 그림이 삽입되고 사본을 묶기 위한 구멍 주위에 문양이 추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특징 중 하나는 사본을 만드는 것 자체가 열반 성취를 위해 필요한 공덕을 쌓는 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거나 전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덕을 쌓기 위해서 사본을 만드는 경우가 점차 증가한다. 당연히 더 아름다운 사본을 만들수록 더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대승불교 사상

하지만 그렇다고 반야경의 내용이 경시되지는 않았다. 반야경이 담고 있는 통찰은 다양한 대승불교 사상으로 발전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반야경은 중생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다르마도 사실상 비존재한다고 설파한다.

“다르마가 비존재한다”라는 진술을 해석하는 한 가지 방식은 각 다르마가 이름 붙여진 대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대상을 꽃이라고 인식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나에게 꽃의 인식이라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인식대상인 꽃이 나의 의식 바깥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꽃이라고 이름 붙인 대상은 나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도판 2] 네팔에서 기원후 8세기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가사지론』의 「보살지」 사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장. 

대승불교 유가행파(瑜伽行派·yogācāra, 불교 요가 수행을 하는 자)는 이런 철학적 사유를 접목한 수행이론을 개발했다. 그 내용이 현장이 한역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불교 요가 수행자의 다양한 경지)』의 「보살지(菩薩地· Bodhisattvabhūmi, 보살의 경지)」에 수록됐다. ‘도판 2’는 네팔에서 기원후 8세기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살지」 사본이다. 오기하라 운라이(独有雲来)가 이 사본을 다른 사본과 비교 편집해 출판했다. 역시 네팔에서 발견됐으며, 8세기 무렵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살지」에는 “꽃이라는 이름이 주어진 대상이 존재한다고도 할 수 없고, 비존재한다고도 할 수 없다”라는 불이론(不二論)적 사유가 담겼다.

내가 어떤 대상을 꽃이라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꽃’이라는 명칭을 배워서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명칭을 배우지 않고서는 대상에 꽃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언어를 배우지 않은 아이는 꽃이라는 인식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보살지」는 이것을 대상의 본성–불교 용어로 자성(自性)–과 관련짓는다. 언어와 그 언어가 촉발하는 관념의 영향 때문에 대상에 ‘꽃’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꽃이라는 명칭은 대상의 본성에 내재돼 있지 않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명칭이 대상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명칭에 근거한 인식이 대상의 본성에 상응하는 인식이라고 잘못 생각하며 집착한다. 「보살지」는 이런 집착을 가진 자에게는 ‘대상이 명명된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진술함으로써 대상의 존재성에 대한 집착을 깨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인식의 대상이 전적으로 비존재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명칭이 부여되고 여러 가지 관념의 근거가 되는 ‘어떤 것’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수행자는 대상이 명칭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잘못 이해해 ‘인식대상이 전적으로 비존재한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진다. 「보살지」는 이런 잘못된 견해에 빠진 자에게는 ‘명칭과 관념의 근거가 되는 어떤 것은 존재한다’라고 진술함으로써 대상의 비존재성에 대한 집착을 깨도록 유도한다.

이런 설명을 통해서 ‘다르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 ‘색(色)이 곧 공(空)이고 공이 곧 색이다’라는 불이성의 논리 등 반야경에서 볼 수 있는 대승 철학의 맹아가 「보살지」의 단계에서는 명상 수행의 지침서로 전개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반야경의 통찰이 촉발한 사상사적 전개는 이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승불교 철학의 또 다른 한 축인 중관(中觀) 불교는 공성(空性), 연기(緣起), 자성(自性) 등의 개념을 다른 측면에서 정의하고 분석한다.

다양한 언어 및 형태로 사본이 제작되고 유통됐다는 점, 수차례에 걸쳐 중국과 티베트에서 번역됐다는 점, 그리고 그 경전의 내용이 다양한 철학적 사유로 발전했다는 점을 통해서 반야경이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참고문헌

김태우, 『보살지 진실의품에 등장하는 네 가지 심사와 네 가지 여실변지의 사상적 연원과 발전 양상』(2016), 서울대학교 철학과 석사학위 논문.

안성두 역주, 『보살지: 인도대승불교 보살사상의 금자탑』(2015)

이영진, 「Mahāyāna(大乘)인가? Mahājñāna(大智)인가? (1) - 십지경 제2지에 보이는 두 용어의 혼동(混同)에 관하여-」(2019), 『불교학연구』 50, pp. 9–36.

Falk, Harry and Seishi Karashima, “A first‐century Prajnāpāramitā manuscript from Gandhāra - parivarta 1 (Texts from the Split Collection 1)”(2012), Annual Report of The International Research Institute for Advanced Buddhology (ARIRIAB) 15, 19–61. 

Falk, Harry and Seishi Karashima, ‘A first-century Prajñāpāramitā manuscript from Gandhāra – parivarta 5 (Texts from the Split Collection 2)’(2013), Annual Report of The International Research Institute for Advanced Buddhology (ARIRIAB) 16, 97–169.

 

최성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학부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를 취득했다. 2022년 뮌헨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공역서로 『고전티벳어문법』(씨아이알, 2016)이 있으며, 논문으로 「Two Contemplation Models of Nāmamātra in the Yogācāra Literature」(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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