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시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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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시켜 주세요
  • 관리자
  • 승인 2008.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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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縱橫無盡) 상담실

몇 달 전 우리 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던 40대 홀아비(?)와 아침에 마주쳤다. 몇 달 전 “사기결혼을 당했으니 이혼을 시켜달라”고 하였던 사람이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가끔씩 이혼시켜달라고 오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런 분들 중에는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 노총각이거나, 중국에서 장기 근무하다가 결혼하여 들어온 중국인 젊은 여성들이다. 서로 적응하는데 그만큼 힘이 든다는 이야기다.
김 씨는 40이 넘도록 장가를 못간 노총각이었다. 형수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아내를 만나서 그날 저녁에 합방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혼인신고를 하고 함께 살고 있었으며, 둘이 같이 청바지 공장에 실밥 뜯는 일을 다닌다고 했다. 아내의 친정으로 장모님 용돈을 부쳐 주고, 아내에게 용돈도 주고, 생활비를 대느라고 저축하기도 힘이 드는데 아내는 늘 돈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돈이야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데 둘이 있을 때는 아내가 자신의 몸에 자해를 하여 겁을 주고, 회사에서는 남편이 바람 핀다고 하여 자신을 곤란하게 하고, 가족에게는 웃으며 잘 지내는 듯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가족과 의논을 해보았느냐고 하자 가족들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아내의 말을 더 믿고 오히려 자신을 나무라면서 잘 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에게 이혼하자고도 해보았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아내는 이혼서류에 도장은 찍지 않겠다고 하면서 잠자리는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내가 왜 그러는지 짐작이 가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자신이 이혼을 당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위자료를 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한다. 말은 어눌하지만 의사전달은 분명했다. 상담하다보니 별 일도 다 있다.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 때문에 이혼하려 하느냐고 하자 그것보다도 사람을 믿을 수 없고 가끔씩 칼을 목에 대고 자해하고, 손목에 그어 피도 난 적이 있어서 이제는 얼굴만 봐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 못살겠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잠자리는 언제 했느냐고 묻자 바로 며칠 전이라고 한다. 참 난감하다. 이혼의사가 있기는 한 것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상담을 해보면 늘 그렇듯이 일방의 이야기만 듣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니 배우자를 센터로 방문하게 하였다.
며칠 후 어렵사리 아내가 방문을 했다. 오자마자 첫 마디가 “나 한국말 잘 몰라”하고 말을 하는데 나이 차이가 10살이 난다더니 훨씬 어려보이고 눈매가 또렷하고 목소리가 다부지다. 그런데 아예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상담자가 한자를 종이에 적어서 보여주면서 대화를 시도하는데 갑자기 “왜 오라고 했느냐”고 화를 내더니 나가버린다.
센터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으니 함께 점심이라도 하면서 마음을 달래야겠다는 마음에 급히 통역자를 구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집으로 아내를 찾아 갔는데 “집사람이 가출했나봐요.” 하면서 “가방도 없고 옷도 없어요.” 한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전에도 한 번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 온 적 있다고 한다.
상담을 해보기도 전에 이런 해괴한 일이 다 있나 싶다. 다문화가정 전문상담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해보니 남편 말대로 돈을 목적으로 결혼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하였다. 저녁에 김 씨에게 다시 연락을 하고 소식을 물었으나 감감 무소식이다. 그런데 퇴근할 무렵 김 씨가 불쑥 센터를 찾아 왔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내가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자신에게 빚쟁이가 찾아오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조치를 취해 달라고 한다.
일단 다음날 오전까지 기다려 보자고 하면서 아내와 연락이 되는 지인들께 전화를 걸어서 아내를 행방을 물어 보라고 했다. 아무리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아내라 할지라도 남편인데, 보호자로서의 의무는 하셔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가더니 전화가 왔다. “그런데요. 집사람 현재 수중에 돈이 없을 거예요.” 한다. 이제야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몇 달이 지난 현재까지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고, 40대의 홀아비는 아내의 가출신고 후 6개월이 지나기를 기다리면서 혼자 살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비록 혼자 살지만 걱정거리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상담을 시도하였으나 솔루션을 주지 못한 채 진행되는 삶의 현장은 참 다양하다.
한국에 시집 와서 고생하는 외국인 여성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김 씨와의 상담사례처럼 다문화가정은 늘어 가는데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아직은 많지 않다. 진정으로 그들을 위한 일들이 무엇인지, 프로그램을 더 연구하고 개발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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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호 _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부 겸임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자문위원, ‘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 전문위원, 중랑구건강가정지원센터장으로 가족간의 행복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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