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3월 8일 당시 선산군에서 사방(砂防, 모래제방) 공사를 하던 중 불상 세 점이 출토됐다. 원래 이 불상은 70여 년 전 현장 근처 대밭골에서 발견됐다. 불상을 발견한 농부는 불상을 보관하다 사정이 생겨 이곳에 버렸다고 한다. 작은 금동불상으로는 큰 편인 데다 상태나 수준이 매우 좋아 발견된 지 한 달여 만에 모두 국보로 지정됐다.
극적으로 발견된 이 불상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됐다. 세 불상은 중세문화실의 독립된 진열장에 따로 전시됐다. 가운데 진열장에는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바라봐서 오른쪽에는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바라봐서 왼쪽에는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이 서 있다. 애초 삼존으로 만든 건 아니지만 원래 삼존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린다.
세 불상 가운데 여래입상부터 만난다.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여래입상은 세상의 중심인 듯 단단하며 근엄하다. 옷 주름도 좌우대칭으로 표현해 근엄함을 더했다. 오른손은 올려 중생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하고 왼손은 내려 원하는 바를 말하라 한다. 흐트러짐 없는 손으로 중생을 보듬는 한편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려는 듯하다. 그런데 근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힘을 주면 경직되기 쉽다. 오른쪽 무릎을 살짝 구부려 앞으로 나가는 자세를 취했다. 물결치듯 신체를 타고 흘러내리는 옷 주름은 율동감을 더한다. 미묘한 움직임으로 긴장감을 풀어주는, 정중동의 모습이다.
시점을 바꿔 아래에서 올려보자. 그러면 금빛이 더욱 반짝거리고 옷 주름이 바람에 일렁이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계신 여래가 중생을 굽어보며 좋은 말씀을 들려주는 듯하다. 측면에서 보면 근엄하기만 할 것 같은 얼굴에서 살짝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번에는 미소 띤 얼굴로 네 마음 다 안다고, 중심을 잃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다. 여래 입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이 여래 입상은 통일신라 문화가 무르익기 시작할 무렵인 8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오른쪽에 전시된 금동보살입상은 화려하다. 목걸이를 비롯한 갖은 장식이 온몸을 둘렀다. 화려한 장식으로 보살을 높이려고 한 사람들의 마음이 묻어 있다. 장인은 많은 장식이 자칫 부담스러워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았는지 오른손으로 장식을 쥐도록 디자인했다. 이 손가락은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보관에 있는 부처님으로 보아 이 보살상은 자비의 대명사 관음보살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라진, 왼손에 쥔 것은 정병일 가능성이 높다. 얼굴은 근엄하고 자세는 당당해 자신감 넘치는데, 보고 있자면 그 기운에 물드는 것 같다.
이 상에는 반전이 기다린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본다면 예상치 못한 얼굴을 만난다. 얼굴은 굳건하면서도 편안해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달라진다. 아래쪽에서 올려보면 금빛은 더욱 반짝거리고 장식은 보다 입체적이다. 측면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에 풀어주는 기분 좋은 미소를 만난다. 이 관음보살상의 진짜 매력은 보는 시점마다 바뀌는 얼굴이다. 이 상은 7세기 후반의 불상으로 보인다.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상구보리 하화중생’. 위로는 보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보살의 수행 목표다. 이 말처럼 왼쪽 보살 입상은 중생에게 한 걸음 더 다가온다. 근엄한 얼굴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몸은 늘씬하고 장식과 옷은 간결하고 세련됐고 연봉을 쥔 오른손이나 옷자락을 쥐었을 왼손은 우아하다. 자세는 또 어떤가. 오른쪽 무릎을 살짝 내밀고 허리는 왼쪽으로 약간 돌려 중생에게 간다. 이 보살상 앞에서는 마음속 근심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겠다.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이 보살은 관음보살이다.
방향을 바꿔 아래에서 올려보면 신체는 더 길고 우아하다. 얼굴 인상도 바뀌어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미소가 가득한 얼굴과 만난다. 다른 두 불상과 달리 대좌까지 남아 더 뜻깊다. 볼수록 빠져드는 이 보살상은 삼국시대가 끝날 무렵인 7세기 중엽의 작품이다.
불상 세 점은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어도 여전히 큰 울림을 전한다. 여래상은 세상의 중심에서 굳건한 믿음을 보내고, 화려한 보살상은 기운내라며 손 내밀고, 우아한 보살상은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린다. 천 개의 강에 고루 내리는 달빛처럼 불상들은 차별 없이 빛을 내린다. 먼 옛날처럼 지금도.
사진. 국립대구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