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교(金橋)에 쌓인 눈 아직 녹지 않았고
계림(鷄林)의 봄빛은 돌아오지 않았는데
어여뻐라. 봄의 신은 재주도 많아
모례네 집 매화꽃을 먼저 피게 하였네.
- 일연 스님 『삼국유사』 중에서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아도 스님에 대한 여러 기록을 전하면서 마지막으로 스님을 찬(讚)하는 시를 남겼다. 계림, 혹은 서라벌로 불리던 지금의 경주보다 모례네 집에 먼저 봄이 오고, 매화가 일찍 피었음을 비유하며 아도 스님과 모례 장자를 찬했다. 그렇게 신라불교 1,600년의 역사가 구미 선산에서 시작됐다.
구미 선산은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에게도 남다른 곳이다. 일생의 경쟁자였던 견훤이 아들 신검을 피해 왕건에게 항복하고, 직후 고려와 후백제의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가 벌어진 곳이 선산 지역이다. 그렇게 태조산은 또 다른 이름을 얻었다.
낙동강은 우리 역사에서 사람들을 잇는 강이었으며, 물류의 맥이었다. 낙동강 변을 따라 수많은 거찰이 세워졌으며, 석탑과 불상이 조성됐다. ‘신라불교의 성역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곳에 남겨진 부처님과 가람을 찾아보았다.
대둔사 대웅전 안에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옥성면 복우산(伏牛山)에 있는 대둔사 역시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충렬왕 시대 왕자 왕소군이 출가한 곳이다. 조선 후기에 대웅전(보물)을 새로 짓고, 부처님을 모셨다. 이외에도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구미를 대표하는 또 다른 사찰이다.
보천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선산 지역을 대표하는 통일신라시대 부처님으로 정식 명칭은 ‘해평리 석조여래좌상’이다. 불상과 광배, 좌대가 거의 완벽히 보존돼 있으며, 광배와 좌대의 문양이 특히 아름답다. 매봉산 자락에 있는 보천사는 보천(寶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했다.
문수사에 모셔진 궁기동 석불상. 문수사는 도개면 청량산(淸凉山)에 있으며, 자연 동굴을 이용한 납석사(納石寺)에서 유래한다. 부속 암자로 산 중턱에 사자암이 있다. 돌로 조성된 두 분의 보살상이 있는데, 한 분의 보살님은 광배가 일부 남아 있다. 도개중학교 교정에 있었으나 근래 문수사로 옮겨왔다.
오로리 석조미륵입상. 장천면 절터에 있었으며, 현재의 위치로 옮기기 전에는 미륵당 건물 내에 있어서 ‘미륵당 석조미륵입상’으로 불린다. 높이가 2.85m에 이른다.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오랫동안 인근 주민들이 미륵불로 신앙해 왔다.
황상동 마애여래입상(보물). 구미 황상동의 석현(石峴) 고갯길 바위에 새겨져 있다. 높이가 7m를 넘으며, 대표적인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한다. 가슴까지 올라온 손 모양이 특이한데, 왼손은 가슴을 향하고, 오른손은 밖을 향한다. 뒷면 바위가 부실해 보호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