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수행자’, ‘탁발 마라토너’로 유명한 진오 스님의 달리기는 1990년대 후반 ‘IMF 사태’로 전국민적 달리기 열풍이 불 무렵 시작됐다. 고등학생 때 출가해 동국대 불교대학 선학과를 졸업한 스님은 1987년 공군 군법사로 복무하던 중 교통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다. 그때 의사의 운동 권유로 처음 시작하게 된 달리기였다.
1km씩 뛸 때마다 100원씩 모금하는 탁발 마라톤으로 현재까지 스님이 달린 거리는 2만여km, 약 5억 원을 모금했다.
달리기의 시작
“한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가 요리사 모자를 쓰고 손에 쟁반을 들고 뛰는 걸 봤어요. 자기 가게를 홍보했던 건데, 거기에서 아이템을 얻었죠. ‘맞다! 나도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메시지를 써 붙이고 달리면 사람들에게 복지 사업도 알리고 내 건강도 챙기겠구나’라고요.”
진오 스님이 본격적으로 ‘1km 100원의 희망’이라는 메시지로 탁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1년, 사고로 왼쪽 뇌를 잃은 베트남 노동자 또안의 병원비와 변호사 수임료 마련을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달리기는 파독 광부 50주년을 맞아 독일 교민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독일 700km 달리기’(2013년), 부산-서울 지역대표 서점을 순례하는 ‘책 생태계 살리기 525km 달리기’(2021년), 베트남 농촌 지역 학교 화장실을 신축하는 ‘베트남 108 해우소 탁발 마라톤’(2012년~)으로 이어졌다. 그 밖에도 모인 성금은 국내 외국인노동자 상담센터와 쉼터, 폭력피해 이주여성 보호시설, 북한 이탈 무연고 청소년 그룹홈 등 그때그때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됐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스님에게 찾아온 사람들. 스님은 그 하나하나의 인연에 진심으로 통감하며 20여 년을 쉬지 않고 달렸다.
“한번은 한적한 통영 바닷가 오솔길을 달릴 때 한 청년을 지나쳤어요. 그 청년이 저를 불러 세우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저기요, 이것도 돼요?’ 묻더라고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는데 500원이었어요. 제가 큰 소리로 ‘고맙습니다!!!’ 했죠. 제 목소리가 작으면 저 친구도 부끄러울 테니까요.
돈을 많이 모으는 게 모금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돈을 많이 모아서 빨리 해결하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되잖아요. 몸은 힘들고 다른 방법은 없고. 좌절감이라 그럴까. 그런데 그때 만난 청년이 지금까지도 제게 큰 감동으로 남았어요.”
스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한 그 청년은 어느새 10년 넘게 스님의 뜻에 동참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진오 스님의 달리기에는 남녀노소 이웃 종교인들까지 모두 다 동참한다. 스님은 달릴 때 혼자가 아니다. 스님의 SNS로 뜻에 동참하는 이들과 실시간 연결되기 때문이다. 기부해 달라고 호소하지 않아도 스님이 뛰면 마음을 내겠다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후원 방법을 물어온다. 스님은 “처음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고 부끄러웠다”며 “하지만 종교가 다르든 같든, ‘차별’에 대해 참지 않고 뜻에 동참한 이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라고 강조했다.
마하붓다사와 레인보우 빌리지
산업단지가 조성된 구미 지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약 4,000명 정도다. 김천, 칠곡 등 경북 서북부 지역까지 합치면 약 8,000명이다. 진오 스님이 아무 연고도 없던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당시 구미에서 복지관을 준비하던 법등 스님(도리사 회주)의 인연 덕분이었다.
진오 스님은 1996년부터 구미에 거주하며 금오종합사회복지관 개관 작업을 맡아서 했다. 2000년에는 구미에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족을 돕는 단체 ‘구미 보현의집’, 2008년 사단법인 꿈을이루는사람들(꿈이사)을 설립해 외국인노동자, 다문화 한부모가족, 탈북민을 돕고 있다.
“다치거나 사망하거나 월급 못 받거나 아픈 이주노동자를 돕는 것에 대해 아직도 비판적인 견해들이 있어요. 하지만 이건 20년 전에 국가가 나서서 해야 했을 일이에요. 그땐 국가가 관심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이들의 도움 없이 한국 사회가 돌아가질 않아요.”
꿈을이루는사람들이라는 이름은 ‘꿈을 안고 한국에 온 이들이 좌절할 때 꿈을 이뤄주자’라는 뜻이다. 현재 외국인노동자 상담센터, 노동자 쉼터, 가정폭력 피해 외국인 여성 쉼터, 다문화 한부모가족 자립시설 달팽이모자원 등 4개 기관을 운영한다.
“왜 출가했나 생각해 보면 저 혼자 편하게 살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다름없이 평등하다는 것을 알려주자’라는 게 제 서원이었죠. 분명한 메시지를 유모차와 손수레에 붙이고 달리면서, 단지 제 눈앞에 보이는 어려운 이들을 그냥 조금 도와줬을 뿐인데, 그 일이 벌써 20년을 훌쩍 넘었네요.”
진오 스님이 주지로 있는 마하붓다사의 ‘Maha’는 크다는 의미이며 ‘Buddha’는 깨달은 부처님을 뜻한다. ‘대불사’가 아닌, 외국인들도 쉽게 알 수 있는 명칭으로 지었다. 이곳을 함께 꾸려가는 외국인 스님은 스리랑카인 두 분, 캄보디아인 한 분(함께 있던 베트남인 스님은 다른 지역에서 베트남 불자들의 법회를 보고 있다).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스리랑카 5개 언어로 5개의 법회가 각각 봉행된다. 모두 그 나라 사람들이 주도해서 진행한다.
진오 스님은 언젠가 이곳이 ‘레인보우 빌리지(Rainbow Village)’처럼 각 나라의 자립 공동체가 함께 어우러진 마을이 됐으면 한다. 얼마 전에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3년 동안 조금씩 모은 돈으로 마하붓다사 앞의 부지를 계약했다. 이 부지에는 캄보디아 공동체 공간을 지을 예정이다.
“시간당 5km를 하루에 10시간씩 50km 뛰어요. 그렇게 가야 오래 갈 수 있어요. 빨리 가면 지쳐요. 지치면 발바닥이 부르튼다든지 무릎이 아프다든지 어떤 형태로든 몸에 상처가 나요. 그런데 1시간에 5km는 부담 없거든요. 그렇게 천천히 장거리를 가는 거죠. 지금 베트남 108 해우소 짓기가 벌써 11년 됐어요. 현재까지 82개소를 지었네요. 해우소는 답답하게 맺혔던 걸 풀어주는 거잖아요.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죠.”
뭐든 해내기 위해 필요한 5가지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서, 누군가는 개인적인 성취를 위한 달리기가 스님에게는 개인을 넘어 모두의 꿈을 이뤄주는 희망 달리기다. 보시하는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 모두에게 따뜻한 마음을 선사해 준다. 그 안에서 스님의 몸과 마음은 날로 더욱 건강해진다.
“‘왜 하필 달리기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저는 사고로 왼쪽 눈에 시력이 없어서, 뭘 하는 게 쉽지 않아요. 노래를 잘하면 산사음악회에 나가고, 그림을 잘 그리면 달마도를 그려서 사람들에게 나눠줘도 되는데, 그런 재능도 없어요. 가진 거는 팔다리, 몸뿐이라 할 수 있는 거는 달리기였죠. 그렇게 시작한 게 20년이 지나 제게 그 누구보다도 건강한 몸과 마음(나눔)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건강까지 만들어줬어요.”
이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스님은 구미대학교 사회체육지도학과에 신입생으로 입학한다.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불교학생회도 신설해 구성원이자 지도법사로 동아리를 이끌어갈 계획이다. 길에서 그랬듯, 이제 스님은 대학생들을 직접 만나려 한다. 스님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다. 스님은 “20대를 만나려면 나 역시도 학생으로서 배움의 현장에 가야 한다”며 “스님인 내가 먼저 열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산중에만 법당에서만 있는 불교, 그거는 과거에나 통용됐죠.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어요. 팬데믹 이후 온라인 법회를 보잖아요. 불교가 변화에 발맞추지 않고 전통 사찰 문화만 고수해서는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어요. 시대 상황과 흐름에 맞춰서 새로운 방식, 혁신적인 모습으로 다가가야 해요.”
진오 스님에게 결승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스님의 달리기는 계속된다. 늘 새로운 메시지와 목표가 생긴다. 2024년, 진오 스님은 코로나로 잠시 중단됐던 ‘미국 5,225km 26개 주 대륙 횡단’에서 남은 3,300km 달리기를 준비 중이다. 이번에 스님의 지니고 다닐 메시지는 ‘미국이 일으킨 베트남 전쟁 인정하라 사과하라 보상하라’다.
“미국 대륙 횡단이 됐든 대학생 포교가 됐든 5가지가 모두 있어야 합니다. 체력, 시간, 돈, 열정, 목표. 체력·시간·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포기하지 않는 열정, 그다음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죠. 이 5가지는 어떤 형태로든 십시일반으로 다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뭐든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