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우주목(宇宙木), 송광사 비사리구시
_석연경
큰 느티나무가 있었지
태양이자 바람이며 구름이던 느티나무
눈부신 초록 그늘이며
넓은 등이었지
느티나무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어
순풍과 비나 눈보라도
어느 날은 뛰어내리는 빛의 칼날
벼락을 받아들었어
느티나무는 벼락의 마음이 되었다가
천둥보다 큰 소리로 쓰러졌지
쿵 느티나무라는 마음을 내려놓았어
느티나무는 누운 채
오랜 시간 말아 쥐며
부피를 늘여 왔던
나이테를 지웠지
느티나무였던 시간의 속을 비워내고
맑은 향기 사천 명 밥을 품고
큰 나무그릇 구시가 되었지
송광사 승보전 옆에 가보라
심우도 아래서
소를 찾고 소를 버리고
그저 밥이 되었던
비사리구시가 있으니
자세히 보면 알게 되리라
잎을 달고 일렁이는 느티나무 안에
가부좌한 거대한 보리수
우주목 한 그루
(석연경 지음, ‘둥근 거울’, 문학들 2022)
[감상]
순천에 사는 석연경 시인이 순천 지역 사찰들의 이야기를 시로 엮어 책을 만들었습니다. 거기 모인 시들이 모두 가편이어서 어떤 시부터 소개해야 할지 가히 어렵습니다.
승보전 옆 두 칸 정도 길이의 ‘나무 구유’가 턱 하니 자리하고 있습니다. 워낙에 커서 소나 말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여물을 먹을 수 있는 ‘구유’같이 보입니다(‘구유’는 전라도 사투리로 ‘구시’라고 합니다. 그러니 여기서도 이 유물의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여 ‘구시’라고 쓰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랍니다. 옛날 송광사가 나라를 대표하는 선종 사찰일 때 제사를 지내게 되면 참으로 많은 사람이 송광사를 방문했습니다. 이 구시는 그때 4천 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어서 참으로 유용했다고 합니다.
‘비사리’는 싸리의 껍질을 말하는 것이지요. 전설에 따르면 1724년 남원 송동면 세전골에 있던 싸리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지자 그것으로 구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전설입니다. 실제로 이 구시는 느티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시인은 느티나무가 어떻게 해서 ‘구시’가 되었는지를 소상히 밝혔습니다. 어느 마을의 느티나무는 그야말로 아름드리, 한 마을 사람들을 모두 품고도 남을 넉넉한 그늘을 가졌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순풍도 역풍도 비도 눈보라도 받아들여서 넉넉하게 품어 안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청난 빛의 칼날이 느티나무의 정수리를 관통하여 줄기 쪽으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던 느티나무는 이 또한 받아들이고 천둥보다 큰 소리를 내며 쿵 쓰러져서, ‘느티나무라는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느티나무라는 마음’을 내려놓자, 그 느티나무는 더욱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집의 기둥도 되고, 바둑판도 되고, 그릇도 되고, 연필꽂이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더욱 특별하게는 사천 명 밥을 담을 수 있는 송광사의 ‘큰나무그릇 구시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송광사 승보전 옆에 가보라
심우도 아래서
소를 찾고 소를 버리고
그저 밥이 되었던
비사리구시가 있으니”
그런데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자세히 보면 그 구시 안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답니다. 그 나무 안에 또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답니다. 그 나무는 글쎄, 가부좌하고 계신답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이름은 ‘보리수’, ‘깨달음의 나무’랍니다.
이 시를 읽고도 송광사 비사리구시를 보러 가지 않으시렵니까?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