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정호승 ‘목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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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정호승 ‘목어에게’
  • 동명 스님
  • 승인 2022.03.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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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포항 오어사 목어
포항 오어사 목어
통도사 목어
통도사 목어

목어에게

이제 날아가라
그동안 산사에 매달려 인간에게
온갖 살점과 뼈마디를 그만큼 뜯겼으면
저 수묵화 같은 소백산 능선 너머로 날아가라
비어(飛魚)가 되어 멀리 인간을 떠나
늘 푸른 해인의 바다를 찾아가라
너의 본향은 바다
깊고 푸른 바다의 자작나무숲이다
그동안 너의 텅 빈 가슴속에
내 비록 쪼그리고 웅크리고는 있었으나
작은 새 한 마리
평생 나와 함께 잠들게 해줘서 고맙다
행여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면 버려라
차라리 인간의 썩은 가슴에다 던져버리고
날아가라 수평선 너머로
더 이상 목마름에 타오르고 쓰러지지 않도록
너의 팅 빈 가슴 속으로
영원의 검푸른 바다가 넘실대게 하라

(정호승 시집, ‘당신을 찾아서’, 창비 2020)

금산사 미륵전 부처님
늘 깨어있는 눈으로 중생을 지켜보는 금산사 미륵전 부처님

[감상]
정호승 시인은 작은 새가 되었습니다. 작은 새가 되어 주로 목어 주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목어의 텅 빈 뱃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목어 위에 앉아서 쉬기도 합니다.

어느 날 작은 새가 목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의 고향은 어디니?”
목어가 대답했습니다.
“내 고향은 바다야! 깊고 푸른 바다란다.”
작은 새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니?”
목어가 대답했습니다.
“글쎄, 물 밖의 세상이 너무도 궁금했었는데, 육지에서 동아줄이 내려오기에 덥석 물어서 여기까지 왔지.”
작은 새가 가엾다는 듯이 목어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바다에 가고 싶지 않니?”
목어가 말했습니다.
“가고 싶기도 하지만, 나는 이제 여기가 좋아졌어. 사람들이 입에 물려준 여의주가 난 너무 좋아. 창자를 다 꺼내버렸기 때문에 물도 먹이도 먹지 않아도 되니, 꼭 바다에 갈 필요는 없어.”
그러자 작은 새는 <목어에게>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너의 본향은 바다/ 깊고 푸른 바다의 자작나무숲”이니, 이제 날아가라, “저 수묵화 같은 소백산 너머로 날아가라!”

“행여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면 버려라
차라리 인간의 썩은 가슴에다 던져버리고
날아가라 수평선 너머로
더 이상 목마름에 타오르고 쓰러지지 않도록
너의 텅 빈 가슴속으로
영원히 검푸른 바다가 넘실대게 하라”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눈을 감고 있어도 우리에겐 뜨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고기의 그런 속성이 산사의 스님들에게 호출되어 물고기는 나무의 몸을 입어 산사에까지 왔습니다.

정호승 시인이 목어를 만든 스님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만을 중심에 두고 자연을 이용하는 데만 급급해 있음을 인간 스스로 반성하자는 메시지를 시적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인간의 썩은 가슴’은 곧 인간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생각과 다름없습니다. 날아가야 할 목어는 물고기도 세상의 주인이고 새도 세상의 주인이라는 메시지의 상징입니다.

목탁은 목어의 축소형이라는 것 알고 계시죠? 결국 절에서 사용하는 목탁과 목어는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깨어 있으라는 뜻이자 부처님처럼 눈을 뜨라는 불법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우리 스님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목어를 노래하셨습니다. 시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목어가 새롭고 재미있습니다. 오늘도 목탁소리, 목어소리를 들으며 깨어 있겠습니다.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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