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첫 매화
섬진강 첫 매화 피었습니다. 곡성에서 하류로 내려가다가 매화꽃 보고는 문득 생각나서 사진에 담아 보냅니다. 이 매화 상처 많은 나무였습니다.
상처 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 움트겠는지요.
태풍에 크게 꺾인 벚나무 중에는 가을에도 우르르 꽃 피우는 나무 있더니 섬진강 매화나무도 상심한 나무들이 한 열흘씩 먼저 꽃 피웁니다. 전쟁 뒤 폐허의 허망에 덮인 집집마다 힘닿는 데까지 아이를 낳던 때처럼 그렇게 매화는 피어나고 있습니다.
첫 꽃인 저 매화 아프게 아름답고, 상처가 되었던 세상의 모든 첫사랑이 애틋하게 그리운 아침 꽃 한 송이 처절하게 피는 걸 바라봅니다. 문득 꽃 보러 오시길 바랍니다.
지리산 문수골에서 원규가
(도종환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창비 2011)
[감상]
바야흐로 매화가 꽃 피는 계절입니다. 벌써 제주도는 물론이고 통도사에서 섬진강에서 화엄사에서 매화의 개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2월, 잔설도 남아 있는 어느 날 도종환 시인은 지리산 섬진강에서 사는 이원규 시인에게 문자로 사진 한 장을 전송받습니다. 이원규 시인이 섬진강에 첫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을 보내온 것이지요.
첫 매화를 꽃 피운 나무는 상처가 유독 많은 나무였답니다. 상처가 많을수록 꽃을 이르게 피운다는 얘기 들었는데, 맞는가 봅니다.
이원규 시인은 태풍에 크게 꺾였던 벚나무가 봄이 아닌 가을에도 우르르 꽃을 피운 걸 보았다고 합니다. 상처 많은 벚나무가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꽃이라도 피웠던가 봅니다. 아니면 종족 보존을 위해 꽃일 미리 피운 것일까요.
베이비붐 세대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전쟁 이후 유난히 아이를 많이 낳던 때에 태어난 신생아들을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부터 1965년까지,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붐 세대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큰 상처 이후 새로운 아이들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려는 의지가 보인 현상이었지요.
그러기에 시인에게 매화의 개화는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시인은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그야말로 ‘처절하게’ 피는 것을 바라보며,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서 동료 시인에게 보냈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이 엿보이는 시 <첫 매화>, 지리산 문수골에서 피어난 꽃소식이 도종환 시인이 계셨던 보은 속리산 자락으로 갔다가 ‘쓰리쿠션으로’ 우리에게 전달된 시 <첫 매화>, 배송해드립니다.
“꽃 피워라! 꽃을 피워라, 꽃을 피워!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의 꽃이로구나!”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