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절] 북한산 둘레길 따라 3·1절 태극기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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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절] 북한산 둘레길 따라 3·1절 태극기 찾아
  • 최호승
  • 승인 2022.03.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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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道]은 여러 갈래입니다. 행복을 찾는 길, 즐거움을 좇는 길,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길 등등. 어찌 보면 여행이고 수행이자 순례이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둘러 길 걸으면서 절에 들러보는 여행이자 순례길을 걷습니다. 발이 젖으려면 물가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광미디어가 아름다운 길 찾아 절로 함께 걷습니다.

북한산 둘레길 구름정원길 스카이워크
북한산 둘레길 구름정원길 스카이워크

북한산 둘레길 구름정원길과 진관사
북한산 둘레길은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 북한산 국립공원을 둘러 걷는 길이다. 굳이 봉우리에 오르지 않아도 쉽고 편안하게 북한산 국립공원을 느낄 수 있다. 때론 흙길 때론 물길 혹은 숲길과 동네 길로 이어져 지루함도 없다. 20개가 넘는 구간 중 같은 길은 하나도 없단다. 어딜 걸어야 할까?

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부터 국경일이던 3·1절은 태극기를 떠올리게 했다. 한국의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3·1절을 코앞에 두고 태극기를 찾지 않으면 뭘 찾을까? 서울 진관사로 향했다. 몰랐다. 북한산 둘레길 중 제8구간인 구름정원길 끝에 태극기와 진관사가 있었다. 거기에 서린 독립운동의 역사를 구름정원길 따라 걸었다. 북한산생태공원서 시작해 진관생태다리까지 약 5.2km, 여기서 한옥마을 거쳐 진관사에 들었다.

구름정원길 스카이워크 끝에 보이는 거라곤 하늘
구름정원길 스카이워크 끝에 보이는 거라곤 하늘

고층 빌딩 숲, 하늘 위를 걷다
초행길이었다. 지하철 3·6호선 불광역 2번 출구로 나온 길 그대로 10분 정도 걸었다. 생태공원에서 해설사 붙들고 길을 묻고 나서야 이정표를 찾았다. 이때부터는 일사천리. ‘북한산 둘레길(진광동)’ 이정표만 따라 걸었다. 주택가를 따라 한참 오르막을 걸어 구름정원길 입구에 도착, 불광사를 왼쪽에 끼고 계단을 오르막내리막 걷다 탁 트인 전망대에서 숨을 골랐다. 발아래 고층 빌딩 숲을 두고 한껏 차가운 공기를 마셨다.

올려다봤던 나무와 눈을 맞췄다. 몇몇은 발아래 서 있었다. 스카이워크란다. 서울 은평구 구기터널 상단지역 계곡을 횡단하는 60m 길이의 나무 데크길이다. 살짝 주저앉으니 길 끝엔 파란 하늘뿐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탁 트인 광경이 너무 짧아 아쉬울 정도였다. 60m라는데….

산을 타는 긴장감도 주는 구름정원길
산을 타는 긴장감도 주는 구름정원길

산을 걷는다는 느낌은 여기서부터였다. 스카이워크가 끝나자 흙길이 마중 나왔다. 잣나무와 소나무 등 침엽수림이 많아 상쾌함이 흐르는 땀처럼 몸을 적셨다. 오르막내리막이 끊이지 않아 산을 타는 긴장감도 더해졌다. 갑자기 나타난 마을 동네 길에서도 당황은 노노! 북한산 둘레길 이정표 따라 진관동으로만 향하면 그만이었다.

불광중학교에 이르면 가파른 길을 만나지만, 겨울 숲길 맛이 그대로 전해졌다. 오전 볕이 만든 나무 그림자가 난을 친 듯 길을 수놓았다. 봄은 아직 멀리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진관사로 향하는 구름정원길은 심심하지 않았다. 은평둘레길, 서울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등 이정표에 덕지덕지 붙은 온갖 둘레길 표시만 눈엣가시였다. 하지만 걱정은 금물!! 진관동 방향으로만 가면 된다.

구름정원길에 겨울 볕이 만든 수묵화
구름정원길에 겨울 볕이 만든 수묵화
구름정원길 기자촌 전망대 억새 군락
구름정원길 기자촌 전망대 억새 군락

이 길은 색다른 모습도 보였다. 그중에서도 억새다. 기자촌 전망대에 이르면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억새 군락지가 있었다. 사실 구름정원길은 가을에 더 사랑받는 길이라던데…. 아무래도 좋았다. 애초 길 끝에 태극기를 찾아 나선 구름정원길이었다. 길 곳곳에 보이는 묘역과 문인석(文人石, 묘 앞에 세우는 문관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은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운주사 와불이 일어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상상하던 옛일이 떠올랐다. 문인석이 움직이면 무슨 일이 생길까? 어쨌든 조선시대 내시부 상약인 신공(申公)의 묘역과 문인석에 이르자 일명 ‘태극기길’이라는 이정표를 만났다. 진관사가 멀지 않았다는 증거다.

진관사 초입, 태극기와 백초월 스님 포토존
진관사 초입, 태극기와 백초월 스님 포토존
진관사 일주문
진관사 일주문

구름정원길 끝 백초월 스님과 태극기
구름정원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쭉 내려가면 한옥마을이다. 최근에 조성된 마을이었고, 평일 낮이라 사람 발길이 드물었다. 5분 정도 걸으니 드디어 나타났다. 백초월 스님과 진관사 태극기. 포토존이었지만, 셀렜다. 통도사 무풍한송길 소나무처럼 굽이쳐 하늘로 솟구친 소나무 사이로 ‘삼각산진관사(三角山津寬寺)’ 일주문 편액이 보였다. 기개 있게 하늘로 뻗은 소나무는 태극기와 독립운동 유물을 간직해온 백초월 스님과 진관사의 상징 같았다.

진관사 맨 꼭대기, 칠성각을 내부해체하는 과정에서 태극기가 발견됐다.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한지로 된 큰 봉지가 벽면에 부착돼 있었단다. 떼어보니 보자기처럼 사용한 태극기 안에 독립신문 등 20여 점의 독립운동 관련 유물들이 발견됐다.

진관사 오르는 길
진관사 오르는 길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
태극기가 발견된 칠성각

고려 8대 임금 현종 2년(1011)에 건립된 진관사는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전각을 잃었다. 공비소탕작전 탓이었다. 남았던 전각은 나한전, 칠성각, 독성전 단 3동뿐이었다. 2009년 5월부터 전면 보수작업을 진행 하던 중 독립운동 유물이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진관사에 따르면 이때 발견된 태극기는 1919년 3·1운동 당시 기관이나 단체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것으로 태극기 및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태극기 안에서 신대한신문 2, 3호가 최초로 발견돼 3·1운동 당시 생생한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고.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2021년 10월 보물로 지정됐다.

발견 당시 태극기 모습, 진관사 웹사이트 캡쳐
발견 당시 태극기 모습, 진관사 웹사이트 캡쳐

이 소중한 자료들은 진관사에 주석했던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숨겨놓았단다. 1920년 초 일제에 체포되기 직전 긴박한 상황에서 비밀리에 진관사 내 한적한 건물인 칠성각에 숨겼고, 밀페 공간에서 90년간 기적적으로 발견되지 않던 것이다. 진관사는 백초월 스님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밀접하게 관련 맺으면서 임시정부와 국내 독립운동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1920년 초, 일제에 체포된 백초월 스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반미치광이가 될 정도로 출옥했다. 그러면서도 동학사 강사, 월정사 강사, 봉원사 강사로 그리고 1938년 초부터 진관사 마포 포교당에서 전법 활동에 매진했다. 하지만 봉천행 화물열차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낙서의 배후자, 영향을 준 인물로 지목돼 다시 옥고를 치르던 중 1944년 6월 청주 교도소에서 순국했다.

최근 정비된 진관사 한글길
최근 정비된 진관사 한글길

뜻밖에 인연, 진관사와 한글
찬찬히 도량을 둘러보며 참배했다. 칠성각에 합장하고 관련 기록을 읽어내려갔다. 대한독립을 피맺히게 외쳤던 그분들의 역사에 뻣뻣한 고개를 숙였다. 하산길, 진관사엔 다른 인연도 있었다. 과학적인 문자, 한글이다. 정비된지 얼마 안 돼 보였지만, 확실히 한글길이었다.

2021년 12월 서울시에서 세운 푯말엔 진관사 마애아미타불 아래 ‘진관사 사가독서터’가 있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면서 사가독서(賜暇讀書,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를 장려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독서했지만, 전념할 수 없어 절에서 책을 읽도록[상사독서(上寺讀書)] 했단다. 1442년(세종 24)에 박팽년, 성삼문, 신숙주, 이개, 하위지, 이석형 등 학자들이 진관사에서 책을 읽었던 터가 있었다. 이곳을 따라 한글길이 있었다. 계곡은 얼어붙었지만, 예쁜 길이 길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름 위를 걸어서만 좋은 게 아니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던 분들의 마음과 한글의 고마움을 느끼기엔 더없이 좋은 길이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올까? 꽃은 꺾을지언정 봄은 오고야 만다는 진리를 구름정원길 끝 진관사에서 가늠해본다.

북한산 둘레길 구름정원길 진관사 여정
코스 : 북한산생태공원~생태다리~한옥마을~진관사
거리 : 편도 약 6.5km
시간 :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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