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절] "조선을 지켜라" 적상산 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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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절] "조선을 지켜라" 적상산 안국사
  • 최호승
  • 승인 2021.11.0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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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 안국사.

[길 둘러 절 들러] "조선을 지켜라" 붉은 치마산 위 안국사

길[道]은 여러 갈래입니다. 행복을 찾는 길, 즐거움을 좇는 길,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길 등등. 어찌 보면 여행이고 수행이자 순례이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둘러 길 걸으면서 절에 들러보는 여행이자 순례길을 걷습니다. 발이 젖으려면 물가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광미디어가 아름다운 길 찾아 절로 함께 걷습니다. 사진은 아이폰으로 촬영했습니다.

안국사로 향하는 적상산 들머리. 일단 고운 단풍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적어도 산길을 걷기 전에는.
안국사로 향하는 적상산 들머리. 일단 고운 단풍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적어도 산길을 걷기 전에는.

가을 비대면 안심관광지 25선 중 하나
한국관광공사가 코로나19에도 이번 가을 비대면 안심관광지 25선으로 꼽은 무주 적상산 사고로 행했다. 적상산(赤裳山) 산길 둘러서 걸으면 길 끝에 안국사(安國寺)와 사고(史庫)가 있어서다. 안국사와 사고에 이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그중에 서창마을의 서창공원지킴터에서 적상산 능선을 타고 향로봉(해발 1,024m), 안렴대, 안국사, 사고로 가는 약 6km의 산길을 걸었다.

해발 500m 지점에 이르면, 선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과 멀리 내다보이는 산세와 단풍까지 종합선물세트다.
해발 500m 지점에 이르면, 선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공간과 멀리 내다보이는 산세와 단풍까지 종합선물세트다.

붉은 치마를 두른 산길
들머리가 예뻤다. 길에 드는 객을 단풍이 반겼다. 덕유산국립공원이라 탐방로 정비가 제법 깔끔했다. 길은 만만치 않았다. ‘길 둘러 절 들러’ 두 번째 걸음은 땀과 함께였다. 오르막, 오르막, 오르막이었다. ‘갈 지(之)’ 자로 꾸불꾸불 오르막길은 자신을 의심케 했다.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길 둘러 걸으며 절에 들르자는 취지가 무색했다. 평소 안 쓰던 근육은 아우성이고, 숨은 턱 밑까지 차고, 흐르는 땀은 쉴 줄을 몰랐다. 걱정은 마시라. 산린이(‘산 어린이’라는 뜻, 등산 초보)도 포기하지 않고 은 길이다.

적상산은 안국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물 풍경을 내주며, ‘이래도 안 갈거야?’라고 물었다. 해발 500m쯤 다다르자 앉을 자리를 내줬는데, 연하게 물든 단풍, 저 멀리 내다보이는 산의 형세가 고됨을 단박에 소멸시켰다.

10월 26일은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올해 단풍이 느리게 온다는 사실에도 *적상산(赤裳山) 이름에 홀린 듯 찾은 길이었다. 산 이름에 ‘붉을 적(赤)’, ‘치마 상(裳)’이 들어간 만큼 가을철 단풍이 들면 온 산이 마치 빨간 치마를 두른 듯 화려하게 변신한다는 말에 나선 길이기도 했다. 적상산은 헛된 기대를 꾸짖듯 험한 산세를 그대로 내밀었다. 산길에 참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해 아늑하기도 했지만, 단풍은 아직 일렀다. 사실 산길에서 만나는 단풍보다는 향로봉이나 안렴대에서 내려다보는 산세에서 보이는 단풍 뷰맛집이 적상산이다.

10월 26일 걸었으니, 11월 중순 전에는 단풍이 절정이지 않을까? 괜히 일찍 왔다는 후회가 쓰나미처럼 몰려왔지만, 이 길의 반전 그러니까 재미는 따로 있었다.

*적상산(赤裳山) : 원래는 불그스름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모양새 때문에 붙여진 이름.

고려의 소드마스터 최영 장군이 두동강 냈다는 장도바위다. 여기서부터 이 길의 재미가 시작된다.
고려의 소드마스터 최영 장군이 두동강 냈다는 장도바위다. 여기서부터 이 길의 재미가 시작된다.

소드마스터 척준경 의문의 1패
적상산 능선을 타고 향로봉, 안국사에 이르는 길의 재미는 여기서부터였다. 바로 장도(將刀)바위다. 이름대로 장군의 큰 칼도 연관이 있었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산 전체의 붉은 단풍과 깎아 세운 암벽에 띠를 두른 듯한 아름다움에 끌려 정상에 올랐단다. 최영 장군도 가파른 산길과 늘어선 바위에 당황했을까? 갑자기 절벽 같은 바위가 막아서자,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바위를 둘로 쪼개 길을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군의 도가 자른 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려의 진정한 *소드마스터였다.

불쑥 의문의 1패를 당한 고려의 소드마스터가 떠올랐다. 곡산척씨의 시조 척준경(拓俊京)이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삼한 제일검 이방지와 훗날 조선 제일검이 될 무휼과 검을 맞댄 여검객이 척준경의 곡산검법 전승자로 나왔을 정도로, 유명한 소드마스터가 척준경이다. 적을 무수히 베었던 장수이지만, 그래도 바위를 두 동강 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 최영 장군에게 소드마스터 칭호를 드린다.

적상산성 서문.
장도바위를 지나 몇 발자국 떼면 나타나는 적상산성 서문. 서문을 지나면 이때부터 길은 부드럽게 객을 맞이한다.
장도바위를 지나 몇 발자국 떼면 나타나는 적상산성 서문. 서문을 지나면 이때부터 길은 부드럽게 객을 맞이한다.

장도바위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가지런히 쌓은 돌무더기가 등장한다. 적상산성 서문이다. 단풍과 안국사 그리고 사고 외에는 별다른 정보 없이 오른 산이라 산성이 나타나자 약간의 당황과 놀라움, 반가움이 교차했다. 적상산성은 북창리, 포내리, 괴목리, 사천리 등 4개 리에 걸쳐 적상산 위 분지를 에워싸는 절벽을 이용해 쌓은 산성이다. 산이 암벽이 많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동선이 다 보일 정도이니 산성을 쌓기 제격인 산이었다.

옛 문헌으로 보면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승람』 등을 보면 최소한 고려 중엽 거란의 제2차 침입(1010) 이전에 축성된 산성으로 본단다. 임진왜란으로 방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조선왕조실록』 보존 문제가 떠오르면서 묘향산에 보관 중이던 실록의 안전한 보관을 위해 적상산성이 거론됐다고 한다.

* 소드마스터(Sword Master) : 검의 달인을 통틀어 부르는 호칭.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 곱게 든 단풍.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 곱게 든 단풍.
날씨가 짖궂어 향로봉보다는 안렴대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선물한다.
날씨가 짖궂어 향로봉보다는 안렴대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선물한다.

날씨가 열일해야만 보이는 것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산이 없건만….’ 맞다. 해발 1,024m 표지석이 있는 향로봉에 다다랐다. 산린이는 무지했다. 날씨가 열일해야만 보이는 것들을 알지 못했다. 향로봉 삼거리에서 향로봉으로 가는 길 곳곳의 단풍에 감탄하며 걷다 정상에 올랐지만, 금세 풀이 죽었다. 하늘은 무심했다. 붉은 치마 대신 뿌연 치마를 둘렀다. 저 멀리 드러난 무주의 여러 산이 보이는 산세는 장관이었지만….

안렴대로 가려면, 향로봉 삼거리로 돌아와야 했다. 여기서 안국사까지는 산길로 1km다. 0.8km 정도 걷다 나오는 이정표가 보인다면 안국사까진 0.2km, 안렴대까진 0.3km만 걸으면 된다. 안렴대는 조금 달랐다. 뿌연 하늘이 야속했지만, 물들기 시작한 단풍 너머 수려한 산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발아래 사방이 그냥 천 길 낭떠러지여서 아슬아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려 때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안렴사가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서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었단다.

*안렴사(按廉使) : 고려, 조선 시대에 둔이나 각 도의 으뜸 벼슬. 고려 시대 지방행정구획인 5도의 장관.

무학 대사가 길지라고 점찍은 안국사. 그래서 나라 제일의 정토도량이라는 편액이 일주문에 걸렸다. 아이폰이라 발줌으로 찍은 편액.
무학 대사가 길지라고 점찍은 안국사. 그래서 나라 제일의 정토도량이라는 편액이 일주문에 걸렸다. 아이폰이라 발줌으로 찍은 편액.

실록 들고 굴에 들어간 스님
안렴대에서 안국사는 무척 가깝다. 안국사에 들어서니, 그제야 하늘은 가을을 보여줬다. 물 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는, 제법 시간이 익어가는 해우소를 오른쪽에 두고 안국사에 들어섰다. 청운루 오르는 계단 옆 돌탑에 세월이 얼키설키 엮였고, 그 옆으로 참배객 한 사람이 계단에 발을 올렸다.

일주문에는 1995년 여산 권갑석 선생이 쓴 ‘국중제일정토도량(國中第一淨土道場)’ 편액이 내걸렸는데, 무학 대사가 나라 제일의 길지라고 극찬한 일화에서 유래했단다. 나라의 안녕과 부처님 세상인 정토를 꿈꾸는 바람이 담긴 셈이다.

안국사(安國寺)는 고려 충렬왕 3년, 그러니까 1277년에 월인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광해군 년(1614)에는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해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려고 이 절을 확장했다. 다시 말해 스님들이 조선의 역사와 족보를 지켰다. 「안국사중수기」에도 “왕조실록과 왕실의 계보를 비장(秘藏, 비밀스럽게 숨겨 둠)하고 승병들로 수호하게 하였으므로 족히 믿고 근심할 것이 없다”라고 적고 있다.

여기에는 숨은 일화가 있다. 때는 *정묘호란, 훗날 청나라가 된 후금이 조선을 쳐들어왔고 사고를 지키는 승병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안국사 상훈 스님만이 홀로 사고 실록을 바리바리 싸서 들고 안렴대에 있는 석굴에 옮겨 보관했단다. ‘석실비장(石室秘藏)’이란 편액을 안국사가 소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훗날 이조판서 이직은 승병이 흩어져 없고, 군량미도 적은 실정을 조정에 보고하고 사찰 건립을 의뢰하니, 안국사를 보조할 호국사(護國寺)가 생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지금 안국사 자리는 안국사를 보조하던 호국사 자리였다. 수직으로 선 절벽을 이용한 양수발전소가 들어서자, 수몰 위기에 처한 안국사가 호국사의 터로 이전한 것이다. 이때 사고도 수몰 지역에 들어가 지금의 사고 자리로 옮겼고, 왕실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각은 안국사의 천불전으로 거듭났다.

*정묘호란 : 조선 인조 때, 1627년 후금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구실로 조선에 쳐들어와 벌인 전쟁, 강화를 맺고 ‘형제’의 관계를 맺었지만 9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남.

학대사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극락전의 단청.
학대사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극락전의 단청.

“욕심이잖여, 안 그려?” 단청하다 날아간 학대사
적상산의 반전은 여기 또 있었다. 예약도 않고 찾은 사고에서 불쑥 나타난 존재!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 맛깔났다. 앞서 나열한 정보도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토대로 자료 조사를 거쳐 재구성했다.

문화관광해설사는 뜻밖의 일화를 전했다. 학대사다. 안국사를 참배하고 돌아서서 사고에 들렀다 들은 슬픈(?) 소식이었다. 다시 안국사로 올라가야 했으니…. 아무튼 주불전인 극락전에 단청이 딱 하루에 칠할만한 분량이 안 된 곳이 있단다. 그러면서 꺼낸 이야기가 학대사다.

때는 바야흐로, 1865년 안국사의 중창불사 시절 이야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경복궁도 1865년 재건해야 했고 단청공은 모두 한양에 갔더랬다. 일꾼을 구하기 어려웠던 안국사 스님들과 불자들은 정성으로 100일 기도를 했고, 회향 날 허름한 차림의 노승이 구세주처럼 등장했단다.

“왜 단청을 안 하느냐?” “단청할 일꾼이 다 한양으로 가서 없습니다.” “내가 해줄 터이니, 100일 동안 안을 들여다보지 말아라. 대신 아침마다 물 한 그릇만 놓고 가거라.”

안국사 스님들과 불자들은 극락전 전체를 하얀 광목천으로 둘러쳤고, 노승은 단청을 시작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인기척 하나 없는 단청 불사에 스님은 궁금증이 일었다. 마침 하얀 광목천이 조금 찢어진 구멍으로 엿보던 찰나, 입에 붓을 물고 단청하던 학이 인기척에 놀라 날아가 버렸다. 단청 불사 99일째 일이었다.

“욕심이잖여, 안 그려?”

문화관광해설사의 나지막한 마무리 설명이 진한 여운을 남겼다.

적상산 사고.
적상산 사고.

“일단 육감으로 한 번 걸어보세요”
적상산 *사고(史庫)는 안국사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 적상호 인근에 자리했다. 수몰 지역에 포함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했다. 광해군 6년인 1614년 산성 내 실록전을 건립해 묘향산에 있던 실록을 적상산으로 옮겼고, 인조 19년인 1641년 선원각을 건립하고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을 봉안하면서 완전한 사고 역할을 했단다. 실록 824책, 선원록 1446책, 의궤 260책 등 총 5515책을 적상산 사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역사 지식이 쌓여갈 즈음, 문화관광해설사가 반전을 선물했다. 숫자 1614에 담긴 비밀을 공개했다. 덕유산 해발 높이가 1614m, 북한 묘향산에 있던 실록을 옮겨오고자 적상산 내 실록각을 건립한 해가 1614년이다. 또 있다. “무주의 마케팅 번호여.” “네?” “일단 육감으로 한 번 사보세요. 하하하.”

반전은 또 있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차로 올라도 안국사와 사고, 안렴대를 찾아갈 수 있다. 굳이 능선 타고 걷지 않아도…. 그래서 이번 길을 이렇게 추천한다.

“일단 육감으로 한 번 걸어보세요.”

*사고(史庫) :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왕실 족보, 실록, 왕실 의궤 등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서고. 강화 정족산, 무주 적상산, 봉화 태백산, 평창 오대산에 있었음.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 조선 시대 왕실의 족보.

안국사 인근 가볼 만한 곳
안국사와 사고를 다 둘러봤다면, 잘 닦인 도로를 따라 사고 옆으로 이동하면 적상산 전망대를 만난다. 적상호를 곁에 두고 드라이브하면서 단풍 구경하다 도면 다다른다. 꼭 들르길 권한다.

적상산 전망대.
적상산 전망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고통을 잊게 만들기 충분하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고통을 잊게 만들기 충분하다.

적상산 전망대
적상산 사고에서 5분 정도 차로 이동하면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양수발전소 상부댐인 적상호가 내려다보인다. 전망대를 빙 둘러 걸어 올라가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비하면 그 정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적상산 안국사 여정
코스 : 서창공원지킴터~장도바위~적상산성 서문~향로봉 삼거리~향로봉(해발 1,024m)~향로봉 삼거리~안렴대~안국사~적상산 사고
거리 : 약 6km
시간 : 3시간 50분(편도, 휴식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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