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도리사
417년(신라 눌지왕) 고구려 승려 아도 화상이 포교를 위해 세운 신라 최초의 사찰이자 신라불교의 발상지다. 1976년 사리탑 보수 공사 중 아도 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올 때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된 채 발견됐다. 금동육각사리함은 국보 제208호로 지정돼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소장돼 있다. 경내에는 극락전 본당, 조사전, 칠성각 등의 법당과 요사가 있으며, 도리사 법당 뒤쪽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 조성돼 법당 안에서 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릴 수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0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을 비롯해 아도 화상 석상, 세존사리탑, 아도 화상 사적비, 조선 후기 탱화 등이 있다.
대구 용연사
912년(신라 경덕왕 1년)에 보양 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보물 제539호로 지정된 금강계단에 부처님 사리가 봉안돼 있다. 사명 대사의 제자 청진 스님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피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통도사에서 금강사로 모셔가던 중 사리 1과를 용연사에 봉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내에는 금강계단 외에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호인 삼층석탑, 12기의 부도들 등 소중한 유적들이 있다. 한편 용연사가 위치한 비슬산의 ‘비슬’은 고대 인도 힌두의 신으로 불교에 수용된 ‘비슈누’를 한자로 음역한 ‘비슬노(毘瑟怒)’에서 비롯된 말이다. 신라 시대에 관기와 도성이라는 두 성인이 비슬산에서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으며,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 또한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알려졌다.
고성 건봉사
520년(신라 법흥왕 7년) 아도 화상이 창건하고 원각사라고 이름 지었다. 758년 발진 화상이 중건해 정신, 양순 스님 등과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시초다.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사찰을 중수해서 서봉사로 개칭했고, 1358년(공민왕 7년) 나옹 스님이 중건한 뒤 건봉사로 개칭해 비로소 염불과 선, 교의 수행을 갖춘 사찰이 됐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 대사가 승병을 기병한 호국의 본거지였으며, 1605년에는 일본에 강화사로 갔던 사명 대사가 왜군이 통도사에서 약탈해 갔던 부처님 치아사리를 되찾아와서 이 절에 봉안한 뒤 1606년에 중건했다. 한국전쟁 당시 건봉산 지역 전투로 사찰이 폐허로 변했지만 1994년 이후 점차 복원돼 오늘에 이른다. 옛 절터와 대웅전, 강원 문화재자료 제35호인 건봉사 불이문, 7기의 탑, 48기의 부도, 31기의 비석이 있다.
산청 법계사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인도에서 온 연기 조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면서 세운 적멸보궁 도량이다. 해발 1,450m 높이에 위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찰로도 알려져 있다. 1380년(고려 우왕 6년) 이성계에게 패한 왜군에 의해 불탔고, 1405년 정심 선사가 중창했다. 이후 수행처로서 널리 알려져 많은 고승을 배출했다. 구한말, 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방화를 일으킨 일본군에 의해 또다시 소실됐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 법당 건물이 다시 하나둘씩 들어섰다. 보물 제473호로 지정된 법계사 삼층석탑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으며, 거대한 자연 암석을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점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