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부처님의 유·무형 핵심 중요한 귀의처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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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 부처님의 유·무형 핵심 중요한 귀의처 되다
  • 자현 스님
  • 승인 2021.02.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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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의 공간, 보궁
영축산 통도사.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희랍과 인도는 아리안족이라는 동일한 종족이 분화한 결과다. 때문에 이들은 같은 배경 문화를 공유한다. 희랍과 인도는 신을 넘어선 진리에 대한 추구를 매우 이른 시기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진리를 궁극적 본질로 이해했다. 희랍에서는 이것을 아르케(arche)라고 하는데,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제1 원소’라는 의미다. 인도의 요소설*도 이와 같은 연장선 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이 아닌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고대인들은 이 문제를 신체 중 가장 견고하며, 시체가 분해될 때 끝까지 남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것이 바로 ‘치아’와 ‘뼈’다. 바로 이 부분이 사리신앙이 등장하는 첫 페이지가 된다.

 

사리신앙 등장의 첫 페이지

인체의 가장 단단한 질료는 치아다. 때문에 치아는 전 세계적으로 숭배되는 양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치아는 빠져도 사람이 사는 데 문제가 없다. 즉 필수 구성요소는 아닌 것이다. 이로 인해 ‘뼈 중에 가장 중요한 뼈’에 대한 생각이 대두한다. 이것이 바로 두개골 즉 정골(頂骨)이다. 치사리(齒舍利)와 정골사리(頂骨舍利)의 개념은 이렇게 등장한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정골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골은 뇌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게 되면, 정골사리를 넘어서는 뇌사리라는 개념이 도출된다.

이와 같은 측면들은 한국불교에도 이식되는데, 고성 건봉사의 치사리와 통도사의 정골사리와 오대산 중대의 뇌사리가 바로 그것이다. 사리의 의미는 초기에는 상당히 넓었다. 8종이 현존하는 초기의 『열반경』에는, 부처님의 화장 전 유체(遺體), 즉 법구(法軀)를 사리라고 칭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또 화장된 뒤 수습된 뼈, 즉 영골(靈骨)도 사리로 칭해진다. 이는 초기의 사리 개념이 부처님이 남긴 유형의 전체임을 분명히 한다.

이것이 점차 ‘핵심의 의미’로 변모하면서, 우리가 아는 구슬 형태를 띤 ‘수행의 결정’으로 바뀌게 된다. 또 무형적으로는 부처님이 가르친 진리, 즉 법신사리(경전)의 개념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유형적인 불사리와 무형적인 법신사리를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는, 이것이 ‘부처님의 궁극적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사리신앙과 숭배구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된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산악숭배가 강력했다. 『삼국사기』 권32 「제사(祭祀)」조 등에는, 신라에 3산·5악(岳)**을 숭배하는 전통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에는 신라 사리의 기원을 진흥왕 때인 549년, 양무제가 보낸 것으로 삼고 있다. 그 다음이 한국 사리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자장 율사다. 자장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에게 불사리 등의 성물을 받아 643년 신라로 귀국한다. 자장은 이 사리를 국찰 황룡사와 당나라와의 외교 거점이었던 울산 태화사와 스님의 수계를 위해서 건립한 통도사에 1차 봉안한다. 이중 주목할 사찰이 축서산에 독룡의 항복을 받고 정골사리를 모셨다는 통도사다. 이는 전통적인 산앙숭배와 결합되는 사리신앙의 첫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장의 2차 사리 봉안은 진덕여왕 때 김유신과 김춘추 세력에 밀려, 당시 하슬라인 동북방의 명주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시작된다. 이때 평창 오대산 중대에 뇌사리가 모셔진다. 명주의 사리신앙은 조선 후기가 되면, 태백산(현 한백산) 정암사와 사자산 법흥사로 확대된다. 그런데 이 사찰들도 모두 산악숭배와 결합 양상을 띠고 있다. 즉 산악숭배를 대체하는 사리신앙의 양상이 목도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리신앙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위로는 새가 날지 못하는 신성함

우리나라 사리신앙에 있어서 ‘적멸보궁’이라는 명칭은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이 명칭은 『삼국유사』나 『고려사』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보궁’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기록된 문헌은 『오대산사적』 속 「아조본산사적(我朝本山事蹟)」의 1466년 음력 10월 5일의 기록이다. ‘적멸보궁’이라는 명칭은 윤선거의 「파동기행(巴東紀行)」에 언급된 1664년 음력 3월 7일의 내용 중 오대산 중대와 관련된 적멸보궁이라는 편액에 대한 내용이 가장 빠르다. 즉 오대산 중대에서 여말선초 무렵 ‘보궁’이라는 명칭이 사용됐고, 이것이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적멸보궁’이라는 명칭으로 완성됐다. 이는 ‘적멸보궁’이라는 표현이 오대산 중대에서 비롯돼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임을 분명히 해준다.

보궁은 부처님의 에너지가 응축된 사리를 모신 최고의 신성 공간이다. 이 때문에 보궁의 위로는 새가 날지 못하며, 짐승이 깃들지 못하는 이적이 발생한다. 중대 보궁과 관련해서, 『세조실록』 권38에 수록된 윤달 3월 28일에 세조가 중대에 행차한 기록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는 ‘당시 사리가 분신하여 증과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며, 운무 속에 감로가 가득하고 기이한 향기가 온 산을 진동했다’고 기록돼 있다. 『실록』이 유교 왕조인 조선의 실증적인 공식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내용은 사리와 보궁의 신령함을 알 수 있는 최고의 문헌이다. 이와 같은 이적들은 통도사에서도 다수 확인된다. 최고의 성지인 보궁을 참배하면, 신앙인은 사리를 통해 부처님의 위대한 에너지를 공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삶에 있어 모든 선은 증장하고 악은 소멸하는 복됨을 성취하게 된다. 불상에 올리는 기도가 무형적인 가피를 산출한다면, 보궁의 기도는 유형적인 사리를 통해서 보다 구체성을 확보한다. 실제로 모든 보궁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이는 보궁에는 사리라는 실체가 존재하므로, 상징으로서의 불상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보다 구체적인 완전성이 보궁의 기도 속에 존재한다. 이로 인해 스님들도 수계를 하거나 마음을 다잡을 때는 보궁 참배나 기도를 올리곤 한다. 이는 부처님이라는 올바른 기준을 통해서 자신을 바루고 맑혀 거듭나기 위함이다. 즉 보궁은 신도를 넘어서 스님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귀의처가 되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세상에서 복을 구하는 사람으로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부처님도 이러할진대, 우리들은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부처님의 가피와 영산의 신령함이 서려 있는 최고의 성지 보궁. 그곳에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해 미래를 여는 것은 가장 분명한 밝음을 맞는 가치임에 틀림없다.

최상의 복전, 보궁

현존하는 보궁들은 한결같이 전통의 산악숭배와 결합돼 최고의 길지인 명당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궁을 참배하고 기도하면 영산의 신령한 기운도 함께 힘입을 수 있다.

우리는 정초의 정월 대보름 안에 유서 깊은 사찰을 순례하며 방생한다. 이를 통해 모든 1년의 액난을 물리치고 한 해의 복됨을 구축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나 할까? 불을 밝히면 어둠이 사라지듯, 삿됨이 무너지면 올바름은 스스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가 바로 정월의 성지순례와 방생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궁은 정초에 스스로를 올바로 하는 최상의 복전(福田) 공간이다.

우리 전통에는 ‘1년의 액난은 연초에 도액한다’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모든 벽사의 세시풍속은 정월 대보름으로 끝난다. 이 시기에 보궁을 참배하고 1년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는 최고의 행위다. 

공덕은 정신적인 자산이며, 복덕은 물질적인 풍요를 담당한다. 그런데 보궁은 이러한 두 가지 복을 가장 빠르게 산출하는 영지다. 그러므로 새해 행복과 안락을 위해 보궁을 참배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가장 시급한 행보다.   

 

*인간과 세계의 구성이 기본적인 요소의 결합구조로 구성돼 있다는 주장. 지·수·화·풍의 4대설이나 5온·12처·18계의 3과설(三科說) 또는 아지비카교의 12요소설 등이 있다.

**3산은 나력·골화·혈례이며, 5악은 토함산(동악), 지리산(남악), 계룡산(서악), 태백산(북악), 팔공산(중악)이다. 조선의 오악은 수도의 기준점과 영토의 차이에 따라서 금강산(동악), 지리산(남악), 묘향산(서악), 백두산(북악), 삼각산(북한산, 중악)으로 변경된다.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월정사 교무국장을 맡고 있다. 인도·중국·한국·일본과 관련된 160여 편의 논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수록했으며,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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