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한다.”(『동국여지승람』)
봄에도 눈꽃을 볼 수 있다는 암자는 6시간 정도 설악산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봉정암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법의 결정체,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이 있다.
여느 탑과 달리 기단도 없이 자연 암반 위에 올라섰다. 겨울 찬 기운에 미동도 없다. 무엇을 말하는 걸까. 눈꽃을 이고 진 나뭇가지는 고개를 꺾었는데, 탑은 홀로 고요하다.
봉정암에 새벽의 찬 기운 서린 눈보라가 비처럼 쏟아져도, 설악 초목과 거대한 바위들은 천년을 하루같이 탑을 향해 예배하고 있다. 쌓인 눈은 스님의 발걸음 소리를 삼켰다.
설악산 가장 높은 곳에, 봉정암이 있다.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에 오르는 길목에 있는 암자로, 해발 1,244m 지점에 봉정암이 자리했다. 백담사에서 대청봉으로 향하는 내설악 최고 절경 안에 있다. 길이 만만치 않다. 숨이 넘어갈 듯한 구간 몇 개를 넘어야 다다른다. 그래도 순례자들은 봉정암을 참배한다. 그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봉정암(鳳頂庵)이 주는 환희 때문이다.
봉정암은 암자 이름대로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앉았다. 가섭봉, 아난봉, 기린봉, 할미봉, 독성봉, 나란봉, 산신봉이 둘러쌌다. 순례객이 공양물 짊어지고 곡예 하듯 한참 기어가듯 올라가야 비로소 봉정암과 불뇌사리보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눈[雪]과 큰 산[嶽], 사람이 빚은 신심의 삼중주는 탄식을 연주한다. 전생에 인연이 닿지 않으면 참배하기 어려운 그곳, 눈 쌓인 설악의 적멸은 바로 봉정암에서 완성된다.
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