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三寶)의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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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三寶)의 공덕
  • 관리자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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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행공덕1

불교의 세 가지 보배를 삼보라고 한다. 삼보는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따르는 승가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교조〔佛〕·교리〔法〕·교단〔僧〕을 삼보라고 한다. 삼보는 곧 종교의 기본적 구성 요소다.
그러므로 불교도의 신앙 생활은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며, 그 가르침을 따르는 승가에 귀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면 왜 삼보를 보배라고 하는가? 이에 대해 『심지관경(心地觀經)』에서는 비유를 들어 자세히 밝히고 있다. 이 경에 의하면, 최고의 진귀한 보물은 열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불·법·승 삼보도 이러한 열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보배라고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견고함이다. 특히 마니주(摩尼珠)를 아무도 깨뜨리지 못하는 것처럼, 삼보도 외도(外道)나 천마(天魔)가 능히 깨뜨리지 못한다. 훌륭한 보석의 특징은 견고함이다. 외도란 다른 종교나 사상을 말한다. 천마는 악마나 귀신을 뜻한다. 다른 종교나 사상, 그리고 악마나 귀신들이 불법승 삼보를 파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불교는 그 어느 사상보다도 위대하다는 것을 견고함에 비유한 것이다.
둘째는 더러움을 떠난 청정함이다. 세상의 뛰어난 보배가 청아하고 빛나서 더러움과 섞이지 않는 것처럼, 불법승의 삼보도 번뇌의 더러움을 온통 멀리 떠났다. 삼보는 번뇌의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 청정하기 때문에 보배라고 한다.
셋째는 즐거움을 준다. 천덕병(天德甁)이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불법승의 삼보도 중생에게 세간(世間)·출세간(出世間)의 즐거움을 준다. 천덕병은 천상에 있는 병인데, 원하는 것이 뜻대로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삶의 방법이기 때문에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이 세상에서 최상의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을 현법열반(現法涅槃)이라고 한다. 삼보를 통해 이와 같은 진정한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보배라고 한다.
넷째는 만나기 어려움이다. 길상보(吉祥寶)가 아주 귀해서 얻기 어려운 것처럼, 불법승의 보배도 업장이 두터운 중생은 억겁이 지나도 만나기 어렵다. 길상보는 좋은 향·약·진주·금은 등이 가득 들어 있는 보배를 말한다. 이러한 진귀한 보배를 만나기 어려운 것처럼 삼보도 참으로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보배인 것이다. 이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생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하고 죽는다. 그런데 불법을 만난 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다섯째는 깨는 작용이다. 여의보(如意寶)가 가난을 깨는 것처럼, 불법승의 보배도 중생의 가난을 깨뜨린다. 가난 즉 궁핍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있다. 부처님은 재가자들이 물질적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놓았다. 따라서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물질적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편 불교에서는 물질적 풍요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풍요를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할지라도 정신적으로 궁핍하다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 삼보는 이러한 물질적 정신적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기 때문에 보배라고 한다.
여섯째는 위덕(威德)이다. 전륜왕(轉輪王)이 지닌 윤보(輪寶)가 여러 적을 굴복시키는 것처럼, 불법승의 보배도 신통을 갖추어 여러 악마를 항복시킨다. 다른 경에서 전륜성왕은 윤보로써 적을 항복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위덕, 즉 위신력으로 사람과 천신을 항복시킨다. 부처님의 위신력이란 곧 지혜와 자비의 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을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늘로 날아다닌다거나 물 위로 걸어 다니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적과 악마는 우리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를 말한다. 불교도는 언제나 지혜와 자비의 힘으로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항복시킨다. 이러한 지혜와 자비의 위덕이 있기 때문에 보배라고 한다.
일곱째는 원(願)을 만족시킴이다. 마니주가 소원을 따라 온갖 보배를 내리는 것처럼, 불법승의 보배도 중생이 실천할 좋은 원을 만족시켜 준다. 탐욕은 중생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원은 자기완성과 중생교화를 위한 정신적 실천적 덕목들이다. 이러한 원을 삼보를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보배라고 한다.
여덟째는 장엄(莊嚴)이다. 세상의 진귀한 보배가 왕궁을 장엄하는 것처럼, 불법승도 법왕(法王)의 깨달음의 궁전을 장엄한다. 사람들은 외형적인 화장으로 아름답게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일시적인 화장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장엄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움을 말한다. 지계의 향기, 선정의 향기, 지혜의 향기, 해탈의 향기, 해탈지견의 향기, 즉 오분향(五分香)을 통해 오분법신(五分法身)을 장엄한다. 삼보를 통해 이러한 깨달음의 궁전을 장엄하기 때문에 보배라고 한다.
아홉째는 가장 뛰어남이다. 제천(諸天)의 보배가 가장 훌륭한 것처럼, 불법승의 보배도 여러 중생의 가장 우수하다는 보배를 훨씬 능가한다. 보물에도 서열이 있다. 가장 값진 보물이 있듯이 종교와 사상에도 서열이 있다는 의미다. 어떤 다른 종교나 사상도 어느 한 부분에 있어서는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상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삼보는 가치를 논할 수 없는 보배라고 한다.
열째는 불변함이다. 순금이 불에 넣어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불법승의 보배도 세상의 팔풍(八風)이 흔들어대지 못한다. 팔풍이란 이익과 손해, 불명예와 명예, 칭찬과 책망, 괴로움과 즐거움을 말한다. 세상사람들은 이런 것에 동요된다. 그러나 삼보는 팔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변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보배인 것이다.
이와 같이 불·법·승 삼보에는 열 가지 조건, 즉 공덕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삼보에 귀의하면 이러한 열 가지 공덕을 얻게 된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곧 마음 속으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승가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즉 염불(念佛)·염법(念法)·염승(念僧)이 곧 삼귀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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