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운명이 있습니까?
상태바
사람에게 운명이 있습니까?
  • 관리자
  • 승인 2007.09.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의 의문에서 그 해결까지

살아가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도 잘 살기가 힘듭니다. 아무래도 운명인 듯한데 정말 사람에게 운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로부터 사람에게 운명이 있는지, 아니 운명이 분명 있는 것 같다며 스스로 결론을 지어놓고 확인해보는 듯한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린다면 사람에게 결정지어진 운명은 없습니다.
운명이 인간 스스로가 변화시키고 개조시키지 못할 숙명적인 힘을 말하는 것이라면 원래로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본성인 법성(法性)에는 가히 얻을 것이란 한 물건도 없습니다. 지음도 없고 함(爲)도 없습니다. 인과도 없고 선악도 없습니다. 그러니 운명이라는 숙명적 타성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본성을 미혹하여 쓰고 있는 범부에게는 지음도 있고 인과도 있고 선악도 있습니다. 지은 바 행위의 누적인 업도 있고 업보도 있습니다. 하지만 밖에서 작용해오는 위압적 힘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위, 지은 바대로 받는 인과와 선악의 업보는 인간 스스로가 지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범부 인간은 기나긴 미혹의 생을 계속해 살면서도 전생은 알지 못하고 눈앞의 금생만을 의식합니다. 금생이라는 짧고 좁은 면만을 두고 생각하게 되므로 보다 먼 과거의 자신이 지은 행위에 따른 결과적 과보를 자신 밖에서 오는 작용으로 잘못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일시적으로 지은 것만 생각하고, 도저히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고 감히 대항할 수 없는 머나먼 전생의 과보로부터의 타성적 힘을 체념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운명이라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운명적인 듯한 점이 없지는 않으나 그 또한 자기 자신이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금 스스로의 지혜로써 선택하고 용기로써 결단하여 새로운 운명을 지어갈 주체적 권능 또한 자기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을 안다면 운명이라는 것이 우리를 어찌하지 못하며 운명 앞에 호령하고 운명에 방향을 주며 새로운 운명을 지어가는 것이 인간인 것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운명이 운명의 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운명이 이런 것임을 안다면 설사 운명적인 듯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결코 체념하거나 당황할 것이 아닙니다. 원래로 갖추어진 불성(佛性)의 창조적 위력과 권능을 돌이켜 주어진 운명적 여건을 새로운 창조, 정진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자성불과 믿는 힘

불교는 자기 성품이 부처님이며 마음이 부처라고 하면서 그래서 스스로 믿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힘 없는 범부로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당혹스럽습니다.

사람의 본성이 부처이며, 마음이 법이라고 하는 것은 교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선포한 진실입니다. 인간의 권위와 가치와 자력계발을 위해서 만들어 낸 이론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인간의 실상이 부처이건만 우리가 의식하고 생활하는 세계는 미혹의 세계이며, 업의 세계입니다. 본래 부처의 세계이건만 미혹과 업으로 그렇게 보고 그렇게 산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성품이라 하고 마음이라 말해도 그것은 미혹 속의 말이며, 해탈을 말하고 청정을 말해도 업혹 속의 말입니다. ‘나’라고 말하나 그 ‘나’도 미혹된 의식으로 우리가 깨치기 전의 의식은 업력의 소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우리의 생명 본성이 어디로 간 것은 아닙니다. 변질된 것도 아닙니다.
깨달은 눈으로 보면 영겁을 통하여 변함없이 ‘여기 지금’에 있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부처님이 여기 계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자성불(自性佛)이라는 말은 곧 자기 본성이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온갖 일을 이룩하는 것도 근본 힘인즉 죄업의 힘이 아니라 부처님의 위신력입니다. 우리 생명의 본바탕이 부처님의 은혜로운 신력으로 충만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계에 집착하여 미혹세계를 의식합니다. 우리가 의식하는 미혹세계는 장애도 많고 고난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장애와 고난이라는 것이 우리의 본래 세계인 부처님의 은혜의 세계에는 원래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을 헤매는 범부들이 그를 벗어나자면 고난이 없는 부처님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염불입니다. 부처님을 생각함으로써 미혹의 속박이 무너지고 은혜로운 공덕세계가 나타납니다. 염불하는 것이 먼 데 있는 부처님을 찾는 것이 아니고 자기 참 생명인 부처님을 생각하여 함께하는 것입니다.
자성불이라고 말하나 자성불이라고 생각한 데서 불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성불이라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미혹된 생각이 낳은 분별심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만으로 힘이 없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깨달아 스스로 부처님 법을 사무쳐 보든지 아니면 대자대비, 무애위신력인 부처님을 믿고 일심 염불해야 합니다. 미혹의 구름이 벗겨지니 은혜의 태양이 비쳐오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분은 힘없는 범부라고 하셨으나 진실한 자기 생명이 부처님인 것을 믿고 일심 염불하신다면 처처에 불신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실 겁니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불력(佛力)으로 살며 업보세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공덕세계를 사는 것을 확실히 보시리라 믿습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