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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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길목에서
  • 관리자
  • 승인 2007.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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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샘/ 봄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

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에 어느 산자락에서 진달래와 개나리 가지 한줌을 꺽어왔다. 날씨는 매서운 겨울날씨지만 그것들을 물병에 꽂아 놓고 한 일주일 기다리니 연분홍, 노랑 꽃봉오리가 볼록볼록해지고 곧 터질 것 같다. 좀 더 기다리면 활짝 벌어져 봄소식을 전해 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조바심 내지 않더라도 머지않은 날에 봄기운이 천지를 훈훈하게 녹이면 세상은 밝고 화사한 꽃과 초목의 푸르름 속에서 생명의 활기가 다시 넘치게 될 것이다. 비록 꺽어왔기에 이들이 뿌리내리고 살수는 없을 것이라서 한편 안쓰럽다.
그러나 황량한 겨울 숲 속에서 따뜻한 방안으로 들여 온 것은 이들이 죽음 같은 겨울 한파 속에서도 제 생명의 싹을 온전히 보존하고 더욱 추위 속에서 보이지 않게 힘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마디마디에 작은 싹을 숨겨놓고 이 무용한 듯이 보이는 시간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한 겨울 속에 땅 위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지상의 나무 줄기가 봄기운을 낼 수 있도록 땅 속에서도 뿌리마다 한껏 양분과 수분을 모아놓고 있다. 또 아예 땅 위의 줄기를 포기한 초목들은 모든 에너지를 뿌리에 또는 씨앗에 모아놓고 생명의 싹과 함께 조용히 숨쉬고 있다. 죽어 있는 듯한 속에서도 사실은 가장 적절한 자세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생명을 얼려 죽일 것 같은 겨울 추위가 끝없이 계속되지 못할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곤란해지고 있다. 마치 겨울이 갑자기 닥친 듯이 우리의 살림이 움츠러들고 마음 또한 무겁고 불안해 진다.
기업은 계속 쓰러지고 실직과 감원은 바로 나에게 다가오는 실체로 느껴지고, 앞날은 더욱 춥고 어두워질 듯이 의식이 길들여지고 있다. 누군가는 원망하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다시 불안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버리고 `나 먼저 살고 보자'는 생각만 붙들게 된다. 이 어려움을 당하고 보니 후회되는 것이 많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아파트 계단이나 쓰레기통 주변에는 쓸만한 가구나 옷가지 등 그냥 버리기 아쉬운 물건들이 쌓여 있었고, 아이들이 뛰노는 학교 운동장에는 멀정한 연필, 지우개, 모자, 장갑 등이 임자 없이 굴러 다녔다.
심지어 쓰레기 버릴 곳 없어 싸움질하면서도 먹다 버리는 음식물 찌꺼기는 줄어들 줄 몰랐다. 다들 갑자기 부자가 된 줄 알았고 그것이 자기 복인 줄 알았다. 그 모든 것이 거품이오, 착각인 것을!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 생활에 어차피 닥친 겨울이요, 한 번은 겪어야 할 겨울이 아닌가 싶다. 이 고생이, 이 괴로움이 잘 됐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으로 줄여 생활하는 훈련의 기회로 생각하자 싶다. 과거 우리와 우리 윗 세대가 전쟁과 그 혹독한 궁핍 속에서도 억세게도 살아 남았던 경험을 기억하고 싶다. 겨울을 견디며 봄을 맞는 초목들한테서 그 삶의 지혜를 본받고 싶다. 그 힘찬 생명력을 …. 가장 길고 긴 밤이 되는 동지가 되는 때는 아직 본격적인 겨울의 추위는 시작되지 않는 12월이다. 1, 2월의 추위가 더 혹독하고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지만 이 때는 이미 봄을 향해 한 참을 간 것이다. 우리 생활에 불어닥친 이 겨울도 이와 같이 않을가? 없어서 겪는 괴로움 반대편에는 없어서 덜게 되는 걱정 근심조차 보이지 않는가? 거추장스러워진 잎사귀를 떨쳐내고, 줄기를 내버리고, 그것조차 아니다 싶으면 `씨'만 남기고 모두 버리되 `생명의 싹'만은 온전히 보존하는 초목처럼 우리도 살아 숨쉬는 `마음의 씨'만은 간직하고 봄을 준비하면 어떨가?

윤용남 님은 `50년 생으로 현재 한국은행 인사부(신협)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류기송(柳基松)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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