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상태바
참된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 관리자
  • 승인 2009.06.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광법단
 
우리의 일생생활 가운데서 기도 아닌 것이 없지만 어떤 생활, 어떤 기도를 하든지 반드시 감사와 공경이 앞서 있어야 합니다.  만약 감사와 공경이 없는 말을 해서 대립의식이나 내지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기도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루의 삶 전체를 어둡게 합니다.  아무리 기도를 하고 부처님께 헌공을 하더라도 가족이나 이웃에게 감사와 존경과 화합이 없으면 공덕은 거둘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일심으로 기도하며 만사는 부처님 위신력으로 이루어져가는 것을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참된 소망 즉, 자기를 성장시키고 남에게 불행을 주지 않는 기도는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기 어렵겠다는 의구심이나 공포감을 가져서는 아니됩니다.  노여움도, 원망도, 미움도, 대립감정도 모두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진리에서는 모두가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부처님이 무한의 지혜와 자비로 만사를 평화롭게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일심으로 염불하는 것입니다.
특히 잠들기 전에 간절하게 기도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희망의 새날이 밝아온 것을 감사하며 기도하고 그리고 굳세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모두가 기도로서 시작되고 기도를 통해서 진리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굳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세상에 무엇인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원하고 내가 노력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 힘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실로는 허망한 나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참으로 있는 존재가 못되고 거짓된 것을 자기가 붙잡고 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것도 거짓이고 정신적인 것도 거짓이고 나를 형성하고 있는 나의 환경 그 모두는 임시 모여있는 그런 허망한 현상인 것입니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실로는 공(空)한 것입니다.  무(無)입니다.  경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반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여기에 대해서 확신이 없으신 분은 우선, “진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무다.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은 무다.  [반야심경]에 그렇게 반복해서 말씀하시고 계시다.”  이 정도로만 이해하셔도 좋겠습니다.
실로 있는 것은 부처님의 경계입니다.  부처님의 진리 부처님의 위신력만이 참으로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아도 실로는 이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하는 진리에 의해서 만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하여야 하고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꼭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데 있어서 유념할 점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세한 것은 [생의 의문에서 그 해결까지]라는 책의 [기도장]에 상술했습니다.

참된 소망이어야 한다
첫째는 참된 소망이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기도를 하면서도 참된 소망이라고 보기 어려운 소망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기의 욕망충족을 위해서 돈을 요구한다든가 윤택한 생활을 위하여 돈을 요구한다든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돈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이 직접 기쁘게 하여주고 돈이 직접 병을 고쳐주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라는 것은 실지로 급할 때 그것을 삶아 먹는 것도 아니고 아플 때 먹어서 약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교환해주는 매개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돈은 진정한 소망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매개물을 소망으로 삼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내가 소망하는 것, 참으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약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건강이 필요한 것이지 약이나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건강이 진정한 소망입니다.
또 윤택한 생활을 바란다면 생활하는 데 걸림이 없고 건강하고 기쁜 환경이 되는 것이 목적하는 바이고 진정한 소망이지, 건강하고 기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 무엇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들은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소망은 지혜에 비춰 보아서 참으로 내 생명이 직접 필요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새로워지고 밝아져야 한다
두 번째는 자신이 성장하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자기가 노력안하고 게을러도 된다거나 자기 개혁을 하지 않고 노력 없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옳은 것이 못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개혁을 해서 자기가 새로워지고, 밝아져서 진리가 나타나고 자신이 향상되고 진리로서 자기완성을 해가야 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이 바라시는 바이고 진리가 원하는 원래의 생리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를 집착하고 미혹에 집착해서 자기는 게으르면서 환경이 저절로 바뀌어 지길 바랄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하는 것이고 후퇴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고 성장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후퇴입니다.  제자리 걸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순간 순간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생명의 원 모습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혜, 능력, 건강조건 무엇이든지 좋으니 끊임없이 노력해서 향상하고 성장을 기하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남을 희생시키는 것은 기도가 될 수 없다
세 번째 소망은 타인을 희생시키지 않고 남에게 불행을 주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잘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안 되기를 바라거나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은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내 소망이 이우러지므로 해서 내가 잘되고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적어도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합니다.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기도가 참으로 옳은 기도입니다.
우리들 소망 가운데에는 다른 사람을 제치고 그 위에 서겠다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들 판단 가운데에는 다른 사람과 내가 대결 상태라고 믿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여도 부처님의 지혜의 눈으로 보아서는 그렇지가 않은 것입니다.  온 이웃은 대립관계가 아니라 협동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사방이 막혀 있는 것 같이 보이고 그렇게 생각되어도 부처님과는 막힘이 없이 항상 통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상황도 사방이 막힌 것 같이 보여도 부처님의 지혜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경우라도 남에게 희생을 가져오고 남에게 불행을 끼치는 그런 소망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이로움을 주는 그런 기도이어야 합니다.

남에게 이익을 주는 기도가 나를 위한 것
이 이야기는 일본의 이찌무라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니콘 카메라 회사 사장인데 가스를 액화해서 판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사업을 확충하여야 하겠는데 무엇을 하면 좋을까, 어떤 사업에 손을 댈까 하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 ‘내 재능을 충분히 발휘해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무엇일까’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이 사회에 무엇인가 이익을 줄 수 있는 일, 그것을 소망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사실 남한테 이익을 주어야 나에게 그만큼 돌아오는 것입니다.  장사가 잘 되고 돈이 모아지는 것도 남에게 이익을 주고 도움을 주어야 나와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고객에게 도움을 주면 줄수록 더 많이 거래량이 늘고 나의 소득도 그만큼 많아지는 것입니다.  일체가 다 그런 것입니다.
이 일본 사람은 지도를 옳게 잘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했기 때문에 기도 끝에 그런 아이디어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기도에서 얻어진 아이디어는 정유과정에서 그냥 태워 버리는 석유가스를 활용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가스를 영하 140도 이하로 냉각시키면 액체가 되고 부피도 200분의 1로 준다는 것을 기도 끝에 탁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자본을 투입하고 액화공장을 시작해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 사람의 경우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의 천분을 발휘해서 사회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이익을 줄까 하는 생각으로 기도를 한 것입니다.
타인을 희생시키고 남을 짓밟고 내가 올라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성공하지 못하며 기도 성취도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 성취를 하려면 자기의 천분을 살리고 그것을 발휘해서 무엇인가 사회에 이익을 주겠다는 큰 원을 갖고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자기 자신에게 이미 깃들어 있는 진리의 빛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믿고 기도하면 꼭 이루어진다
네 번째는 부정적인 생각을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나의 소망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과학적으로 판단해도 그렇고 사회적인 상황으로 보아서도 되기 어렵다 하는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어렵다고 생각되고 과학적인 판단으로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은 무애의 위신력이고 절대무한의 원류인 까닭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우리가 판단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부처님을 믿고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하는 확신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마음의 어두움을 버려야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 노여움, 원망, 대립 감정, 미움, 갈등 등 이런 것들은 부처님과 나와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두운 것으로 진리와 나를 가로막아 놓고 “진리여, 빛이여, 나의 길을 열어다오”하고 기도하여 보았자 어두운 마음을 제거하고 문을 열기 전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노여움 • 원망 • 미움 같은 감정의 덩어리가 자기 자신에 넘쳐나는 진리를 장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붙들고 있는 한은 염불하고 기도해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우리 생활 가운데 내어 쓰고자 하는 사람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이러한 어두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참회해야 합니다.  말끔히 비워야 합니다.

부처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다
여섯 번째는 진리에서는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아무리 염해도 기도 성취가 안 된다.  부처님의 영험이 요즈음은 없어졌나보다 이러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부처님의 능력이 감퇴되어서 못 들으셨거나 못 보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염불하는 것은 “부처님이시여, 나를 생각해주십시오, 내 목소리를 들으시고 내 소원을 들어주십시오”하고 부처님께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부처님은 밤낮으로 항상 진리로서 우리 생명을 키우시고 돌보시고 성숙시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우리입니다.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마음으로 그것을 가리고 외면하고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경우를 보더라도 [지장본원경]을 보면 지장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분신을 나두시고 우리곁에 항상 계시다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털끝만한 착한 일을 지어도 그것을 증명하시고 그것을 인연해서 고난에서 벗어나고 천상에 태어나거나 열반에 이르는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부처님은 항상 모두가 법성신을 이룰 것을 염원하고 계신다”고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마음에 부처님을 간직하는 것이 기도
부처님이 나를 아니 보시고 나를 잊고 계실까봐 나를 잊지 마시라고 깨우치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내가 부처님을 잊고 있던 것을 돌이켜서 내 마음에 부처님을 간직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가 잊었던 광명을 찾아서 내 것으로 하는 노력이 기도입니다.
내 생명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아도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내 생명 자체가 부처님의 은덕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가는 것, 내 생명 부처님 공덕생명, 내 생명 마하반야바라밀, 내 생명 부처님 위신력, 이렇게 끊임없이 잊징 낳는 그것이 기도입니다.
부처님이 나를 잊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잊고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생각, 담담한 생각, 고난스러운 생각, 세상을 저주하고 사람을 미워하고 살아온 것은 바로 나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리의 참된 생명의 본원입니다.  그 참된 생명의 본원이신 부처님은 완전한 상태로 진리 그대로 내 생명에 지금 계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 밑바닥에는 완전한 상태의 진리의 모든 공덕이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하지 않아도 이미 원래로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리의 허물을 탓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그 자녀들의 허물을 허물로 보지 않습니다.  허물되는 일을 저질러도 “언제나 철이 들까”하고  아파하시지, 미워하시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이라 하고 부처님의 대자대비라고 하는 것은 부모님들이 자녀들 잘 되기만 바라고 당신들의 모든 것을 다주고도 부족해서 더 줄 것이 없나 생각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허물을 탓하시는 경우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벌 받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부처님은 성장과 잘되기만을 바라시지 벌을 주시는 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취시키고 밝게 완성시키시려 고만 하시지 다른 뜻은 없으십니다.
진리의 근본자리, 반야의 자리에서 보면, 허물리란 것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물질을 보고, 거기서 생각을 일으켜서 생긴 것이 허물인데, 반야의 자리에서 보면 그것은 꿈과 같은 것이어서 있는 듯하지만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무자성(罪無自性), 즉 죄는 원래 자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아시기 때문에 탓하지 않으시고 무한 자비로 감싸시고 오직 성장만을 기약하십니다.

부처님의 은혜 속에 내 마음을 두라
일곱 번째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부처님의 무한의 지혜와 자비로 만사를 평화롭게 인도해 주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심으로 염불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생각, 즉 옳다 그르다, 나쁘다 좋다, 어렵다 쉽다, 고난스럽다 하는 모든 생각들을 다 비워 버리고 밖으로 뻗어나갔던 생각을 거두어 들여서 내 생명에 있는 부처님의 은혜 속으로 자기 마음을 고정시키고 부처님 은혜 속에 자신이 있는 그런 상태를 지키는 것입니다.
잠들 때 그런 상태를 지나면 우리는 잠들고 있는 사이에도 기도를 계속하는 큰 공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들 때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밖으로 뻗어 나갔던 생각을 다 거두어서 자기 생명 깊이에 있는 부처님 광명세계로 마음을 돌리고 그 대자대비 안에 내가 있는 것을 생각하며 잠드는 것이 좋고 기도는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희망의 새 날이 밝았다.  이 새 날은 나의 희망을 성취시켜 주고 나의 성장을 가져오는 날이다 하는 생각을 마음속에 갖고 새 날을 맞읍시다.  어떤 어려운 경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관계없이 이렇게 해야 어려움이 소멸되고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광>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