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의 메신저, 저승사자] 저승세계의 심판관, 염라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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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의 메신저, 저승사자] 저승세계의 심판관, 염라대왕
  • 노승대
  • 승인 2024.07.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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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의 직속상관

 

인도의 ‘야마라자’, 중국의 ‘염라대왕’

모든 생물을 다 죽는다. 일반 백성이나 왕이나 평등하게 다 죽는다. 파라오도 죽었고 진시황도 죽었다. 자연히 사후세계가 등장하고 이집트에서는 그 세계에서의 부활을 위해 미라가 만들어진다. 

이집트문명에서 죽은 사람을 심판하고 내세에서의 부활 여부를 판정하는 신은 오시리스(Osiris)다. 죽은 자의 영혼을 데려오는 저승사자는 늑대의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아누비스(Anubis)고, 심판 결과를 기록하는 서기는 토트(Thoth)다. 

이집트문명 이후 나타난 모든 종교에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 불교에는 지옥과 극락이 있고, 기독교와 이슬람교에도 지옥과 천당이 있다. 도교에는 지옥과 신선세계가, 유교에는 저승에 해당하는 황천이 있다. 그중에서도 불교의 지옥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교의 지옥관은 인도의 고대 종교인 브라만교의 내용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으로 본다.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염라대왕도 인도 신화에 등장한다. 

인도 신화에서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신은 야마(Yama)다. 야마는 인도 고대의 태양신 비바스바트(Vivasvat)와 구름의 여신 사라뉴(Saranyu)의 아들로 쌍둥이 여동생인 야미(Yami)가 있다. 신의 아들로 태어난 야마가 개척한 하늘세계가 야마천(夜摩天)이다.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 바로 위 허공 중에 시설된 천인(天人)들의 세계다. 야마는 이곳의 왕이기 때문에 야마라자(Yamaraja)라고도 부른다. 라자(raja)는 ‘왕’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야마를 음역해 염마(閻魔), 야마라자를 염마라사(閻摩羅闍)라고 했다. 염마라사에서 ‘염’ 자와 ‘라’ 자를 빼서 ‘염라’라고 줄여 부르고 왕의 호칭을 붙여 염라대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염마대왕이라 부르지만 한국은 중국과 같이 염라대왕으로 부른다. 

서울 안양암의 염라대왕 탱화. 머리에 『금강경』을 메고 있다. 사진 불광미디어

 

저승세계의 심판관

야마는 인류 가운데 제일 먼저 죽는 바람에 사후세계의 개척자가 됐다. 곧 야마는 야마천을 다스리는 왕이기도 하지만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염라대왕의 역할도 맡게 된다. 

기원 전후에 사람의 인지가 더욱 발달하면서 인도 신화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전생에 나쁜 짓을 한 죄업 중생과 천상세계에서 죄를 지은 존재들이 가야 할 지옥이 필요해진 것이다. 야마는 사후세계의 관장자로서 자연스럽게 지옥세계도 통솔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염라대왕은 지옥의 관장자이지 죄인을 심판하는 역할은 없었다. 

지옥이란 본래 산스크리트어로 ‘Naraka’를 지칭하는 용어로 이를 음역해 ‘나락가(那落迦)’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나락에 떨어졌다’는 말이 바로 나락가, 지옥에 떨어졌다는 뜻이다. 

서기 원년 전후에 편찬된 『법구경』에도 ‘악을 행한 사람은 지옥으로 들어가며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천상으로 올라간다’는 문구가 있듯이 지옥 관념은 점차 보편화된다. 2세기 후반에 이르면 『십팔니리경(十八泥梨經)』과 같은 지옥에 관한 경전이 출현해 지옥에 대한 풍부한 내용을 담게 된다. 니리(尼梨)도 역시 지옥을 뜻하는 인도어 ‘Niraya’를 ‘니리야(泥梨耶)’나 ‘니리’로 음역한 것이다. 경의 제목처럼 18곳 지옥에 대해서 설명한 경전이다. 이 『십팔니리경』은 후한시대(25~220) 서역 안식국(기원전 247~기원후 226)의 왕자 출신인 안세고 스님이 148년에서 170년 사이에 번역한 경전이다. 

당나라 때에 이르면 지장신앙의 근본경전인 『지장보살본원경』이 번역된다. 이 경전도 서역 우전국 출신의 실차난타(652~710) 스님이 번역했는데 불교의 지옥도 서역을 거치며 더욱 많은 정보를 담아낸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십팔니리경』의 18곳 지옥이 『지장보살본원경』 「지옥명호품」에 이르면 46곳으로 늘어나고 또 그 지옥마다 여러 작은 지옥이 딸려 있다고 나온다. 

『지장보살본원경』에는 염라대왕이 염라천자(閻羅天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수많은 귀왕(鬼王)을 거느리고 나타난다. 부처님께 예경하고 의문 나는 점을 묻지만 중생의 죄를 심판하는 내용은 없다. 『지장보살본원경』 안에도 ‘중생들이 업에 따라 그 과보를 받는다’고만 말하고 그 이상의 언급은 없다. 

염라대왕이 죄인의 심판을 맡게 되는 것은 불교의 지옥관과 중국의 민간신앙, 도교, 유교가 습합되며 나타나게 됐다. 중국은 고대부터 법치제도의 틀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사람이 죽으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태산부군에게 돌아가 살았을 때의 선악을 심판받는다고 믿었다. 유교에서도 사람이 죽은 다음에 일정 기간 혼이 흩어지지 않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해 왔다.

이러한 중국의 사후세계관과 불교의 지옥관이 섞이면서 드디어 명부에서 망자들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이 탄생한다. 바로 시왕이다. 열 명의 왕이라 해서 ‘십왕(十王)’이지만 발음의 편의상 보통 “시왕”이라고 말한다. 

염라대왕 탱화. 사람과 짐승들이 염라대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업경대 거울에는 전생의 선악과보가 드러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왕(十王)의 우두머리

시왕의 내용을 담은 경전이 바로 당나라 말기 대자은사 장천 스님이 찬술한 『예수시왕생칠경』이다. 이 경전은 인도에서 온 것도 아니고 서역에서 건너온 것도 아니다. 100% 중국에서 만들어진 경전이지만 이후 49재, 천도재, 예수재 등 불교의 천도의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전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살아생전 미리 시왕에게 참회하며 지극정성으로 49재를 지내면 그 기록이 염라대왕의 업경대에 남아, 죽은 뒤 염라대왕에게 심판받을 때 대왕이 환희심을 내어 죄를 면해 주고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 시왕 중의 우두머리는 누구일까? 당연히 염라대왕이다. 인도에서 건너올 때부터 지옥을 다스리는 왕은 염라대왕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태산부군도 역시 시왕에 들어와 일곱 번째 왕으로 좌정하게 된다. 

또한 열 명의 대왕이 구성된 것은 유교의 장례법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유교에서의 장례법은 삼년상이다. 망자가 돌아가신 후 100일째 되는 날 백재를 지내고 1년이 되면 소상, 2년이 대상이라 하여 탈상을 하게 된다. 햇수로는 3년이 걸리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망자가 돌아간 후 49일 동안 7번의 재를 올리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곧 7일에 한 번씩 7번 재판을 받으면서 그 기간 안에 망자는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유교의 장례식을 감안해 백재, 소상, 대상을 집어넣으면서 재판관도 열 명이 된 것이다. 결국 불교와 유교, 민간신앙과 도교의 사후세계가 섞이면서 염라대왕이 중국의 심판관과 함께 시왕을 구성하게 된 셈이다. 

불교의 시왕이 등장하면서 지옥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각 시왕은 어떤 죄를 심판하며, 죄인들이 어떤 형벌을 받는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경전도 출현한다. 바로 『불설지장보살발심인연시왕경』이다. 이 경전도 또한 『예수시왕칠생경』을 찬술한 장천 스님이 저술한 책이다. 

 

지옥을 면하는 법

염라대왕은 망자의 죄를 공정하게 심판하지만 특별히 우대하는 망자도 있다. 살아생전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거나 사경한 망자다. 염라대왕이 지옥을 벗어나는 경전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경전이 바로 『금강경』이기 때문이다. 

『금강경』 영험록에는 『금강경』으로 인해 염라대왕이 망자를 찬탄하며 다시 속세로 돌려보내는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그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당나라 때 이구일(李丘一)이란 사냥꾼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잡혀갔다. 온갖 동물을 죽이는 것이 직업이니 당연히 악업을 많이 지었다. 그렇다고 『금강경』을 수지독송한 일도 없었다. 다만 옛날에 『금강경』 1권을 사경한 일이 있었을 뿐이다. 염라대왕이 이 사실을 안 후 크게 기뻐하며 일어나서 합장하고 이구일을 칭찬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 명부에서는 『금강경』을 가장 수승하고 제일의 공덕이 있는 경전으로 삼는다. 그대가 비록 『금강경』을 한 번만 사경했지만 그 공덕은 불가사의하다.”

당연히 이구일은 살아서 돌아왔다. 이처럼 염라대왕은 『금강경』과 인연이 있는 망자를 특별히 우대한다. 속세에서 『금강경』을 몇 번 독송하려고 다짐했는데 그 중도에 죽어 명부에 들어왔다면, 염라대왕은 반드시 속세로 돌려보내 그 소원을 이루도록 수명도 늘려준다. 『금강경』을 사경하거나 남에게 보시를 해도 이런 혜택을 준다. 속세로 돌려보낼 뿐만 아니라 수명도 늘려주니 일석이조다. ‘『금강경』을 수명을 늘려주는 경전’이라고 해서 ‘속명경(續命經)’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영험담에서 유래한다. 

명부전의 시왕상은 그 얼굴이 비슷비슷하다. 시왕도 왕이기 때문에 지혜와 덕성을 갖춘 속세의 왕을 모델로 한다. 염라대왕이라고 특별히 무섭거나 위압적인 모습으로 조각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염라대왕은 『금강경』을 받들어 모신다.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염라대왕의 머리관 위에는 『금강경』이 한 권 얹혀 있다. 명부전에서 염라대왕을 가장 쉽게 찾는 방법이 바로 이 머리관 위의 『금강경』이다. 

 

여래(如來)가 된 염라대왕에게 드리는 현왕불공

염라대왕이 『금강경』과 인연이 있는 망자를 특별대우한다는 내용은 조선시대 후기 불교의식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바로 현왕불공이다. 현왕여래는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으로 현왕불공은 보현왕여래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불가의 장례의식에 해당하는 다비의식 중 하나다. 

보현왕여래는 누구인가? 바로 염라대왕이 성불했을 때의 부처님 이름이다. 부처님이 염라대왕에게 수기하기를 ‘미래 세상에서 부처를 이루리니 호는 보현왕여래’라고 말씀하신 데서 유래한다. 

그럼 현왕불공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조선시대에 들어 유교의 효사상과 불교의 재의식이 서로 어울리면서 49재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고려시대에는 49재를 칠칠재라고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망자를 위해 재를 올렸지만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제례를 반영해 칠칠재는 차츰 없어졌다. 그 대신 49재를 모시게 되면, 그 기간 중인 삭일(朔日)인 초하루와 망일(望日)인 보름날에 재를 올리는 방식으로 바꿔 갔다. 유교식 상례에는 삼년상 동안 초하루와 보름날마다 신주(神主) 앞에 음식을 올리는 의례를 행했다. 이를 삭망제라 했다. 

민간의 풍속이 이렇게 변하니까 사찰에서도 49재 동안 초하루와 보름날에만 재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만 49재를 올리게 됐다. 이러한 불교의식은 1970년대 말까지도 이어졌는데 이후 삭망일에 대한 풍습도 약해지고 사찰에서도 삭망일에 올리는 재는 유교식이라고 인식하면서 차츰 일주일에 한 번씩, 7번 재를 올리는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현왕탱화. 염라대왕이 성불했을 때의 부처님 이름이 보현왕여래(普賢王如來)다. 줄여서 현왕여래라 부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왕탱화. 현왕단에 걸리며, 보현왕여래에 대한 공양의식을 현왕불공이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왕불공 역시 유교의 상례법에 맞춰 나타난 불교의식이다. 유교의 장례절차에는 망자가 돌아간 다음 날 시신을 옷과 이불로 싸는 소렴의식을 하고 3일 째에는 시신을 묶어 관에 넣는 대렴의식을 한다. 이렇게 3일 만에 입관을 하는 이유는 망자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유족의 간절한 바람이 있어서다. 

불교의 입장으로 볼 때 염라대왕에게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길은 『금강경』과 인연이 있어야 한다. 못 돌아오더라도 염라대왕에게 좋은 판결을 받고 다른 세계로 갈 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왕불공이 탄생한 것이다. 

현왕불공은 보현왕여래를 모신 현왕단에서 행한다. 그렇지만 보현왕여래 탱화에는 부처님의 모습을 그리지 않고 염라대왕을 그려 놓았다. 주위에는 판관, 녹사, 동자와 죄를 심판받는 망자들도 함께 그려 놓는다. 보현왕여래의 전생이 바로 염라대왕이니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염라대왕을 대신 그려 넣은 것이다. 

현왕불공의 목적은 망자의 장례 시 필요한 금강경탑다라니와 천수다라니를 여법하게 모셔가기 위함이다. 그래서 현왕불공은 망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거나 죽은 직후에 거행한다. 곧 망자의 시신을 입관하기 전에 마쳐야 하는 것이다. 물론 상갓집에서는 사람을 보내 현왕불공을 마친 다라니를 찾아온다. 망자의 시신을 입관할 때는 천수다라니를 머리맡에 두고 『금강경』 전문이 찍힌 금강경탑다라니는 시신 위에 덮고 관 뚜껑을 닫는다. 또는 망자를 위해 두 다라니를 태우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돈다라니도 관에 집어넣어 저승에서의 노잣돈으로 쓰게 한다. 

이렇게 하면 망자는 『금강경』과 깊은 인연을 맺고 염라대왕 앞으로 가게 된다. 염라대왕은 당연히 이 망자를 예우해 다시 살려 보내거나 좋은 세상으로 보내준다. 조상님들이 좋은 세상으로 가기를 바라는 유족들의 효심에서 나온 것이 바로 현왕불공이다. 

현왕불공은 19세기에 크게 유행하면서 많은 사찰에서 현왕탱화를 조성해 모셨다. 그러다가 1969년 1월 16일 「가정의례 준칙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장례 기일은 5일장에서 3일장으로 줄었다. 현왕불공을 올릴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 셈이다. 자연스럽게 현왕불공은 사라지게 됐고 그 대신 죽은 망자의 영혼을 절에 다시 모시는 반혼제(反魂祭, 반혼재反魂齋라고 하기도 한다)가 정착되면서 49재를 시작한다는 입재의식처럼 여겨지게 됐다.

 

노승대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에게 사사하며, 18년간 공부했다. 인사동 문화학교장(2000~2007)을 지냈고, 졸업생 모임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인사모)’, 문화답사모임 ‘바라밀 문화기행(1993년 설립)’과 전국 문화답사를 다닌다. 저서로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2020년 올해의 불서 대상),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 『사찰에 가면 문득 보이는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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