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족] 아들 라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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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가족] 아들 라훌라
  • 한상희
  • 승인 2024.04.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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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박’이었던 라훌라가 얻은 두 가지 행운

‘속박’이라는 뜻의 ‘라훌라(Rāhula)’라는 이름을 가진 한 아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석가족을 다스리는 왕 숫도다나였고, 아버지는 그 나라의 왕자 싯다르타였다. 아이는 자라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륜성왕이 됐을 터였다. 싯다르타 왕자가 집을 떠나 깨달은 분인 붓다(Buddha)가 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라훌라는 붓다의 유일한 아들이다. 빨리(Pāli) 전통에 따르면 붓다는 라훌라가 태어난 날 출가했다. 싯다르타의 아내인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숫도다나왕이 먼저 듣게 되고, 그는 자신의 기쁨을 싯다르타에게도 전하게 한다. 그런데 아들의 탄생을 알게 된 싯다르타 왕자가 보인 반응은 보통의 아버지들과는 사뭇 달랐다.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기보다 “라훌라가 태어났구나. 속박이 태어났구나”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고는 즉시 출가하기로 결심한다. 아들이 그를 속세의 삶에 더욱 강하게 묶어두는 ‘속박’이 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 늦어져 아들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다면, 삶과 죽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겠다는 결의를 이루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비록 라훌라가 태어나자마자 떠나버렸지만, 싯다르타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도 라훌라를 보기 위해 야소다라가 머무는 곳으로 찾아간 일이었으니 말이다. 아내의 방에 도착한 왕자는 향기로운 램프가 불타고 있는 방 안,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흩뿌려진 침대에서 야소다라가 라훌라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당장 다가가 야소다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아들 라훌라를 안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왕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문턱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왕자비의 품에서 아들을 들어 올려 안는다면 왕자비는 깰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집을 떠나는 데 장애가 된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다시 돌아와 아들을 보리라.’

야소다라 왕자비의 눈을 바라보고 라훌라의 온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출가의 마음이 흔들릴 만큼 싯다르타 왕자는 아내와 아들에게 큰 애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왕자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 돌아와 아들을 만나리라는 다짐과 함께 그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다짐대로 붓다가 된 후 고향인 까삘라왓투로 돌아왔을 때, 아들 라훌라와 재회하게 된다. 

 

붓다에게 유산을 물려받다

“라훌라야, 이분이 너의 아버지시란다. 가서 유산을 달라고 청하렴.” 붓다가 까삘라왓투를 방문한 지 7일째 되던 날, 그의 아내였던 야소다라는 라훌라를 붓다에게 보낸다. 라훌라는 처음 만난 아버지에게 애정을 느꼈고 대단히 기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붓다의 뒤를 쫓아가며 “사문이시여, 저에게 유산을 주세요”라고 청하게 되는데, 이런 라훌라를 보고 붓다는 그의 상수제자 사리뿟따에게 말한다. 

“사리뿟따여, 라훌라가 이리 청하니 그대는 저 아이를 출가시키도록 하시오.”

붓다가 아들에게 물려준 유산은 바로 ‘그를 출가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야소다라가 생각했던 유산이 아니었다. 그녀는 붓다가 집을 떠나면서 남기고 간 막대한 재산을 아들이 물려받아 훗날 그가 전륜성왕이 됐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그것이 끊임없는 태어남을 가져오는 괴로움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깨달음을 향해 가는 수행자의 삶이야말로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라훌라는 사리뿟따를 스승으로 승단의 첫 번째 사미(沙彌, sāmaṇera)가 된다. 유산을 받아오라고 보냈는데 아들마저 집을 떠나게 됐으니 야소다라의 슬픔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헤아린 숫도다나왕은 나중에 아이들이 출가할 때 반드시 부모의 동의를 받게 하도록 붓다에게 청했고, 붓다는 이를 받아들인다. 

 

배우기를 좋아하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출가였지만 라훌라는 가르침을 배우는 데 그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그래서 붓다는 그를 ‘배우기 좋아하는 제자 가운데 으뜸’이라고 부르며 칭찬했다. 역시 아버지의 마음은 아들에게 특별했던 것일까. 붓다는 라훌라가 출가한 직후부터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설했고, 그 가르침들은 초기불교 경전인 니까야(Nikāya)에 담겨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맛지마니까야(Majjhimanikāya)』에는 라훌라를 가르친 세 개의 경전이 전한다.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교계한 경(Ambalatthikarāhulovāda-sutta)」은 라훌라가 출가한 일곱 살 때 설한 것이다. 붓다는 어린아이들이 거짓말을 즐겨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장 먼저 장난으로라도 결코 거짓말을 해선 안 됨을 물그릇의 물과 코끼리의 비유를 통해 가르쳐 줬다. 그리고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처럼 늘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를 비춰보아 그것이 청정할 수 있도록 지켜나가야 함을 강조했다.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ahārāhulovāda-sutta)」은 탐욕을 일으킨 라훌라가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도록 설해진 경전이다. 라훌라는 자주 붓다와 함께 탁발을 나갔다고 한다. 그러다 그가 열여덟 살이 된 어느 날, 앞서가는 붓다의 멋진 모습을 보며 자신도 붓다처럼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자신과 관련한 세속적인 욕망과 탐욕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라훌라의 마음을 안 붓다는 우리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오온五蘊)가 ‘나의 자아가 아님’을 바른 지혜로 봐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마지막으로 깨달음으로 이끄는 법들이 라훌라에게서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붓다는 「라훌라를 교계한 짧은 경(Cūlarāhulovāda-sutta)」을 설한다. 붓다는 여기서 우리의 눈·귀·코 등의 감각기관(육내처六內處)과 형색·소리·냄새 등의 외부의 대상(육외처六外處)은 영원하지 않고(무상無常) 괴롭고(고苦) 자아가 아니며(무아無我), 이 둘의 만남인 접촉(촉觸)과 여기에서 일어나는 느낌(수受)·지각(상想)·형성(행行)·의식(식識)에 속하는 모든 것들 또한 그러하다는 가르침을 전한다. 라훌라는 이 가르침을 듣고 마침내 마음이 모든 번뇌에서 해탈한 아라한이 된다.  

이 밖에도 『상윳따니까야(Saṃyuttanikāya)』의 「라훌라 상윳따(Rāhulasaṃyutta)」에는 우리 몸과 마음의 요소와 감각기관의 무상·고·무아에 대해 라훌라에게 설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라훌라의 출가 장면. 앞쪽에 야소다라와 라훌라가 있으며, 뒤쪽으로 정반왕이 의자에 앉아 있다. 『석씨원류응화사적』의 「라후출가(羅睺出家)」, 동국대학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계율을 잘 지키다

라훌라는 배움에 열정적이었던 만큼 계율을 지키는 것에도 매우 양심적이었다. 

한번은 붓다가 꼬삼비(Kosambī)의 바다리까 동산(Badarikārāma)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라훌라는 저녁에 도착해 다른 비구로부터 새로이 지정된 계율을 듣게 되는데, 아직 구족계를 받지 못한 사미는 구족계를 갖춘 비구와 한 거처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들이 머무는 곳에 온 라훌라를 환영하고 그를 위해 작은 침상을 준비하던 비구들도 이 새로운 계율 조항을 어길까 두려워 머물 곳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 계율을 어기지 않을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한 라훌라는 다른 수행승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바깥에 있는 변소에서 그날 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 날 아침 변소에서 라훌라를 발견한 붓다는 사미와 비구가 3일 밤을 한 거처에서 머물지 못하도록 계율을 변경한다. 처음 이틀 동안은 사미를 비구의 근처에서 머물게 하고 셋째 날에는 사미가 어디에서 머무는지 알고서 밖에서 지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로 수행승들은 라훌라가 얼마나 계율을 잘 지키는지 시험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라훌라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는 일부러 바깥에 빗자루 같은 것을 던져 놓기도 했다. 그리고 라훌라가 왔을 때 누가 그것을 버렸는지 물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라훌라가 이 길을 지나갔습니다” 하고 말하면 라훌라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이러한 라훌라의 행동을 다른 수행승들이 칭찬할 때, 붓다가 들려준 전생 이야기가 있다.  

옛날 라자가하에서 어느 마가다 왕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보살(붓다의 전생)은 사슴으로 태어났는데 그에게는 누이가 있었다. 누이 사슴은 보살에게 자기 아들인 사슴이 알아야 할 여러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부탁했고, 보살은 흔쾌히 조카 사슴을 훈련시켰다. 어느 날 숲으로 나간 조카 사슴이 그만 그물에 걸리고 만다. 그러나 그는 당황해 발버둥 치지 않았다. 차분히 땅에 옆구리를 대고 다리를 길게 뻗고는 배설물을 흘리며 배에 공기를 가득 넣어 부풀렸다. 그러고는 눈을 뒤집어 뜬 채 숨을 멈추고 몸을 경직시켰다. 죽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윽고 다가온 사냥꾼은 사슴이 죽어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서 사슴의 가죽과 고기를 얻기 위해 그물을 걷어냈다. 그 순간 사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네 다리로 섰으며, 마치 큰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처럼 재빨리 달아났다. 이 어린 사슴이 바로 라훌라였다. 이처럼 라훌라는 이생뿐만이 아니라 전생에서도 열심히 가르침을 듣고 그것을 잘 지켰던 것이다.(「세 가지 자태를 지닌 사슴 전생 이야기(Tipallatthamigajātaka)」의 주석서)  

    

출가해 아라한이 된 라훌라, 일본 난보쿠조 시대 그림, 미국 호노룰루 미술관 소장

 

행운아 라훌라

라훌라의 친구들은 그를 ‘라훌라밧다(Rāhulabhadda, 행운아 라훌라)’라고 불렀으며, 라훌라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깨달은 분이신 붓다를 아버지로 두는 행운과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는 두 가지 행운을 다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깨달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테라가타(Theragāthā)』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295~298게송)

“두 가지 행운을 모두 가졌기에, 현명한 이는 나를 
‘행운아, 라훌라’라고 부른다네.
나는 붓다의 아들이며, 법에 대한 눈(법안法眼)을 
가졌도다.

나의 번뇌는 모두 사라졌고 다시 태어남은 없다.
나는 존경받고 공양받을 만한 사람이며,
세 가지 지혜(삼명三明)를 갖추었고 불사(不死)를 보았다. 

사람들은 욕망에 눈이 멀고, 
그물에 걸려 있으며 갈애(渴愛)에 덮여 있네.
[그리고] 나태한 친족에게 묶여 있네. 
그물망에 걸린 물고기처럼. 

나는 그 욕망을 모두 떨쳐 버리고 
죽음의 속박을 잘라내고서,
갈애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나는 고요하고 평온하다.”

『디가니까야(Dīghanikāya)』와 『상윳따니까야』의 주석서는 라훌라가 붓다와 사리뿟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의 열반이 정확히 언제였는지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붓다가 출가한 29세에 태어나 그가 반열반에 든 80세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51세 이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라훌라에게 이생에서의 삶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최고의 행운아가 아닌가! 

 

한상희
일본 도쿄대에서 빨리 문헌의 성자와 수행에 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인물학술원의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초기/상좌부불교의 주요 사상들을 해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언어, 진실을 전달하는가 왜곡하는가』를 공저했고, 『불교의 탄생』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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