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족] 위대한 걸음 싯다르타에서 붓다로
상태바
[붓다의 가족] 위대한 걸음 싯다르타에서 붓다로
  • 유동영
  • 승인 2024.04.26 1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천 점말 동굴 광장 출토 석조 탄생불,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 전체 높이 17.3cm, 국립청주박물관 소장

2568년 전 부처님이 열반하신 이후 그를 따르는 수많은 불제자는 여러 방법으로 부처님의 위대한 여정을 기리고 찬탄한다. 부처님의 사리를 나누어 대탑을 만들었고, 꽃과 향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장엄했으며 그림과 조각으로 수많은 부처님을 현세에 나투게 했다. 그림과 조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부처님의 모습을 각기 다르게 표현했으나 섬세하고 경건한 장인들의 솜씨는 시공을 뛰어넘는 위대한 예술로 승화됐다. 이번 호는 팔상도가 아닌 그 외 그림과 조각으로 부처님의 여정을 구성했다. 

시작은 세 아기 부처님이다. 모두 천지인(天地印) 수인을 하고 있다. 제천 점말 동굴 부처님은 다른 부처님들과는 다르게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하늘로 향했다. 또한 점말 동굴 부처님은 우리나라 유일의 석조 아기 부처님으로 얼굴은 소박하고 친근하다. 호림박물관 소장의 보물 금동 아기 부처님의 대좌는 서안(書案)과 같은 받침에 연화좌를 올렸다. 등에는 광배 고리가 남아 있고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를 띤다. 

탄생불 다음으로 청년 시기 부처님을 담은 <석가출가도>, 6년의 고행 끝에 정각을 이룬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는 모습을 담은 송광사 <영산회상도>, 부처님이 이 세상의 나투신 의의를 전하는 대흥사 천불전 천불, 진리 자체인 비로자나 부처님·수행과 공덕을 쌓아 이루는 노사나 부처님·눈에 보이는 역사적 존재로서 석가모니 부처님 등 각기 다르나 하나인 화엄사 대웅전 세 부처님, 끝으로 쿠시나가르 열반당의 법륜이 새겨진 부처님 발과 피프라와(Piprāhwā) 탑에서 발견된 <페페의 보석> 순으로 부처님의 위대한 여정을 갈무리했다.

촬영에 도움을 주신 국립중앙박물관·국립청주박물관·호암미술관 그리고 호림박물관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강화도에서 발견된 금동 탄생불, 고려, 전체 높이 25.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내 유일의 보물 금동 탄생불, 6세기경, 전체 높이 22cm, 호림박물관 소장 및 사진 제공
<석가출가도>, 15세기, 전체 높이 287.8cm×가로 125cm, 독일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소장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소장의 <석가출가도>는 호암미술관의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에 전시 중인 불화다. 옆에 나란히 걸린 혼가쿠지의 <석가탄생도>와 비슷한 조선 전기 작품이어서인지 고려 불화 느낌의 채색이 서로 닮아 있다. 얼핏 보면 사방으로 말을 타고 달리는 이들이 <유성출가상>의 성을 넘는 부처님 같으나, 좀 더 들여다보니 그들 모두 횃불을 들고 있다. 출가한 부처님의 행방을 찾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출가 소식을 찬나에게서 들은 아버지 정반왕은 눈물을 훔치며 슬퍼하고, 아내 야소다라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듯 엎드려있다. 왼쪽 상단에는 부처님이 한날한시에 태어난 마부 찬나가 보는 앞에서 삭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걸작 불화와 조각들에 이어 추사의 반야심경이 대미를 장식했다. 한 자 한 자를 몸 안에 새기려는 듯 260자로 만다라를 완성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불제자 김정희의 진면목이 이 하나에 다 들어있었다. 전시는 2024년 6월 16일까지 이어진다. 몇 번을 감상해도 또 새롭다. 길게 회자할 만한 훌륭한 전시다. 

의겸 스님, <영산회상도>(국보), 1725년, 높이 214cm×가로 186.5cm, 송광사 성보박물관 소장

<영산회상도>는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애초 송광사 <영산회상도>는 팔상도와 함께 영산전 탱화로 지난 2월 국보로 승격됐다. <영산회상도>는 3단으로 구성돼 있다. 설법하는 부처님 중심으로 좌우에는 10대 제자와 사천왕과 같은 호법신장이, 중단에는 좌우로 세 보살이, 하단에는 부처님을 향해 앉아 있는 사리불 존자를 중심으로 왕과·우바새·우바이 등 사부대중이 함께 부처님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사부대중의 모습은 다른 <영산회상도>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부처님의 법문에 감화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희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 탱화는 1725년, 불모인 의겸 스님이 20여 명의 스님과 함께 완성했다. 의겸 스님은 고성 운흥사에 머물며 25점의 불화를 남겼다. 영산회상을 그린 개암사 괘불 또한 스님이 그렸다.

 

대흥사 천불전의 천불          

중생을 구제하려는 수많은 부처님의 수는 해탈 열반을 증득하려는 중생의 수와 같다. 무대 위의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데 관객이 달랑 하나라면 노래할 맛이 나겠는가. 수많은 관객의 환호와 응원이 무대의 가수를 춤추게 하듯, 중생 또한 이름도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부처님까지 나서서 나를 구제한다고 생각할 때 더 수행 정진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흥사 천불전의 768위 부처님들은 극적인 전설을 가지고 있어서 내용을 아는 이들에게는 특별하다. 1811년, 대흥사에 큰불이 나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탔다. 완호대사는 대흥사 중창불사에 모든 힘을 모았다. 스님은 1817년에 천불전을 완공하고, 그 안에 모실 부처님 조성의 소임을 당시 화원으로 이름이 높았던 풍계 현정 스님에게 맡긴다. 경주 옥돌을 쓴 천불은 경주 기림사에서 완성됐다. 

1817년 11월, 현정 스님은 두 대의 배를 이용해 천불을 이운하기로 한다. 작은 배에 232위, 큰 배에 768위를 모셨다. 25일, 배가 동래 앞바다를 지날 즈음에 강한 서북풍이 불어 제 항로를 벗어났다. 232위를 실은 작은 배는 급히 뱃머리를 돌려 동래 포구로 피신했으나,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한 큰 배는 이틀간의 표류 끝에 일본 규슈에 도착한다. 다행스럽게도 이운 일행은 일본 관리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받는 등 환대를 받는다. 1818년 8월 15일, 경주에서 일본까지 먼 길을 돌아온 천불이 마침내 대흥사 천불전에 봉안된다. 대장정을 마친 부처님들 등에는 적색으로 ‘日’, ‘日本’ 등의 표식을 남겼다. 모든 중생의 불성을 깨우려는 천불의 의미가 크게 느껴지는 증표다. 표류 상황과 일본 여정은 1825년 현정 스님이 쓴 『일본표해록』에 잘 남아 있다. 

 

법신(法身) 비로자나부처님
보신(報身) 노사나부처님
화신(化身) 석가모니부처님. 화엄사 대웅전 비로자나 삼존불(국보), 1636년 
인도 쿠시나가르 열반당에 모셔진 부처님의 발바닥에는 법륜이 새겨져 있다.

부처님은 쿠시나가르 사라수 숲에 이르러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서 두 그루 나무 사이에 깔고 누웠다. “여래는 오늘 열반에 들리라”하고 선언한 뒤 아난다에게 “나를 친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다 오라”고 전한다. 아난다는 “많은 제자가 있는 곳을 두고 왜 궁벽한 이곳에서 열반에 드십니까?” 하고 여쭙는다. 부처님은 “아난다여! 그런 말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장차 성스러운 곳이 되리라”고 하셨다. 부처님 열반 뒤 사리는 8곳의 대탑에 나뉘어 봉안됐다. 부처님 열반 150년 뒤,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은 부처님 사리를 모아 인도 전역에 8만 4천 개의 탑을 세워 재봉안한다. 1898년, 카필라 성에 있던 피프라와(Piprāhwā) 탑에서 ‘부처의 유골’이라 적힌 사리함이 발견된다. 그 안에는 331개의 보석도 함께 있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사리함과 보석은 아쇼카왕 시대의 것이었다. 사리는 박물관에서, 보석은 발굴자인 페페가 소장하게 됐다. <페페의 보석>은 지난 4월 14일에 막을 내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전에 전시됐다.

<페페의 보석>

 

글・사진. 유동영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