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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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가족
  • 김남수
  • 승인 2024.04.2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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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고향 까삘라 성안 연못의 수련

“마음속 애착 버린 이를 사문이라 칭하고,
세속에 미련없는 것을 출가라 부른다네.”

-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중에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후 6년이 지나 고향 땅을 밟았다. 6년의 고행 이후 또 다른 6년에 걸쳐 전법의 길을 걷던 중이었다. 고향을 방문한 부처님은 “사문이시여, 저에게 유산을 주십시오”라는 열두세 살 남짓이었던 아들 라훌라의 요청을 듣자마자 출가라는 유산을 내려줬다. 출가 전 아내였던 야소다라는 12년 전 남편의 출가에 이어 아들의 출가를 맞이했다.

부처님의 첫째 귀향길은 설렘과 기대 속에 이뤄졌고, 많은 이들이 출가하는 이야기로 끝난다. 친족들도 출가했다. 형제뻘이 되는 난다가 제일 먼저 출가했고, 우리에게 익숙한 아난다와 데와닷따 등 석가족의 많은 청년이 출가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부처님을 석가족의 아들이 아닌 인천(人天)의 스승으로 맞이했던 양어머니 마하빠자빠띠 역시 출가의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첫 번째 방문에서는 인연이 되지 않았다.

가족 중 오로지 아버지 정반왕(숫도다나왕)만 출가하지 않는다. 후세의 불제자들은 정반왕이 죽음을 맞이할 때 부처님이 다시 까삘라 성을 방문했다고 전한다. 부처님의 손을 가슴에 얹고 임종을 맞이한 정반왕은 아마도 부처님을 스승이자 아들로 맞이한 듯하다. 모든 일을 마친 그때서야 양어머니 마하빠자빠띠의 출가가 이뤄진다. 그녀는 석가족의 많은 여인을 이끌고 출가하는데 그중에는 아내였던 야소다라도 있었다.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은 이런 글귀로 끝을 맺는다.

“이 몸은 끝이 있나니 다음 생은 어찌할꼬!
급하지 아니한가, 급하지 아니한가.”

무엇이 그리 급했기에 부처님의 가족과 친족들은 출가라는 인연을 맺었을까? 부처님이 오신 음력 4월, 올해는 부처님뿐 아니라 가족들도 만나보자.

3~4세기 인도 파니기리 스투파의 유물 중 <사자와 마카라, 그리고 부처님 탄생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스투파의 숲, 신비로운 인도 이야기》 전시 작품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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