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굶주린 귀신, 아귀] 탱화 속 전통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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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굶주린 귀신, 아귀] 탱화 속 전통연희
  • 서지은
  • 승인 2023.07.2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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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타기, 땅재주, 사당 놀이
〈감로탱〉 부분도, 리움미술관 소장 
‘사무신녀(師巫神女)’ 글씨 주위로 무녀와 사당패, 죽공놀이를 하는 연희자와 솟대 위에서 악기를 부는 연희자가 보인다. ‘해수악사(解愁樂士)’ 옆에는 탈을 쓴 연희자가 노래를 부른 뒤 이어서 인형극을 펼치고 있다.

감로탱화의 연희(演戱)

감로탱은 수륙재를 거행할 때 거는 탱화로 우란분재를 설행할 때도 걸었다. 감로탱은 상단(上壇)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불보살을 배치하고, 중단(中壇)에 재(齋) 의식 장면, 하단(下壇)에는 육도윤회상이 그려져 있다. 하단의 육도윤회상에는 아귀나 지옥고(地獄苦)뿐 아니라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의 고통상을 인간 세상의 다양한 현실 생활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하단에서는 전통연희(演戱)와 연희자(演戲者)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연희자의 모습은 죽은 사람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수륙재의 구제 대상이다. 그리고 연희자가 연희를 펼치는 모습은 수륙재를 설행하는 현실의 수륙 도량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도 보인다. 죽은 이의 극락왕생과 구원을 염원하는 수륙재, 혹은 우란분재에 왜 놀이가 펼쳐질까? 그 이유를 찾아가 보자.

감로탱의 하단에 등장하는 전통연희에는 솟대타기, 땅재주, 접시돌리기(버나), 죽방울치기, 탈춤, 인형극, 줄타기, 검무 등이 나타난다. 이러한 연희의 전통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을 거쳐,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땅재주, 솟대타기, 죽방울치기, 줄타기 등은 동아시아 공통의 연희 종목인 산악백희(散樂百戱) 종목의 일종이다. 

이들 종목은 삼국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돼 고구려 고분벽화의 잡희, 신라의 향악 5기(5가지 놀이), 고려의 연등회 및 팔관회의 잡기, 조선시대 나례(악귀를 쫓기 위해 베푸는 궁궐 의례)나 사신 영접 행사, 문희연(과거 급제자의 자축 연희)의 산대희(탈놀이)나 산대 잡극, 유랑예인 집단의 연희, 일제강점기 서커스, 오늘날의 남사당놀이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솟대타기, 쌍줄백이, 쌍줄타기, 죽방울치기 등 몇몇 연희는 전승이 단절돼 모습이 사라졌지만 땅재주, 줄타기, 접시돌리기, 인형극 등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패 연희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감로탱에 나타난 전통연희는 19세기 초까지 땅재주, 솟대타기, 사당의 연희가 중점적으로 나타났다. 19세기 중반부터 땅재주와 솟대타기는 거의 사라지고 줄타기, 죽방울치기, 사당의 연희, 검무가 주로 연행된다. 사당의 연희는 감로탱의 제작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전통연희다. 그런데 감로탱에 그려진 연희는 산악백희의 다양한 종목 중 솟대타기와 땅재주에 집중돼 있다. 그것은 솟대타기, 땅재주가 여타 종목에 비해 감로탱의 주제를 잘 반영하며, 불교 사상 및 경전과 관련이 깊기 때문일 것이다. 

<용주사 감로탱> 부분도. 쌍줄백이 연희가 펼쳐지고 있다. 
쌍줄에 다리를 걸고 거꾸로 매달려 대금을 연주하고 있다. 
<조전사 감로탱> 부분도

쌍줄백이

〈조전사 감로탱〉(1591)을 통해, 쌍줄백이(솟대타기)와 땅재주, 탈춤을 살펴보자. 〈조전사 감로탱〉에 그려진 솟대타기는 쌍줄백이이다. 쌍줄백이는 솟대에 줄을 연결하여, X 자 모양의 가로목뿐만 아니라, 줄 위까지 연행공간을 확대한 솟대타기의 일종이다. <조전사 감로탱>의 쌍줄백이에는 세 명의 연희자가 등장한다. 두 명의 연희자는 가로목 위에서 연행을 하고, 한 명은 줄 위에 있다. ①솟대 위에서 연행하는 한 명은 꼭대기에 위치한 X 자 모양의 가로목에 두 발을 걸쳐 거꾸로 매달려 있고, ②다른 한 명은 가로목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다. ③줄 위에 걸쳐 앉은 연희자는 두 손을 어깨 위로 들고 양손을 까닥하는 것으로 보아, 춤을 추는 모습이다. 

솟대타기의 장대 주변에는 땅재주를 연행하는 연희자가 두 명 보인다. ④한 명은 전형적인 땅재주 연희자로 두 손을 땅에 짚고 몸을 거꾸로 세우고 있다. ⑤다른 한 명은 탈을 쓴 연희자로 탈춤를 연행하고 있는데 그 연희 내용이 몸을 거꾸로 세우는 물구나무라는 점이 신기하다. 즉 탈춤, 솟대타기, 땅재주 연희자가 모두 물구나무서기라는 동일한 연희 기교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감로탱에 나타난 솟대타기, 쌍줄백이, 땅재주 등의 연희에서 유독 ‘거꾸로 서기(물구나무서기)’가 많이 그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감로탱은 죽은 사람들을 지옥에서 건져 극락왕생을 맞이하는 과정을 하단에서 중단, 중단에서 상단으로 전개하는 구성이다. 하단과 중단의 내용은 목련이 어머니를 구하는 우란분재의 내용과 관련이 깊다. 3개월간 수행인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스님에게 공양하고 부처의 가피력에 힘입어 고혼이 지옥에서 구해지는 과정을 그렸다. 

중단과 상단은 지옥에서 구원되고 감로(甘露)를 시식(施食)하며 극락왕생을 하게 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시식 장면이 아난존자와 관련이 있다. 당대 서역승 실차난타가 번역한 『불설구면연아귀다라니신주경』을 보면, 아귀의 왕인 면연귀왕은 아난에게 “무수한 아귀와 브라만 선인들을 위하여 시식을 제공하라”고 했다. 이처럼 감로탱은 아난존자의 수륙재와 목련존자의 우란분재와 관련이 있다. 감로탱의 하단 부분을 해석할 때는 그러한 사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장춘석의 연구에 따르면, “우란분은 ‘거꾸로(접두사 ava) 매달리다(어근 lamb)’라는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아왈람바나(avavlambana)에서 유래”했다. 우란분재의 별칭인 해도현(解倒縣)도 ‘죄를 짓고 지옥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받는 조상들의 혼백을 구해주고 풀어낸다’를 뜻한다. 감로탱 하단이 『우란분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하단의 솟대타기·땅재주·줄타기에서 몸을 거꾸로 세우거나 거꾸로 매달리는 연행은 지옥불에 매달려 있는 무주고혼들을 형상화한다고 볼 수 있다.  

감로탱은 불교 의례가 있는 날, 실제 도량에 모인 현실의 인물을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단에 그려진 솟대타기, 땅재주 연희자의 연행 모습은 현실의 불교 도량에서 지옥도를 형상화한 연희가 펼쳐지는 장면이라고 여겨진다.

 

땅재주

다음으로 땅재주는 한국에서는 근두(斤頭, 筋斗), 곤두질, 살판(活版), 지예(地藝), 장기(場技), 땅재주(땅재조)로 불린다. 땅재주는 물구나무서기, 허리를 뒤로 꺾은 후 손을 땅에 짚기, 껑충 뛰기 등을 기본 동작으로 하는 연희로, 여러 기예 종목의 기본 동작이 된다. 솟대타기, 줄타기, 공놀리기, 역기거중, 첩치기, 안식오안 등의 산악백희 종목과 결합해 연행했다. 감로탱에서는 솟대타기, 쌍줄백이, 줄타기, 쌍줄타기 등과 결합한 양식으로 보인다. 땅재주는 솟대타기와 더불어 감로탱에서 가장 많이 연행하는 연희다. 기대승(奇大升)은 『고봉집』에서 “근두란 우인(優人, 광대)이 거꾸로 섬을 이르는 명칭”으로, 어떤 스님이 『전등록』에 의거해 말한 “옛날에 한 중이 장로의 법회에 참석했다가 깨달음이 있어 거꾸로 서서 나왔다”는 뜻으로 설명한다. 땅재주가 불교에서 깨달음의 포즈로도 인식됐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땅재주에서는 근두의 원형으로 번금두(飜金斗)가 있다. 글자의 의미는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서 “조간자가 중산왕을 죽인다”에서 비롯됐다. 『곡성산방필진』에서는 번금두의 의미가 ‘조간자가 중산왕을 죽이다’의 약자에서 시작했으나,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몸을 뒤집어 뛰어넘는다’라고 여겨 ‘금두(金斗)’라고 부르게 됐다고 하여, 신체 기교를 표현하는 의미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땅재주의 유래가 죽음과 관련한 연희이며, 그 기예가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비유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땅재주는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형상화하기에 적합한 기예이고, 불교와 관련성이 깊어서 감로탱의 연희 도상으로 선정됐을 것으로 보인다. 

 

<쌍계사 감로탱> 부분도. 춤추는 연희자(사당) 뒤로 땅재주를 하는 연희 모습이 그려져 있다. 솟대 위에는 무동(舞童)이 춤을 추고 있다. 

솟대타기

다음으로 〈쌍계사 감로탱〉(1728)의 솟대타기, 땅재주, 사당의 연희를 살펴보자. 〈쌍계사 감로탱〉에 나타난 땅재주는 물구나무서기와 허리를 뒤로 젖혀 손을 땅에 짚기(하요)를 연행하고 있다. 그 앞에는 솟대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의 가로목에는 손목에 한삼을 낀 채 춤을 추는 연희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솟대의 꼭대기는 용을 조각한 가로목을 사용했다. 이렇게 용이 조각된 솟대는 과거급제자 잔치인 문희연에서 연행하던 것으로, 안동 권씨 대종보의 문희연에 그려진 솟대 꼭대기에도 용 조각이 보인다. 용을 조각한 가로목은 등용문(登龍門)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에서 솟대는 신앙의 목적 또는 경사가 있을 때 축하의 뜻으로 세우는 긴 대를 칭하는 이름이다. 지역에 따라 ‘솔대(함흥, 강원도)’, ‘짐대(강원도)’, ‘솟대(황해도, 평안도)’, ‘별신대(경상도 해안지방)’, ‘소주’ 혹은 ‘소줏대(전라도)’로 불렸다. 솟대타기에서 솔대, 짐대는 연희를 펼칠 때 사용하는 장대를 일컬을 때 쓰였다. 원래 솟대는 천신에게 제사 지내는 지역이나 그곳에 세웠던 방울이나 북을 달았던 높은 장대를 말한다. 삼한시대에 신을 모시는 지역인 소도(蘇塗)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사실 솟대타기는 도로심장(都盧尋樟)이 전래된 것에서 비롯한다. 도로심장은 ‘도로국의 솟대타기’를 말한다. 도로국은 미얀마의 바간(Bagan) 지역으로, 옛 이름은 파간(부감도로夫甘都盧)이며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중 하나다. 이 지역은 대나무가 번성한 곳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나무를 잘 탄다고 한다. 

사실 대나무는 불교와 관련하여 신물(神物)로 등장한다. 중국 남북조 이래 불교회화를 살펴보면, 대나무가 정토를 장식하는 귀중한 식물로 자주 등장한다. 악무 공연에서 응용된 예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신라 향악 5기의 금환(金丸, 여러 개의 금방울을 공중으로 던졌다가 받는 놀이), 죽방울치기, 죽방울놀리기 등과 중국 송대(宋代)의 죽간자(竹竿子), 죽간불자(竹竿拂子) 등에서 볼 수 있다. 

감로탱에서 솟대타기가 그려진 이유는 솟대라는 신성성을 지닌 장대를 타고 오르면서, 정토에 도달하기를 염원하는 기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앞서 솟대타기를 연행할 때, 물구나무서기나 거꾸로 매달리기의 연희가 우란분재의 목련구모(目連救母) 고사와 관련해 지옥에서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솟대타기는 『목련경』 경전의 시각화이며 불교적 배경을 지녔기에, 감로탱 하단의 기예로 선정돼 그려졌다.

<감로탱> 부분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감로탱에 그려진 사당패 모습. ‘우바새(優婆塞)’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 

 

사당

〈쌍계사 감로탱〉의 또 다른 연희자인 사당은 솟대 옆에 앉아 있는데 거문고, 비파, 대금, 장구 연주자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 사당은 손을 어깨높이로 올리고 한삼을 까닥거리며 앉아 음악에 맞춰 가창(歌唱, 노래를 부름)을 하고 있다. 그림에 드러나지 않지만 사당이 한삼을 착용한 모습에서, 이후 춤의 연행 가능성도 추측할 수 있다. 

사당은 고려시대 재승(才僧) 계통의 연희자이며, 원래 머리를 깎지 않은 승려의 아내(우바니優婆尼, 우바이優婆夷)로, 불교에 귀의했지만 재가(在家) 상태로 불도를 걷는 사람이다. 14세기에서 17세기 초까지는 범패나 염불을 하고 수륙재를 지내는 등 스님과 유사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에 사당도 죽음과 관련한 의례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중반~18세기에는 민가를 돌며, 주로 염불 소리로 시주를 걷어 사찰의 제반 경비를 충원했다. 사당은 불교에 속한 사람으로 염불 소리를 주로 하던 연희자다. 사당의 염불 특성은 ‘남도 잡가’의 하나인 ‘보렴(報念)’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보렴은 과거 사당패들의 ‘판염불’에서 비롯된 ‘축원 염불’ 중 하나로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 

판소리 명창인 이화중선, 이중선 자매의 『남도잡가 보렴』(1922) 상·하에 불교 의식문인 ‘행선축원(行禪祝願)’과 『천수경』도 나온다. 행선축원은 불교 의식집 『승가일용집』(1869)에 수록된 것이다. 이것은 영혼 천도 의례인 영산재 등 불교 의식에서 가창하는 것이다. 보렴의 마지막 부분(자진모리장단 부분)은 “도량이 티 없이 깨끗하며, 삼보천룡이 이 땅에 내리시고, 지금까지 악업을 참회하고 앞으로 부처님의 대자비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감로탱이 제작된 거의 전 시기에 걸쳐 사당이 그려진 이유는 보렴에서 사당이 염불 소리를 통해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같이 감로탱에 나타난 솟대타기와 땅재주는 불교의 경전과 불교 사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적합한 기예였기에 19세기 이전의 감로탱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사당은 ‘축원 염불’이라는 음성공양을 통해 무주고혼들의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연희자이기에 감로탱 하단에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서지은
고려대 대학원 문화재학 박사 수료. 가면극과 산악백희 종목, 연희자 및 복식과 소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전통연희사전』·『한국 무속연구의 한 단면』(편저), 『한국전통연희총서 02 나무다리걷기, 땅재주, 유술』(공저)이 있다.

 

_ 참고문헌

김기종, 「남도잡가 〈보렴〉의 문학적 연구」, 『한국시가연구』 53, 한국시가학회, 2021.
서지은, 송준, 안소정, 『한국전통연희총서 02 나무다리걷기, 땅재주, 유술』, 민속원, 2020.
신근영, 이호승, 『한국전통연희총서 01 줄타기, 솟대타기』, 민속원, 2020.
전경욱, 「감로탱에 묘사된 전통연희와 유랑예인집단」, 『공연문화연구』 20, 한국공연문화학회, 2010.  
장희주, 「사당패의 집단성격과 공연내용에 대한 사적 고찰」, 『한국음악연구』 35, 한국국악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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