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일 스님이 한라산 자락에 자그마한 법당을 짓기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됐다. 제주와는 아무런 연고 없이 내려왔다.
지인 스님 초청으로 법문하러 내려왔다가 제주에 눌러앉았다. 큰 사찰 소임도 잠시 맡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 시내에 포교당을 내고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인연 있는 분이 건축물 야적장 터를 내줘, 자그마한 법당을 짓기 시작했다. 새벽 예불을 마치면, 법당 터로 와서 하루 종일 쓰레기를 치우고 땅을 다졌다. 그렇게 시작한 터에 법당 한 채, 요사채 한 채를 마련했다. 원일 스님은 15년 넘게 선방을 다녔다. 안거철에는 선방에 앉았고, 산철에는 강원도 원주에서 그림을 배웠다. 무문관도 10번 넘게 다녔다.
“저 같은 문외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겠습니까?” 스님에게 여쭸더니, “누구나 된다” 하여 그림을 시작했다. 스님은 기본적으로 예술가적 기질이 있다. 출가 전에 서각(書刻)을 했고, 선화(禪畫)를 배운 지 얼마 지나 그림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마 선방에 다닌 습기가 그림에도 남았으리라.
선화를 그리기 위해 붓을 다시 잡은 것은 복천암 달력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노동하느라 그동안은 그림 그릴 여유는 없었다고. 서각을 했기에, 글과 글씨를 함께 작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선화는 군더더기가 없어야죠. 절도 군더더기 없어야 해요. 복잡한 사회를 벗어나 사찰에 왔는데, 여기도 복잡하면 좀 그렇죠?”
불광이 찾은 날의 일과는 밭에서 건져온 귤나무를 화목난로 연료로 쓰기 위해 말리는 작업을 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