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말로 몰랐던 제주불교] 제주, 봄을 맡다 빛과 바람과 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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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말로 몰랐던 제주불교] 제주, 봄을 맡다 빛과 바람과 꽃으로
  • 유동영
  • 승인 2023.02.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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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조천읍 함덕 서우봉

생각해보니 이번 제주 일정 가운데 가장 자주 들른 곳이 제주항이다. 애초 일정이라면 두 번만 갔을 테지만 예상치 못한 일정으로 두 번 더 들르게 됐고, 더불어 여수항, 녹동항, 완도항 등 남도의 세 항구를 고르게 이용했다. 덕분에 다양한 제주의 바다를 배 위에서 볼 수 있었다. 방문 첫날에는 사납게 덤비는 여명의 검푸른 바다를, 잠시 제주를 나올 때는 낙조를 받으며 아스라이 멀어지는 한라의 분홍빛 바다와 정월보름의 큰 달이 비추는 코발트 바다를 함께 보기도 했다. 두꺼운 겨울옷마저 뚫었던 열흘 전 제주의 사나운 겨울바람은 어느새 꽃향기를 담고 바다를 건넌다.

함덕 서우봉

종달리의 생개납 돈짓당에서 제주 방문 신고 일정을 시작으로 북촌리에서는 4·3의 현장을, 관덕정에서는 탐라국 입춘 맞이 입춘굿을 보았다. 백록담 탐방은 예약 실패로 포기하고 생애 처음 신령스러운 영실과 백록담 서벽을 보았다. 불탑사 5층 석탑을 시작으로 제주 불교의 현장을 찾았다. 어승생악에 올라 한라산의 위용을 접했고, 선래왓 주지 스님을 비롯한 여러 불자님의 환대를 받은 뒤에는 백약이오름 등 몇 개의 오름에 올랐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넘나들며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봄꽃이 유채꽃 외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유채꽃은 한반도의 봄 나들목에 자리한 제주의 봄 전령답게 산방산 주변을 비롯한 곳곳에 피어 있었다. 유채꽃과 바다가 보이는 모습을 상상했더니, 서우봉 4·3 유적지 가는 길의 자그만 밭뙈기에서 소소하게 핀 유채꽃을 보았다. 서우봉을 걷는 사람들은 유채꽃보다는 시원스러운 함덕 해변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서귀포시 서홍동 걸매생태공원의 청매화
걸매생태공원의 청매화 

봄이 시작될 무렵 남도의 길가나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화는 의외로 제주에서는 드물었다. 어쩌면 사철 푸른 동백과 귤이 더 실용적인 데다 바람에 강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방송이나 여타 매체가 봄을 알리는 제주 매화를 다뤘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제주 사람들이 말하는 제주의 매화는 모두 공원에 심어진 것들이다. 한림공원과 걸매생태공원의 매화가 그것들이다. 걸매생태공원으로 향했다. 2월 초라도 육지의 통도사나 금둔사의 매화는 이미 봉우리를 터뜨렸을 것인데, 걸매생태공원의 매화는 홍매 몇 그루 외에는 아직도 꽃봉오리를 웅크리고 있었다. 

법정 스님은 매화의 꽃봉오리를 두고 “활짝 피어 혼이 나가버린 꽃보다는 잔뜩 부풀어 오른 꽃망울 쪽이 어떤 충만감과 기대를 갖게 한다”라고 했다. 스님은 푸르스름하니 꽃에 생기가 도는 청매의 기품을 더 칭찬했고, 화려하게 가득 핀 매화보다는 고목에 붙은 몇 송이의 꽃이 매화답다고도 했다. 

 

제주 월정사의 홍매화
걸매생태공원의 홍매화

걸매생태공원에 빽빽하게 줄지어 서 있던 매화를 본 것만으로 ‘봄의 나들목인 제주에서 매화가 전하는 봄 향기를 느꼈다’고 하기엔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던 중 김석윤 스님이 창건한 월정사에서 비로소 매화다운 매화를 만났다. 일주문 양쪽으로 서 있는 청매와 홍매, 관음보살상 앞에서 풍성한 가지를 뽐내는 수양버들매화 등 하나같이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매화들이었다. 도량 곳곳에 자리한 매화 때문인지 꽃봉오리를 터뜨리기 직전의 매화처럼 경내에는 봄기운이 가득했다. 나무들 크기에 비하면 아직은 열에 하나도 피지 않았으나 매화가 뿜는 봄 향기는 도량에 진동했다. 김석윤 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하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스님의 손자로 눈 밝은 수행자였던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이 혹시나 이 도량을 거닐지는 않았을까 하는 망상을 펴 보았다. 제주의 절들은 하나같이 단정하고 고요했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동백

제주의 봄을 맡고 표현해 보자는 생각과 함께 금방 떠오른 곳이 위미리 동백들이었다. 동백으로 이름난 강진의 백련사 동백숲이나 고창의 선운사 동백숲은 툭툭 떨어지는 꽃송이가 아름답지 나무에 핀 꽃을 제대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위미리 동백은 담장 뒤로 열을 지어 서 있어서 천천히 걸으며 나무에 달린 동백의 운치를 한껏 느낄 수 있다. 1월에는 담장 너머에 있는 노란 귤과 함께 핀 동백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백은 동백대로 좋은 데다 백여 미터만 걸으면 아름다운 서귀포 해안 길이 있어서 금상첨화다. 제주도 문외한인 내가 서귀포의 외진 곳을 알게 된 데는, 15년쯤 전 위미리에 터를 잡은 지인 부부의 초대에 의한 것이었다. 이들은 나와 대학 동문이자 잠시 직장 동료이기도 했다. 부부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고 바른 소리를 잘하며 총명하다는 게 서로 꼭 닮았다. 땅에 떨어진 동백을 보니, 두 사람은 나무와 땅에서 여전히 검붉은 동백과 닮았다. 위미리의 동백 향이 제주의 남은 봄을 채웠다. 8년 전 한가하던 이곳은 그동안 인기 맛집 카페가 됐다.

 

글·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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