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수불 스님, 금강 스님
사회. 류지호
정리. 최호승
사진. 유동영
대승불교의 꽃이라 불리는 간화선(看話禪)은 가장 효과적인 수행법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전국 각처, 세계 곳곳에서 눈 푸른 납자들이 화두를 든다. 특히 한국에서는 매년 여름과 겨울, 안거 때마다 선원 100여 곳에서 수좌 2,000여 명이 정진한다. 출가수행자가 아닌 재가수행자들도 시간을 쪼개 좌복 위에 앉는다. 이들을 지도하는 법사들은 죽비를 든다.
반면 간화선은 다양한 수행법이 전해진 오늘날, 높은 근기의 수행자만 도전 가능한 수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일부에선 실용에 예민한 대중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불교사회연구소가 2013년에 내놓은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불자들에게 가장 적게 선택을 받은 수행이 간화선이었다. 게다가 선지식 부재에 따른 지도점검의 한계도 과제라는 비판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게 사실이다.
한국불교가 오래전부터 품어 온 염원이다. 과연 간화선(看話禪)은 대중화될 수 있을까? 하안거 결제를 앞둔 5월 12일, 부산 안국선원에서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과 조계종 교육위원장이자 중앙승가대 교수 금강 스님이 마주 앉았다. 한국불교 간화선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향후 나아갈 방향을 화두처럼 던졌다.
선으로 맺어진 인연
수불 스님은 『육조단경』 감수 혹은 과거에 시봉했던 능가 스님의 추모다례 참석, 안국선원 세종선원 『육조단경』 강설 등 소소한 근황만 전해졌다. 20년간 주지를 맡아 해남 미황사를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로 일군 금강 스님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승가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선불장, 참선재단 이사장, 간화선 대법회 집행위원장 등 간화선 관련 직함 관련 소식은 간간이 들려왔다. 두 스님의 큰 접점은 없어 보였다. 오해였다. 간화선으로 맺어진 인연은 오래됐고, 깊었다.
류지호(이하 사회) : 선불교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신 수불 스님과 금강 스님 두 분 스님들의 아름다운 공부 이야기를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두 스님 모두 근황이 궁금한데,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수불 스님(이하 수불) : 코로나로 사람 만나는 기회가 적어졌어요. 선방에 갔죠. 지리산 벽송선원에서 한철, 소백산 안국사에서 한철 났어요. 이번 안거에도 들어갈 건데, 계속 수행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는 생각이에요. 이제는 회향할 때고, 그런 나이가 됐어요. 벌려놓은 것들 잘 마무리하고 후학에게 넘겨야겠다고 생각 중이에요.
금강 스님(이하 금강) : 해남 미황사와 인연을 정리하고 중앙승가대에서 학인스님들을 지도하고 있어요. 지금은 어느 때보다 스승이 필요한 시기예요. 학인스님들이 좋은 스님이 되길 염원하는데 마음을 두고 있죠. 또 서옹 스님의 직계 제자스님들이 수행했던 처소와 교육했던 선원 뒷바라지를 하고 있어요. 늘 마음 따라 몸을 움직였는데, 이제는 몸 따라 마음이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활동보다는 침잠하며 깊게 살고 싶어요.
사회 : 두 분 인연은 어떻게?
금강 : 중앙승가대에서 열린 주지스님 연수교육 때였어요. 간화선 수행 프로그램하는 스님 네 분을 초청 강사로 한 교육이었는데,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을 비롯해 제주 원명선원 대효 스님, 금강선원 혜거 스님 그리고 제가 강사였죠. 쉽지 않은데 절 집안 후배가 강의하는 수행 프로그램을 눈여겨보신 것 같아요. 미황사까지 찾아와 격려해주셨어요. 먼 길 찾아오신 스님과 밤새 이야기를 나눴는데, 감동적이었어요. 후배를 자세히 살피고 격려하고 방향까지 조언하셨는데, 전 지금도 그렇게 못하고 있거든요.
수불 : 선후배를 떠나서 도반이잖아요.
(금강 스님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열어서 나누니 누구든지 환영하고 땅끝까지 찾아가서 호응하지 않았을까요?
사회 : 지금도 마음에 울림이 있는 분들을 불시에 찾아가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수불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하하. 전화를 드리기도 하지만 불쑥 찾아가기도 합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얼굴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몰라도 소통하면 되니까요. 조건 걸고 가는 것도 아니니. 사실 격려하는 게 오히려 격려를 받습니다.
왜, 간화선인가?
2000년대에 한국불교는 간화선 대중화와 세계화를 주창했다. 현실은 냉정했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발표한 ‘2013년 한국의 사회・정치 및 종교에 관한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간화선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었다. ‘수행의 종교’ 불교라고 하기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불자 10명 중 7명이 수행을 하지 않았다. 수행의 필요성도 못 느꼈고(29.2%), 어렵다고(18.5%) 답했다. 호흡명상이나 염불, 경전 읽기가 TOP3에 든 반면 간화선 선호도는 4%에 불과했다.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서 간화선 대중화가 필요하다”라는 주장은 공염불일까? 더 본질적인 질문을 꺼냈다. 왜, 간화선인가?
사회 : 본격적으로 공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공부는 뒷전이 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 시대에 어떤 공부가 필요한가요? 왜 간화선인가요?
수불 : 모처럼 선방에 갔어요. 청규 잘 지키며 열심히 하시더라. 오랜만에 선방에 갔지만, 잘 살고 계셔서 대중공양을 많이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살짝 혼자 공부하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법담이 단절되진 않는데 소통이 덜 되는 느낌이었어요. 바깥에서 보기엔 소문이 달갑진 않지만, 실제는 충실하게 열심히 살고 있었어요. 다만 누군가가 불씨를, 그러니까 불을 지필 촉매제가 되어줄 눈 밝은 스님이 계시면 언제든 불꽃이 타오르겠더군요.
사회 : 재가자 지도를 많이 하셨는데, 재가자는 어떻습니까?
수불 : 광고 한번 않고, 수행 시간만 알려주고 꾸준히 해왔어요. 1주일 집중수행을 300회 이상 했습니다. 남들보다는 수행을 지도할 기회가 많았죠. 개인의 심적 변화는 분명한 사실이에요. 도반이나 선지식과 탁마하며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는데 재가자는 스님보다 기회가 적습니다. 내 나름대로 지도하고 있으니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지만, 부처님 법에서 잘못되지 않았다는 소신 안에서 많은 기회를 나누려고 노력 중입니다.
1993년 문을 연 부산 안국선원은 1989년 개원한 금정포교당이 모태다. 1996년엔 서울에도, 미국과 창원에서도 잇따라 선원의 문이 열렸고, 대중은 간화선을 체험했다. 그러나 ‘한번 해볼까’하는 요량으로는 어림없다. 안국선원에서는 수행 전 불교의 본질과 정신부터 배운 다음, 수행에 목적을 세운 초심자만 본격적인 수행에 동참할 수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공부과정을 점검받고, 하루 4시간 이상 정진이 원칙이다.
수불 스님은 수행에 원력을 세운 이들의 1주일 집중수행을 300회 이상 진행했다. 와서 보고 직접 경험하라는 집중수행 누적참가자만 3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1년 중 하안거와 동안거 때면 평일에도 500~700명이 안국선원에서 참구한다. 간화선 대중화의 성공사례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왜일까? 분명한 점은 마음의 변화를 참가자들이 직접 느끼기 때문이다. 변화는 공안집의 1700 공안으로 만들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를 굽혀다 피면서 “무엇이 이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가”라는 화두를 준다. 수불 스님은 1700 공안에서 생기는 의심을 화두라고 보고, 재가자 근기에 맞는 강력한 의심 덩어리를 던지는 셈이다.
사회 : 금강 스님은 해남 미황사에서 ‘참사람의 향기’ 등을 열심히 했는데, 공부가 왜 중요한가요?
금강 : 화두 들고 하는 공부인 간화선은 사실 현대인에게 가장 맞아요. 욕망이 과학을 만나면서 욕망은 더 커지고, 커진 욕망을 채우지 못할 때마다 번뇌가 생기고, 서로서로 욕망의 크기를 비교합니다. 비교하고 갈등하고 분별하는 순간은 사람을 소모적으로 만들어요. 꾸준하게 참선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참가자들이 가진 고민이 해소되고 새 삶의 방향을 찾는 모습을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해야 할 일을 찾았다.’ 제 공부도 같이 깊어졌습니다.
금강 스님은 백양사 방장 서옹 스님의 손상좌다. 스승이 세수로 아흔 되기 전 3년간 곁에서 시봉(侍奉, 모셔 받듦)했다. ‘참사람의 향기’는 스승이 촉발했다.
스승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 망한 나라에서 정신적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 일렀다. 금강 스님은 실직자 단기출가 수련회를 기획했고, 스승은 “해봐”라며 제자를 응원했고, “진짜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겠다”라는 참가자의 소감을 받으며 큰 호응을 얻은 수련회는 5개월간 지속됐다.
수련회는 금강 스님에게 작은 깨달음을 줬다. 사람 살리는 일은 의사만 하는 게 아니었다. 스승인 서옹 스님이 주창한 ‘참사람 운동’이 거기 있었고, 금강 스님이 ‘평생 해야 할 일’도 여기 있었다.
이는 해남 미황사에서 2005년부터 시작한 7박 8일 참선 집중수행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로 이어졌다. 2020년 미황사 주지소임을 놓을 때까지 126회를 진행했고, 참가자는 2,000명이 넘는다.
금강 : (간화선은) 체험이에요. ‘나’라고 하는 것에 꽉 갇혀 있다가 화두 들고 수행하는 중에 문득 무아가 체험되는 거예요. 그게 되면 어떤 ‘관계 속에 나’가 확연히 드러나죠.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그때부터 공부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스승이 중요하고요.
간화선의 힘
안국선원에는 없는 게 있다. 만년 위패다. 초하루 보름에만 합동 49재를 지내는 게 전부다. 오래 다는 등도 없고, 하루만 단다고 한다. 오로지 간화선이다.
사회 : 대부분 절 운영은 기도, 축원, 제사 등입니다. 간화선으로만 절 운영이 가능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요?
수불 : 다 망한다고 했어요(웃음). 간화선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에요, 조직 관리도 중요해요. 무엇보다 체험이 중요한데, 체험을 놓고 말을 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 믿음은 부처님 법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혼자서 검증하면 삿된 믿음이 될 수 있죠. 일단 저는 제 체험과 공부를 열었습니다. 와서 겪어보고 비판할 게 있으면 비판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좋다면 공부하길 바랐어요. 계도 중요합니다. 계는 베풂이고 나눔입니다. 지키는 일은 기본이죠. 앞장서서 열어 보여주고, 들어온 사람들 잘 포용해서, 스스럼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베풀고 나누는 게 계의 본질이자 덕이 아닐까요?
사회 : 간화선이 가장 현대인에게 맞는 수행이라고 하시는데, 가장 어려워하는 수행이 간화선입니다. 간화선은 체험이고, 스승이 있어야 빛나지만 일단 용어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운데요.
수불 : 현대는 너무 빠르게 흘러갑니다. 1주일 시간 내기도 힘들죠. 출가수행자는 평생 수행하는 처지이지만, 현대인은 수행할 시간도 없는데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간화선은 눈 밝은 스승을 만나면 1주일 안에 어떤 체험이든 결과물이 나옵니다. 눈 감은 사람은 눈 뜬 사람을 만나야만 안내를 받을 수 있어요. 눈 감은 사람은 누가 눈을 떴는지 모르지만, 인연 따라 눈 밝은 스승이라고 믿는 인연을 따라 수행결과가 드러나면 왜 간화선이 왜 자신에게 맞는지 알 수 있어요. 인연을 만나면 빠르고 쉽게 남녀노소 누구나 체험을 할 수 있는 게 간화선입니다. 눈 밝은 인연(스승)을 누가 증명하느냐 난제는 남지만, 과정도 중요합니다. 사실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들은 모두 그림의 떡이죠. 간화선 인연을 만나면 해보세요. ‘아! 이래서 간화선이 필요하구나’ 압니다.
스승과 제자, 선지식과 독참
수불 스님은 수행도 보시라고 강조했다. 먼저 길을 간 사람이 헤매는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부처님이 『금강경』에서 아라한에 이른 수보리에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지적하고 부단한 정진을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사회 : 수행자들이 공부의 진전에 차이를 보일 텐데 어떻게 지도하는지요.
금강 : (스승은) 의문이 살아있게 만들고, (제자는) 의문을 계속 살려 깊은 공부로 들어가야 하거든요.
수불 : 화두에 걸리는 순간, 정신은 또 다른 궤도를 맞이합니다. 어떤 정신적인 벽과 마주하는 면벽 상태에 이르지요. 어떻게 깨느냐? 눈 밝은 스승이 있다면 제대로 걸렸는지 검증하고 확인합니다. 화두에 걸렸다면 더 집중해서 의심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1차, 2차, 3차 계속해서 정신적인 벽이 나타나도록 지도해야 하죠.
금강 : 수불 스님은 200명씩 한꺼번에 지도하시는데, 전 딱 20명 만 해요. 일대일 면담을 계속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보여요.
수불 : 일대일 면담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독참(獨參)이라고 하죠. 독참하는 힘을 (스승과 제자) 서로 가져야 비로소 점검할 수 있습니다.
금강 : 예전엔 방장실 입실(入室) 제도가 있었어요. 서옹 스님 모실 땐 스님이 선방에 두 번 정도 올라오셔서 일대일 독참을 했어요. 죽비로 경책하시면서 한 명씩 불러서 독참 했습니다. 한철에 두 번 했죠. 그러면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처럼 긴장감이 생기고 공부에 크게 마음이 일어납니다.
수불 : 맞아요. 활구(活句, 살아있는 화두)를 걸어주고 유지하도록 경책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갈애가 생기는 등 장애물이 많거든요. 그래서 눈 밝은 스승이 중요합니다.
사회 : 선지식의 지도와 점검 속에서 살아있는 화두를 참구하면서 마음의 벽과 싸워 돌파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수불 : 그게 간화선 집중수행이에요.
금강 :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만들어내는 게 ‘나’라는 ‘나의 영역’이에요. 이 벽이 깨져야 합니다.
사회 : 안거 때마다 2,000명 이상이 공부하고, 20안거 30안거를 정진한 많은 스님이 계시는데 왜 이렇게 대중은 힘들고 선지식 소식은 들리지 않는 건가요?
금강 : 정혜쌍수(定慧雙修,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수행)라고 하죠. 선방에서는 보통 정에 집중해요. 혜는 대상을 만났을 때 발생하는 경계에서 나옵니다. 예전엔 안거 나면 탁발 다니면서 석 달을 또 정진했어요. 제 경우는 서옹 스님 모시고 하던 참선 프로그램을 진행만 하다, 7박 8일 ‘참사람의 향기’를 하면서 자신의 바닥을 보고 거기서 더 공부했어요. 대중을 만나면서 공부가 깊어졌다고 생각해요.
수불 : 그게 광덕 스님이 말씀하신 바라밀 운동이에요, 마하반야바라밀은 대승 이상의 수행을 말씀한 거예요. 마하반야바라밀은 돈오돈수적 체험의 수행이고 보살 수행입니다.
선을 하는 이유 그리고 과학과 명상
간화선의 실마리를 잡았다면, 되물어야 했다. 질문을 다시 본질로 돌렸다. 선을 일상으로 초대하려는 한국불교의 노력은 어디쯤 와 있을까?
분명한 점은 좌복 위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과연 선은 우리 일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반면 심리·치유·상담 분야에서 활용하는 명상이 개인 일상으로 파고든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선을 하는 이유 그리고 과학과 명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수불 스님은 “명상은 배운 뒤 혼자서 호흡만으로 안정되고 평안해질 수 있지만, 간화선은 스승과 제자가 같이 노력해야 한다”라고 했다. 금강 스님은 명상이 만드는 또 다른 상을 우려했다.
사회 : 선이 왜 좋은 건가요? 생활에 어떤 도움을 주는 건지요.
수불 : 저는 선을 공부한 지 40년이 됐습니다. 한 번도 침체한 적이 없고, 후회도 없습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늘 좋습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선은 체험해봐야 압니다. 개념적으로 해봐야 추상적일 뿐이에요. 맛보는 순간, 변화를 느낍니다. 그 변화의 힘으로 생활이, 삶의 질이 바뀝니다. 저는 공포심이 많이 줄었고, 불경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보고 듣는 힘이 다른 차원에서 생긴 것처럼….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금강 : 어느 순간에 내가 만든 생각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 직관이 느는 거예요. 지난 과거는 후회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거죠.
수불 : 어디에도 머무름 없이 집착하지 않고 흐름에 맡기고 힘이 생겨요. 자유롭다고 할까? 평화를 추구해서 평화가 아니라, 본질적인 부분에서 (평화가) 드러납니다.
금강 : 어디에 있든 고요해요. 순간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인연들도 편안합니다.
사회 : 지금껏 말씀 중에 명상과 선의 차이를 조금씩 말씀하셨습니다. 명상과 선을 정리한다면?
금강 : 여러 명상 관련 심리치료 프로그램들이 고통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고통을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에요. 자신을 찾고자 하는 측면에서 방향은 좋은데, ‘상 놀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수행의 단계를 구분하는 게 가장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수불 : 마음을 물로 비유하면 명상은 물의 표면을 맑게 합니다. 하지만 가라앉는 게 있죠. 선은 다릅니다. 파도도 물이고 바다도 물입니다. 애초에 뽑아낼 것도 가라앉는 것도 없으니 구애받지도 않습니다. 명상은 가라앉히는 것이고, 선은 뽑아 없애는 것도 없이 수용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명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맑아진 물의 표면에 머물고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금강 : 부처님이 늘 경계하라는 세 가지가 있어요. 탐진치, 삼독심입니다. 눈으로 보자마자 분별하고, 욕심부리고, 채우기 위해서 집착하면서 갖가지 번뇌가 일어나기 마련이에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루에 4만 7,000가지 생각을 한다는데, 그만큼 생각이 많아요. 거기에 ‘나’와 ‘나 아닌 것’에 대한 큰 분별심이 있고, 과거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정보에 대한 상이 있어요. 그 이전의 자리가 있습니다. 번뇌가 일어나기 전의 상태, ‘나라는 생각’이나 ‘나 아닌 것’의 분별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바라보기 이전의 생생히 살아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번뇌, ‘나라는 생각’이나 ‘나 아닌 것’, 경험·지식·정보 등은 잠시 그 자리를 가리고 있는 구름입니다. 요즘 명상은 그 구름을 하나씩 걷어내는 단계를 강조합니다. 어쩌면 그런 단계가 또 다른 상을 자꾸 만들 수도 있어요. 그러나 간화선은 ‘의문’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구름을 뚫고 그 자리로 올라가는 거예요. 구름 위에서 보면 분별심, 자의식, 상 등에 따라 일어나는 번뇌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사회 : 요즘은 과학의 시대입니다. 종교와 과학, 즉 불교와 과학은 양립 가능한가요?
수불 : 과학보다 못한 종교는 도태합니다. 앞장서거나 부합하는 종교는 살아남지요. 과학이 이를 뛰어넘는다면 또 다른 차원이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불교엔 희망이 있습니다. 과학이 못 미치는 영역이 분명히 있고,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나올수록 맞아떨어지는 지점도 많습니다.
금강 : 최첨단 과학은 AI(인공지능) 시대를 앞당기고 있죠. 사실 과학의 발달은 욕망의 극대화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인간성 소외 등 정신적인 갈등과 문제들은 수행을 요구하게 될 거예요. 부처님 가르침 그리고 순도 높은 수행이 필요하다는 거죠.
사회 : 21세기 종교의 역할, 즉 선과 불교의 방향과 역할은 어디에 있을까요?
수불 : 많은 이가 수행하는 분위기를 어떻게 형성하느냐가 중요해요. 아직 필요성은 아는데 어디서 어떤 수행을 어떻게 해야 좋은지 믿음이 약하죠. 종교는, 그러니까 불교는 세상의 가렵고 아픈 곳에 있어야 신뢰를 얻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요. 마지막까지 부처님 법을 펴는 불사에 전력을 다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금강 : 한국사회의 희망을 어디서 찾을까 고민했습니다. 찾아본다면 불교,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육현장입니다. 그래서 승가대에 왔어요. 한 스님이라도 저보다 더 훌륭한 스승이 되도록 노력 중입니다. 많은 스승이 나와야 불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