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불교를 그리다] 연풍 현감 김홍도, 상암사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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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불교를 그리다] 연풍 현감 김홍도, 상암사에 오르다
  • 김남수
  • 승인 2022.05.2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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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풍동헌(延豊東軒) 풍락헌(豊樂軒). 김홍도가 1791년 연풍 현감으로 3년간 재직했다. 이후 이곳으로 옮겨졌다.

 

3년이 지난 임자년(1792년) 태수(太守) 김후(金侯) 홍도(弘道)가 이 자리에 부임해 왔다가 가뭄으로 인해서 비를 빌기 위해 이 암자에 올라 이르기를 “암자의 정결함이 고을 안에서 제일가니 마땅히 그 치성 드릴 곳으로 삼아야겠다.”고 하면서 녹봉을 던져 시주를 베풀어서 소조(塑造) 불상(佛像)의 색이 흐려진 것을 개금하여 환하게 드러내고, 진영과 탱화가 부서지고 벗겨진 것을 비단에 물감을 먹여 그리고 칠하였다. 
태수는 늙도록 아들이 없더니 이 산에서 빌어 아들을 얻었다. 이것은 곧 내 알기로는 그가 착한 일을 쌓은 끝에 얻은 경사이거니와 승려들은 착한 법보에 응답하신 것으로 돌릴 것이다.
__ 「연풍군 공정산 상암사 중수기」,『조선사찰사료』1911년.

 

‘새도 쉬어 간다’라고 해서 ‘새재’라 이름한 문경새재가 있는 조령산 중턱에 김홍도가 불공을 올린 상암서 옛터가 남아있다. 연풍 현감으로 재직 시, 비가 오지 않아 기도를 올리기 위해 오른 상암사에서 김홍도는 녹봉을 털어 시주하고, 불상을 개금하고 탱화에 먹을 먹였다. 이 공덕인지 쉰이 다 돼서 외아들을 얻었다. 김홍도에게는 감사의 시간이었을 터....

‘상암사터’ 입구에 암각돼 있는 ‘佛’.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상암사터’의 다른 바위에는 시주자와 공헌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상암사터에 오르면, 이곳이 사찰이었음을 알려주는 ‘佛’자가 바위에 암각 돼 있고, 옆으로는 시주자 명단이 적혀있다. 기와 파편이 곳곳에 있으며 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을 법한 구조물과 석축이 남아있다. 

기쁨도 잠시, 시기에 찬 무고에 관직을 파직당하고 다시 한양으로 올라갔다. 한양으로 올라간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본인을 총애하던 정조 임금이 승하했다. 노년 김홍도의 삶이 시작됐다. 김홍도의 그림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화려함보다는 허함을 드러냈다. 먹을 먹인 달마, 혜능, 관음보살은 삶을 달관한 모습으로 파도 위에서, 구름 위에서 자취를 드러냈다. 

 

참고문헌 이근우, 「상암사지, 문화유적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연구」, 『동양예술』 제33호, 2016년.

 

*상암사터 가는 길    

상암사가 있었기에 ‘절골’로 불렸을까? 연풍에서 절골로 올라가면 상암사터가 나온다. 등산로와는 떨어져 있고, 안내판도 없기에 찾기가 쉽지 않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화령 휴게소에서 조령산 정상을 지나, 신선암봉 등반 전 갈림길에서 연풍 쪽으로 내려가면 상암사터를 찾을 수 있다. 산이 험하고 길은 찾기 어렵기에 안내인과 함께 가야 한다.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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