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닿는 암자] 서룡산 실상사 서진암
상태바
[길이 닿는 암자] 서룡산 실상사 서진암
  • 유동영
  • 승인 2021.10.04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 년 수행터 지리산 전망대

서진암은 실상사 북쪽 1,000m가 넘는 서룡산 중턱에 자리한 실상사 산내 암자로서, 1516년 조성된 다섯 분의 석조 나한을 모시고 있다.  

“상서로울 서(瑞)에 참 진(眞) 잔데 논문을 찾아보니까 서진암이 전국에 몇 곳 더 있더라고요. 서진이란 게 뜻글자의 상서롭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선돌’·‘서 있는 돌’을 음차한 것으로 봐요. 저 위를 보면  동네 사람들이 매바위라고 하는 큰 바위가 서 있거든요. 그러니까 대개 서진암이 그런 의미로 지어진 절 이름이라고 나오더라고요. 무등산 서석대도 한글 ‘서’와 한자 ‘석’이 섞였잖아요. 이런 식으로 서진도 그렇다는 거죠.” 

2018년 9월부터 머물기 시작해 2021년 8월 말 1,000일 회향을 준비하는 실상사 동묵 스님의 말이다. 

스님은 서진암에 머물기 시작한 첫 두 해 동안은 그대로 두면 경계조차 모를 약 10만m2에 이르는 서진암 도량 구석구석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암자를 중심으로 서 있는 큰 바위들에는 이름을 지어주고 동남서로 길게 뻗은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전망대 역할을 부여했다. 

암자에서 보면 저기 반야봉이 잘 보이잖아요. 그래서 여기가 반야대죠. 사람들은 도량이라고 하면 보이는 마당과 담벼락 정도만 생각하지만 저는 서진암 도량 3만 3,000평, 즉 10만m2 전체를 마당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동서남북 순환로를 만들어서 어디로든 갈 수 있게 했어요. 여기는 주변 다른 산에 비해 크고 단단한 바위들이 좋아서 그 바위들을 드러나게 하고 싶었어요. 천왕봉이 보이는 자리는 천왕대, 실상사 남쪽으로 있는 삼정봉이 잘 보이는 곳은 삼정대, 백장암과 운봉의 고남산이 잘 보이는 곳은 북대 등 사방으로 전망대를 만들었어요. 

저는 실제로는 지리산 주요 봉우리를 안 가봤지만, 머릿속 지도상으로는 다 꿰고 있죠. 암자에 들어와서 이 부근도 다 안 돌아다녔죠. 근데 이제 궁금하니까 구글 어스로도 보고 카카오맵 등으로 전부 샅샅이 돌아다녔죠. 머릿속에는 거리랑 높이랑 입력이 돼 있죠. 다른 사람보다 더 입체감 있게 내비가 입력돼 있어요. 제가 공간 능력이 좀 있어요. 

여름 석양은 북대로 올라가면 좋아요. 서룡산의 주요 면모를 다 볼 수 있는 곳이죠. 지리산 덕두봉에 백장암, 청화 큰스님이 공부하셨다는 금강대까지도 보이는 곳이죠. 전망대 중 가장 나중에 만들었고, 멀리 있어요. 암자에서 약 20분은 올라가야 돼요. 북대는 제가 108대 다음으로 중요한 곳으로 치죠. 백장암과 지리산 서북 능선 덕두봉 자락, 왼쪽으로 뾰족한 운봉의 고남산 등이 잘 보이니까요. 지리산 전망이 좋다는 오도재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죠. 이성계가 왜구들을 물리쳤다는 황산도 보이네요. 북대에서 삼봉산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선돌이 보이는데, 바위가 매끈하고 평평해서 마애불을 모시고 싶었어요. 전기가 안 닿는 곳이라 부처님을 새길라면 정으로 하나하나 쪼아야 하니까 일이 길어지잖아요. 사람들이 매일 오르내릴 수도 없고 암자에서 묵어야 할 텐데, 공양주도 없이 혼자 사는 암자이다 보니 쉽지가 않아서 포기했어요. 몸도 안 좋고 해서요. 지금은 몸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데, 1년쯤 전부터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더니 류마티스라고 하드라고요. 

서진암 전망대 중에 하이라이트는 108대죠. 바로 앞이 백운산이고 그 뒤 봉우리가 창암산, 멀리 보이는 산이 지리산 천왕봉 주능선이에요. 오른쪽 실상사 앞으로는 삼정봉, 지금은 구름이 덮고 있는데 멀리 반야봉도 보이죠. 108대에서 일출을 보면 지리산에서 해가 가장 먼저 드는 봉우리가 반야봉이에요. 천왕봉이 높기는 하지만 뒤쪽 사면이라 빛이 들지 않거든요.

암자 위 절벽 자리는 지붕 위로 뭐가 있으면 위험하니까 정리하러 갔다가 찾았어요. 그래서 숨겨진 비경을 보는 자리다 해서 비장대에요. 왼쪽 끝으로 천왕봉이, 가운데로는 삼정봉과 반야봉,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덕두봉이 보이죠. 해가 질 때 서쪽은 물론이고 반야봉 위로 남쪽 하늘까지도 노을이 물드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별로네요. 

50년도 더 된 얘기지 않을까 싶은데, 여기에 모셔졌던 나한님들 중에 세 분을 도둑 맞았었다고 하드라고요. 그런 얘기들 많이 있잖아요. ‘훔쳐 간 사람 꿈속에도 나타나고, 괴롭힘을 많이 당하니까 못 이기고 도로 갖다 줬다’고 하는…. 찾은 나한님 세 분은 지금 금산사 박물관에 모셔져 있고 암자에는 남은 두 분과 새로 모신 세 분 이렇게 계세요. 박물관에 계신 나한님을 포함하면 서진암 나한님이 총 여덟 분이 된 거죠.

영적인 얘긴데, 어느 날 중국 사람과 한국 사람이 왔어요. 그분들이 와서는 당신들 스승님 이야기를 해요. 인도에 절을 갖고 계신 스님인데 스님의 전생 이야기더라고요. 그분은 수행을 깊이 하셔서 신통이 있으신가 봐요. ‘천 년 전에 여기 굴에서 수행했으니 가봐라’고 하셨다는 거예요. 다름 아닌 나한전 굴에서 수행했다는 거예요. 저도 여기 도량이 천 년은 넘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천 년을 이어온 아라한 수행터라는 게 확신이 들어요. 아라한은 수행자의 이상이잖아요. 그니까 그렇게 나한전 굴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처럼 요사도 짓고 터를 잡아서 절도 만들었겠죠. 수행자들이 기본적으로 아라한을 목표로 하잖아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이렇게. 수행처로서 출발하고 명맥을 유지해 왔으니 앞으로도 스님들의 수행처로서 정체성을 갖는 게 맞다고 봐요.   

 

사진. 유동영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