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 면면히 이어지는 나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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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 면면히 이어지는 나한신앙
  • 허진
  • 승인 2021.08.3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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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한님’이 안내하는 길

경북 청도 운문사는 1978년부터 지금까지 43년간 오백나한 백일기도를 진행해왔다. 매년 날이 선선해지는 9월에 입재해서 추워지기 직전인 12월 초 회향한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째 비대면으로 치러지고 있지만, 여태껏 한해도 거르지 않고 진행됐다. 운문사의 긴 세월이 담긴 나한기도는 운문사를 살아 숨 쉬는 나한신앙 도량으로 만들며 운문사에 독특한 정체성을 더하고 있다. 운문사 오백나한 백일기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앞으로 나한신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방향은 무엇일까. 운문사 율주 일진 스님에게 물었다. 

 

운문사 오백나한에 숨겨진 비밀

운문사 오백전 오백나한은 독특하게 500분이 아닌 499분이다. 이 사실은 1977년 오백전 오백나한상에 채색을 새로 입히는 개체 불사를 하면서 드러났다. 불사를 위해 오백나한상을 잠시 비로전에 안치하면서 오백나한이 모셔진 순서대로 한 분 한 분 번호를 붙였는데 그 번호가 499번까지였다. 처음엔 다들 갸우뚱했지만, 이내 깨달음을 얻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백전에 없는 나머지 한 분은 다름 아닌 사리암에 모셔진 나반존자였다. 

사리암 나반존자가 오백나한 중 한 분이라는 믿음은 사리암 나반존자 개체와 점안 과정에서 더 확실시됐다. 원래 오백나한 개체만 하고 나반존자 개체는 진행하지 않으려 했다. 신도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어느 날 신도 한 명이 꿈에 조상님처럼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옷을 새로 해달라고 청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사리암 원주 혜인 스님이 명성 스님에게 이를 전해서 나반존자 개체를 진행했고, 오백나한과 함께 점안했다. 오백나한 개체 불사할 때 나한을 옮겼던 일진 스님이 직접 경험한 일이다.

 

오백나한 백일기도 43년

운문사 오백나한 백일기도는 불사를 위한 자금 확보 목적으로 시작됐다. 운문사에 학인스님 숫자가 점점 늘어 120여 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함께 숙식할 방사가 하나밖에 없었다. 한자리에서 공동 수행해야 할 학인스님들이 산내 암자에서 자고 운문사로 통학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주지였던 명성 스님은 기도에서 답을 찾았다. 나한신앙 도량인 운문사의 독특한 정체성을 살린 오백나한 백일기도였다.

“오백나한 백일기도를 홍보하려고 ‘국화 향기 그윽한 가을에~’라고 운을 띄우며 기도에 동참하시라는 내용의 엽서를 직접 써서 부쳤던 기억이 납니다. 일종의 광고문이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40여 명 정도가 모였어요. 당시 열악했던 교통이나 여러 여건을 생각하면 꽤 많은 인원이었지요.”

그렇게 1978년 가을, 40여 명의 신도가 운문사 오백전에 모여 오백나한 백일기도 역사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금은 훨씬 규모가 커져 전국 각지에서 1,500여 명이 동참하고 있다.

“학인스님이 곧 오백나한.” 오백나한에 올린 공양과 불전은 운문사에서 수행하며 몸과 마음을 닦는 학인스님들의 피와 살이 되어왔다.
499분의 나한이 모셔진 운문사 오백전. 나머지 한 분인 나반존자는 사리암에 모셔져 있다.

 

학인이 곧 오백나한

명성 스님은 주지 소임 당시 “학인이 곧 오백나한”이라면서 오백전에서 나오는 불전을 모두 학인 자체 운영비로 쓰게 했다. 왜 오백나한을 학인스님과 연결 지은 걸까. 그 시작은 70년대 초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쌀이 귀해서 오백전에 모신 부처님 세 분에만 대표로 마지를 올리던 때였다. 어느 날 이태구 주지스님의 꿈에 마치 학인스님들처럼 보이는 동자승들이 떼로 몰려와서 우리도 밥을 따로 달라고 떼를 썼다. 오백나한들이 따로 공양을 올려달라는 뜻임을 알아차린 스님은 아이스크림 그릇처럼 작고 예쁜 불기를 500개 만들어서 500마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생미를 올리지만, 그때는 학인들이 직접 밥을 지어 올렸습니다. 배고프던 시절이었는데 이렇게 500마지를 올리고 나면 쌀밥이 많이 생겨서 학인들이 쌀밥을 충분히 먹었어요. 그때 주지스님이 ‘학인스님이 곧 오백나한’이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오백나한에 올린 공양이 운문사에서 수행하며 몸과 마음을 닦는 학인스님들의 피와 살이 된다는 뜻이었다. 오백나한을 학인스님과 연결 짓는 이유는 또 있다. 오백나한은 마치 우리 중생들의 모습을 반영하듯 웃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하며 친근감을 주지만 동시에 엄격하면서도 까칠한 성품이 있어서 매사 여법히 수행해야 하는 학인스님들에게 감시자 역할을 해왔다.

“어느 도량이나 그렇지만 운문사는 특히 학인들이 수행·정진하는 교육 도량인 만큼 어떤 허물도 용납하지 않는 매우 청정한 도량입니다. 제가 학인 때는 지금처럼 핸드폰이 없어서 기도하고 독송하는 일 외에 다른 할 일이 없었어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놀이가 ‘내 나한님’을 찾아 기도하는 일이었지요. 도반들과 함께 오백전에서 가서 제일 처음 눈에 띄는 나한님을 기준으로 스무 번을 셌습니다. 그 스무 번째 해당하는 분이 제가 수행을 잘하는지 지켜보고 복도 주고 벌도 내리는 ‘내 나한님’이라고 생각하고 그 나한님을 향해 열심히 기도했어요. 물론 근거 없는 믿음이었지만 학인스님들 스스로 오백나한과의 연결고리를 찾아 수행해온 셈이지요.”

엄격하고 까칠한 성품으로 알려진 오백나한은 매사 여법히 수행해야 하는 학인스님들에게 수행의 의지처가 됐다.

 

사리암에서 전하는 영험담

사리암에는 여러 영험담이 전해진다. 동국대 이사장이었던 정련 스님이 부산 내원정사를 불사할 때 일이다. 시청에서 불사 허가를 내주지 않자 스님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사리암을 찾았다. 공양과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 기도에만 몰두했다. 기도 회향날, 공양주 보살이 스님 마지를 올린 밥상을 들고 사리굴 옆을 지나는데 돌이 떨어졌다. 보살은 그 돌을 밥상 위에 올려 스님에게 가져다드렸다. 곧 시청으로부터 불사 허가가 났다는 공문이 날아왔다.

“이런 영험담은 우리 중생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위신력으로 성취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서산 대사도 ‘숙업(宿業)은 난제(難除)라 필차신력(必借神力)이니라’고 하셨잖아요. 전생부터 지은 죄는 없애기 어려워서 반드시 신력을 빌려야 한다고요. 불보살님, 나반존자님의 신력을 빌리는 일이 기도의 힘입니다. 이것을 기복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복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런 노력 없이 소원이 이뤄지기 바라는 심보가 문제지요. 사리암 영험담은 모두 기도한 사람이 기울인 정성과 노력의 결과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복이 아닙니다. 정련 스님도 매일 밤잠 안 자고 기도하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결국 성취를 보게 됐고요.”

사리암에 전해지는 영험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복이 아니라, 기도한 사람이 기울인 정성과 노력의 결과다.

 

어떤 이름이든 기도하는 마음은 하나

일진 스님은 불교는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소원을 이뤄주는 종교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불교는 원력과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자신이 원을 세운 만큼 복을 성취하는 종교이며, 불보살은 절대자가 아니라 어떤 길이 바른길인지 안내하는 안내자다. 나한신앙도 마찬가지다. 나한은 ‘은공’, 즉 공양에 응할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성불해서 더 이상의 번뇌나 결핍이 없는 상태다. 나한이 먼저 경험한 복된 길을 중생에게 안내하고 중생은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나한신앙의 올바른 형태다. 불교를 기복신앙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을 보면 포교를 잘못한 결과인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는 일진 스님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정성 들여 기도드리면 부처님이 원을 이뤄주신다고 믿고 사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믿음 없이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그 마음도 참 소중합니다. 이를 기복이라며 부정적으로 보고 깎아내리기만 하는 것은 불자들의 직무유기예요. 복을 비는 순수한 마음에는 충분히 공감하되 기도의 본질과 방향성을 잘 설명해주고 이해시킬 의무가 우리한테 있는 거지요.”

일진 스님은 나한신앙 역시 신도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바른 기도의 마음을 제대로 일러주는 방향으로 계승되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운문사는 오백나한과 사리암의 역사 덕에 특별히 나한신앙 도량으로 알려졌지만, 나한기도이든 관음기도이든 다른 어떤 불보살 기도이든 분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일진 스님 생각이다. 

“저도 어쩌다 일진이란 이름을 붙여서 일진이 됐을 뿐 얼마든지 다른 이름이었을 수 있습니다. 나한, 지장, 관음 등 기도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요. 사람들은 각자 필요에 따라 기도의 이름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성질 급해서 소원을 빨리 성취해야 해’ 하면 나한기도, ‘난 편안하게 잘 살고 싶어’ 하면 관세음기도, ‘난 이제 죽을 때가 가까워졌어’ 하면 지장기도를 드리는 식으로요. 어떤 이름의 기도라도 좋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같다는 사실을 알면 올바른 기도가 될 거예요.”

운문사 사리암 나반존자.

 

회향으로 이어지는 기도

마지막으로 일진 스님은 어떤 기도든 기도의 궁극적 목적은 회향이 되어야 함을 당부했다. 자신이 수행해서 쌓은 공덕, 자신이 기도해서 겪은 복을 필요한 곳에 나누고 이웃과 함께 가겠다는 마음, 쌀이 없는 사람에게 쌀을 주고 외로운 사람은 외롭지 않게 해줌으로써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함께 하려는 마음. 이것이 일진 스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기복이자 기도다.

“지금은 특히 옆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두가 함께 가야 하는 코로나 시대잖아요. 지금도 피해 줄까 봐 서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요. 중생이 부처고 네가 곧 나고 열반도 생사도 하나라고 우리 불교에서 얼마나 입버릇처럼 말해왔습니까. 이게 현실이 된 거예요. 이럴 때일수록 불교에서 말하는 기도의 힘, 종국엔 회향으로 이어지는 기복의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서로 도울 수 있으면 도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살면 지금의 어려운 상황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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