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을 두 번째 뵈었던 건 봄꽃이 만개한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약속 시간을 30여 분 앞두고 학림사에 들기 전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도로변에 섰다. 이른 아침부터 고속도로를 달린 자동차를 멈추고, 계룡산 골짜기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던 중 큰스님께서 언덕 아래부터 올라오고 계셨다.
함께 간 동료와 큰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처음 뵈었던 스님은 엄숙한 분위기에 지금까지 만나온 다른 스님들과는 달리 다가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날 큰스님은 길가를 하얗게 수놓은 벚꽃처럼 미소 지으시며 우리를 향해 합장하셨다.
학림사 오등선원은 용맹정진의 가풍으로 이름난 곳이다. 선원의 조실 대원 큰스님은 그 가풍만큼이나 형형한 눈빛을 가지고 계셨다. 법석에서, 그리고 선방에서만큼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날카로울 정도로 엄격하다. 하지만 큰스님의 미소는 뜻밖에 따뜻했다.
올해로 세수 여든, 하지만 지금도 수행자, 재가자 경계 없이 수행을 지도하고 계시다. 큰스님께서 주장자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망념에 오염되어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삶을 사는 대중들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날 발견한 큰스님의 미소는 대중을 향한 자비의 다른 표현 아니었을까?
큰스님의 원고를 처음 받아보았을 때가 떠오른다.
원고 초반에 자리한 큰스님의 수행기는 참 희유(稀有)했다. 그 어려운 시절, 어린 나이에 출가해 5년간 일념과 믿음으로 공양주 생활을 군말 없이 해낸 일화는 물론 효봉, 동산, 고암, 경봉, 전강, 향곡, 성철, 구산, 월산 스님 등 가히 선지식이라 불리는 고승들과의 문답을 마주하며 참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법거량의 기록이 지금은 쉽게 얻어듣기 힘든 것이란 이유로 발동한 흥미 때문만은 아니다. 선문답을 통하여 단박에 드러나는 깨우침의 생생한 과정 속에 수행자의 용맹함을 발견하는 순간, 기록은 하나의 법문이 된다. 깨우침에 대한 간절한 염원, 반드시 이루리라는 절차탁마의 태도, 스승에 대한 믿음이 녹아 우리에게 분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또한 분량 다수를 차지하는 큰스님의 법어‧법문은 고통받는 중생들이 자신의 본래면목을 깨우치도록 하여 대자유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원력이 담겨 있다. 그 원력은 푸른빛이 형형한 칼날이 되어 한순간 걸림 없이 캄캄한 어둠에 가려진 우리의 마음 앞뒤를 단박에 끊어낸다.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고 다 갖추고’ 있지만 ‘병들고 어리석어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어깨 위로 내리꽂히는 죽비 같다.
“모든 사람이 맑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의 에너지 기운을 밖으로 드러낼 때 천하 만인이 다 좋아하게 됩니다.” _ 본문 중에서
평생 구도의 길을 걸어온 큰스님의 치열하고 올곧은 수행 여정과 지혜의 가르침이 모인 이 책은 페이지, 페이지마다 스스로 마음을 밝히고 세상을 밝히라는 깨우침의 길이 펼쳐진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지난한 길 위에 일구월심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려는 큰스님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