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이해능력AI 특이점
인공지능의 여러 영역 중 ‘자연언어이해(Natural Language Understanding)’는 로봇이 인간의 일상적 대화를 이해하여 제대로 명령을 수행하게 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다. 이는 오늘날 AI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오랜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필자가 워싱턴 대학에서 어떻게 하면 컴퓨터가 인류의 말을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번역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던 시절만 해도 이 기능은 로봇들에게 특히나 까다로운 도전이었다. 그래서 이번 생애에 그 AI 특이점을 목격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견은 빗나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디버타(DeBERTA) AI 모델은 올해 1월, 슈퍼글루(SuperGLUE) 테스트에서 드디어 인간 기준점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아 AI 특이점을 통과했다. 슈퍼글루 테스트란 언어 이해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표준 벤치마크(Benchmark, 비교평가) 시험이다. 가령, “아이가 병에 면역이 됐다”는 전제와 “이러한 원인이 무엇인가”는 질문에 디버타 AI 모델은 1)“병에 노출을 피했다” 2)“병의 백신을 맞았다”는 두 개의 가능한 원인 중에서 정답을 골라야 한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간단한 질문이다. 인간은 배경 정보를 가지고 있고 상황에 맞는 것들을 연결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I에게는 상당히 난해한 질문이다. AI 모델이 이 질문에 정확하게 답하기 위해서는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머지않아 인류는 빅데이터로 예측 가능한 세상일들을 처리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언어를 사용해 로봇과 대화 나누고, 인공지능 개인 비서를 두어 일을 처리할 것이다. 이로부터 얻은 잉여시간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충분히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AI로 절약된 시간이 인류 영성 진화에 쓰여 미래 인류의 번영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그 시간이 헛되이 낭비되어 인류 멸망을 초래하느냐? 인류는 곧, 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변곡점)에 서게 된다. 인류의 보편적 영성지능 향상 없이는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영성지능을 향상해 개인의 행복을 누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성을 서로 나눠 앞으로 다가올 인류 영성 혁명의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영성과 행복지수는 서로 비례한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항상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 반면, 영성지능은 행복지수와 서로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인의 의식 지도(Reality, Spirituality and Modern Man)』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는 현대 사회에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는 영성의 길을 제시하는 학자로 유명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붓다가 탄생할 당시 인류의 보편적 영성지능은 대략 90정도였고, 그로부터 수 세기 동안 190까지 점진적으로 올랐다가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임계치인 200을 넘어 204로, 2007년에는 207로 껑충 뛰어올랐다. 현재 인류의 약 15%만이 임계 의식 수준인 200 이상으로 분류된다. 영성지능이 500인 한 명의 사람이 영성지능이 200인 1,000만 명의 사람과 무게 균형을 이룬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영성지도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한국인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걸고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이다. 그의 영성지능은 510으로 기록됐다. 이미 100여 년 전, 산업혁명 초반에 시대의 흐름을 읽고 일제하의 암울한 대한민국 태동기에 인류의 영성 진화를 주도했던 그는 세기의 영성지도자였던 것이다.
영성세계 모델의 앎, 스스로 ‘아는 놈’
한 개인의 영성지능 향상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첫걸음은 물질세계 모델에서 영성세계 모델로의 인식 전환이다. 세상을 물질세계 모델로 인식하며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에게 영성세계 모델은 처음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세상을 체험하는 모델로서는 꿈의 세상과 생시의 세상을 같은 모델로 일관되게 인식할 수 있는 영성세계 모델이 더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물질세계에는 먼저 시공간(時空間)의 세상이 있고, 그 세상에 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세상을 살다가 늙어서 세상을 떠난다. 빅뱅(Big Bang)으로 인해 물질로 만들어진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생겨나고, 그 산하대지 안에 몸이 생겨나고, 그 몸 안에 마음이 생겨나고, 몸과 마음이 산하대지 만물(萬物)을 경험한다.
영성세계에는 본래 영원(永遠)과 무한(無限)의 앎(Awareness, 佛性)이 있고, 그 앎의 작용으로써 경험이 일어나고, 그 경험을 통해 세상이라는 상(想)이 만들어진다. 생각으로 말미암아 시간이 생겨나고, 감각으로 말미암아 공간이 생겨나고, 산하대지와 몸(Body)과 마음(Mind, Ego)의 경험이 한 통으로 일어난다. 여기서 ‘앎’은 스스로의 작용으로 일어난 경험을 스스로 ‘아는 놈’이다.
‘앎’이란 무엇인가? 삶(Life)은 생각, 감정, 오감의 경험 연속이고, 앎은 그 경험을 ‘아는 놈’이다. 앎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알며, 몸의 감각을 아는 놈이다. 앎은 아는 것을 알며, 스스로 모든 경험에 편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놈이다.
앎은 또한 ‘그냥 아는’ 경험이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절대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는, 늙거나 닳지 않는 유일한 경험이다. 어떤 대상이 될 수 없는 그저 ‘아는 경험’이다. 그렇게 생각하거나 믿는 것이 아닌 ‘그냥 아는’ 경험이다.
그러므로 앎은 한 물건으로서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며, 그러면서도 동시에 부인할 수도 없는 경험적 요소이다. 지금 여기서 그 존재성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앎은 ‘스스로 아는 놈’이다.
불이명상, 세간에서 출세간으로
명상은 삶의 무게 중심을 ‘경험을 하는 영역’에서 ‘경험을 보는 영역’으로 옮기는 일이다. 명상을 수학의 공식인 ‘f(x)’로 표현해보자.
‘f’는 함수이고, ‘x’는 변수다. 가령 ‘f’가 컵이라면, ‘x’는 소주이다. 그러면 f(x)는 소주잔이 된다. 소주잔에는 소주의 삶도 있고, 컵의 삶도 있을 수 있다. 삶의 무게중심이 소주에 있을 때는 건배 후 사라지는 소주, 즉 생멸의 삶이 되고, 삶의 무게중심이 컵에 있을 때는 건배 후에도 항상 변치 않는 컵, 즉 불생불멸의 삶이 된다. 명상은 결국 삶의 무게중심을 이동시켜준다. ‘소주의 영역’에서 ‘컵의 영역’으로.
‘경험을 하는’ 영역은 수레바퀴 안에서 같이 돌아가는 삶이고, ‘경험을 보는’ 영역은 수레바퀴 밖에서 보는 평상심의 삶이다. 수레바퀴가 분주하게 돌아가도, 평상심으로 그저 보는 삶이다. 꿈, 생시, 과거, 현재, 미래의 여러 세간(世間, 세상 일반)의 삶들이 출세간(出世間, 세속의 번뇌를 떠난 깨달음의 경지)에서는 한 통으로 일어나고 통으로 사라진다. 시공간의 물질 세간에서는 내가 몸과 마음이라는 주체와 동일시되어 산하대지만물을 대상으로 직접 경험하지만, 불이(不二)의 영성 출세간에서는 내가 앎이 되어 세간의 주・객체가 한 통으로 드러나고 사라지는 경험을 본다. 앎은 스스로의 작용인 경험을 알아차림으로써 마침내 불이에 이른다.
이제 f(f(x))로 표현되는 ‘불이’를 직접 체험해 보자.
1) 앞에 있는 꽃으로 눈빛을 비추어(주의를 기울여) 꽃이라고 알아차린다.
2) 꽃이라고 ‘아는 놈’에게 눈빛을 비춘다(주의를 기울인다).
3) 그 ‘아는 놈’을 알아차린다(Being aware of being aware).
좀 어색하다. 태양이 지구나 달은 비추긴 쉬워도, 자기 자신인 태양은 비추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요령이 있다. 밖으로 향하는 눈빛(주의)을 안으로 비춘다(거두어들인다). 흡사 거북이가 팔다리를 자기 집 안으로 오므려 넣듯이, 우리의 주의(빛)를 원래 자리로 거두어들인다. 그러면 대상과 주체의 경계가 사라져 불이에 이른다. 태양은 비추지 않아도 그 어떤 것보다 스스로 밝다. 우리 앎도 태양처럼 비추지 않아도 스스로 밝다.
필자는 20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와 영어가 서툴러 대학 강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에서 생활한 시간이 고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훨씬 많아지자, 옛날에 그렇게 친숙하던 것들이 어색해지고, 옛날에 그렇게 어색하던 것들이 친숙해졌다.
명상은 떠나지 않은 고향
피안으로 가는 길입니다.
명상은 우리에게
낯설은 고향에 데려가
익숙하게 하며,
익숙한 자신을 멀리하여
낯설게 합니다.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으로부터
더 자유로워집니다.
_킴킴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영성적인 어록을 남겼다. “한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에 달려있다.” 그도 떠난 적이 없는 고향에 이미 다다랐음이 틀림없다.
處處 킴킴(Kim Kim)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사 CLOUD+AI 국제화 소프트웨어 기획설계자. 미국 라디오코리아(RadioKorea)에서 ‘킴킴이 들려주는 빅데이터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 방장 지유 선사로부터 법명 ‘처처(處處)’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