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彌勒] 500살에 결혼하고 범죄 1도 없는 세상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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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彌勒] 500살에 결혼하고 범죄 1도 없는 세상 좋지 아니한가?
  • 조성금
  • 승인 2021.04.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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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담긴 염원

선업 보다 죄업을 쌓기 쉬운 중생들은 현재의 삶이 풍요롭고 만족스럽다면, 자신을 신에 비유하며 영원할 것이라 자만한다. 그러나 반대로 현실이 가난과 질병 그리고 전쟁으로 절망에 다다르게 되면, 인간들의 삶에 대한 태도는 포기와 희망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 무분별한 자원의 이용으로 인한 급격한 환경파괴, 고대 사회의 천연두에 비견할 코로나, 인종차별, 인간성의 상실, 소통의 부재, 범죄, 빈부격차,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세대 등 매스컴에서 안타깝고 두려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과연 인류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인간은 오만한 포식자였나?’하고 반성과 자책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극한의 순간 우리는 포기와 순응보다는 작은 희망에 희망을 보태어 새로운 삶을 가꾸려고 노력하며, 우리를 구원해줄 미륵의 세상을 기다린다.

우리는 왜 미륵을 기다릴까? ‘미륵’을 미륵여래, 미륵부처님, 미륵보살, 미륵불, 자씨보살(慈氏菩薩), 마이트레야(Maitreya) 등으로 부르며, 기독교의 메시아보다 훨씬 먼저 나타난 구원자라고 한다. 미륵은 붓다 재세 시기의 실존 인물인 메떼야(Metteya)라는 붓다의 제자로서, 붓다의 교화를 받고 이후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각 미륵은 선업을 많이 쌓은 불자가 생을 마치면 갈 수 있다는 도솔천(兜率天)의 도솔천궁에 보살의 모습으로 나투어 천인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다. 그리고 붓다 입멸 후 56억 7,000만 년이 지난 뒤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고 3차례의 설법으로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龍華三會]. 그래서 도솔천에서의 미륵은 보살의 모습이며, 이 땅에 하생해 용화수 나무 아래에서 성불해야 붓다의 모습으로 나툴 수 있다.

그림 1. <미륵상생경변상도>, 문수산(文殊山) 만불동(萬佛洞), 벽화 모사도, 서하(西夏) 12~13세기, 254×315cm.

 

그곳엔 하늘에서 꽃과 진주가 내린다

미륵의 정토인 도솔천의 모습에 관해서는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이하 상생경으로 약칭)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다. 『상생경』은 유송(劉宋) 시대에 저거경성(沮渠京聲)이 오늘날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투르판(吐魯番, 高昌)에서 가져와 455년에 종산(鍾山)의 죽원사(竹園寺)와 정림상사(定林上寺)에서 번역했단다.

『상생경』은 투르판이 편찬지라고 알려져 있다. 도솔천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유리 개울과 옥처럼 고운 천녀들의 노랫소리가 가득한 곳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비로운 도솔천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미륵이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는 방법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상생경』에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그 방법은 “중생들이 그들의 나쁜 업을 깨끗이 소멸하고,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도솔천을 생각하고, 계를 생각하고, 보시를 생각하는 육사법을 행한다면, 반드시 도솔천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날 것이다”라고 한다.

육사법을 실천했어도 지금 당장 생을 마치고 도솔천에 갈 수 없는 이들이 많다. 도솔천의 모습을 서하(西夏) 시기인 12~13세기에 그려진 문수산(文殊山) 만불동(萬佛洞)의 <미륵상생경변상도>(그림 1)를 통해서 미리 엿보고자 한다. 

『상생경』의 내용을 자세히 묘사한 이 그림은 화면 아래에서부터 위의 방향으로 경전의 내용을 순서대로 그리고 있다. 그림의 맨 아래 중앙에 큰 하늘 신 뇌도발제의 이마에서 500억의 보배 구슬이 쏟아져 나와 허공을 돌면서 49겹으로 된 미묘한 보배 궁전을 만드는데, 이때 500만 억의 천인들이 전단마니보배로 된 천관(天冠)을 바쳐서 미륵에게 도솔천궁을 만들어 공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 장면은 도솔천 내원궁(內院宮)에 있는 하늘 신 다섯이 갑옷을 입고 구름 위에서 도솔천궁을 장식하고 있다. 첫 번째 신 보당(寶幢)은 몸에서 일곱 가지 보배를 비처럼 내려 궁전 담 안에 뿌려 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며, 두 번째 신 화덕(華德)은 몸으로 온갖 꽃을 비로 내려 궁전의 담 위를 가득히 덮고 있다. 세 번째 신 향음(香音)은 몸의 털구멍에서 미묘한 전단향을 뿜어내 궁전을 7겹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네 번째 신 희락(喜樂)은 여의주를 비처럼 내리고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신 정음성(正音聲)은 온 털구멍으로 맑은 물을 뿜어내 물방울에서 옥녀들이 태어나 여러 가지 악기를 들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춤을 추고 있다. 화면의 맨 위 찬란한 유리 개울 너머에 지어진 장막 안에는 칠보대 위의 사자좌에 화생한 미륵보살이 가부좌하고 앉아 도솔천궁의 모든 이들을 위해 설법을 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았듯이 미륵보살이 있는 도솔천은 맑은 유리 개울과 하늘에서 꽃과 진주가 내리는 곳으로, 아름다운 옥녀들이 연주하는 곡이 울려 퍼지는 진정한 하늘의 세계를 장황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곳엔 근심 걱정과 질병이 없더라

위의 <미륵상생경변상도>가 죽음 뒤의 내세관을 투영한 그림이라면, <미륵하생경변상도>는 매우 현실적인 현세구복의 신앙을 표현한 그림이라 하겠다. 붓다 열반 후 56억 7,000만 년이 지난 뒤 사바세계에 내려온 미륵이 만들 세상은 3세기경에 성립된 『불설미륵하생경』(이하 하생경으로 약칭)을 그림으로 도해(圖解, 글 내용을 그림으로 풀이)한 것이다. 

중당 시기(781~848)에 그려진 돈황(敦煌) 유림굴(楡林窟) 25굴의 <미륵하생경변상도>(그림 2)는 미륵이 출현한 풍족하고 안락한 세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보여준다. 미륵이 내려올 시두(翅頭)성은 그 동서가 12유순(1유순=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로 대략 12km) 이고, 남북이 7유순인 토지가 비옥한 땅이다. 화면 오른쪽 위 장면은 시두성 안에 수광(水光)이란 용왕과 엽화(葉華)라는 나찰(羅刹)의 모습을 그렸다. 그림에서 용왕은 밤이면 향비로 깨끗이 청소해 낮을 맑고 청명하게 만들고, 엽화는 매일 잠든 백성의 더럽고 부정한 것을 제거하며 항상 향이 나는 액을 땅에 뿌린다. 그리고 염부제(閻浮提)는 곡식이 풍부하고 백성들은 값진 보물이 많아서 서로 가지려 하지 않는다. 또 마을끼리 서로 가까이 사이좋게 지내서 닭 울음소리가 마주 들리며, 나쁜 꽃이나 과일나무의 시들고 더러운 것도 저절로 소멸하는 반면에 향기롭고 좋은 것만이 땅에 자라난다고 한다. 

화면의 오른쪽 중간에는 건물 안에 노인이 자식들의 절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 이 그림은 사람들의 수명이 매우 길고 아무런 근심 걱정과 질병이 없어 모두 8만 4,000살의 수명을 누리다 슬프지 않게 이별하며, 여인은 나이 500살이 된 뒤에야 시집을 간다는 경전의 내용을 도해하고 있다. 그 밖에도 너무나 풍요로워서 땅에 떨어진 어떤 값진 보물도 탐내지 않으며, 칠보와 보물이 넘쳐나는 보배창고, 한 해에 7번 수확하는 장면 등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이상적인 풍경을 모두 담고 있다. 

그림 2. <미륵하생경변상도>, 돈황(敦煌) 유림굴(楡林窟) 25굴, 벽화, 중당(中唐) 781~848. 

 

살아있는 동안 받는 복을 바라다

미륵에 대한 염원과 신앙은 그림으로 그 시대를 대변하며 변화해 왔는데, 미륵 관련 불화를 살펴보면 수대(隋代, 581~618)에는 도솔천의 미륵 정토를 그린 <미륵상생경변상도>만 돈황석굴(敦煌石窟) 417굴·419굴·423굴·433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수대 말기부터 미륵상생과 미륵하생을 한 화면에 표현하기 시작했지만, 초당(初唐, 618~712) 시기 329굴의 사례처럼 미륵상생도상에 비해서 하단의 미륵하생도상이 점점 더 큰 면적을 차지한다. 그리고 중당(中唐, 766~835)과 만당(晩唐, 836~907) 시기에 이르면 <미륵상생경변상도>는 간략히 표시만 되거나 <미륵하생경변상도>만을 묘사한다. 즉 현존하는 벽화를 살펴보면 미륵삼부경의 성립순서인 『하생경』-『성불경』-『상생경』의 반대 순서로 출현한 것으로 보아서, 고대인들이 초반에는 안락한 내세를 꿈꾸었으나, 당시 안사의 난과 통치체제의 붕괴 등을 겪으며 결국 현세구복을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고려불화에 <미륵상생경변상도>는 존재하지 않아서 도솔천 정경에 투영된 고려인들의 내세관은 알 수 없으나, 『하생경』의 내용을 도해한 <미륵하생경변상도>가 3점 현존하고 있다. 고려 14세기 일본 지은원(知恩院) 소장본 및 1350년 일본 친왕원(親王院) 소장본은 서로 거의 같은 화면구성이며, 1294년 일본 묘만지(妙滿寺) 소장본은 하단에 왕생자들을 태우고 극락으로 향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 첨가되었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짐작하건대 고려는 아미타여래에 대한 신앙과 내세관이 매우 강했던 시기로서, 미륵보살이 주처(住處)하는 상생신앙은 정착 혹은 유행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은원본과 친왕원본이 같은 화면구성을 가지는 이유는 기년명(제작 연호·연대를 밝힌 글)이 없는 지은원본이 1350년에 제작된 친왕원본과 불화의 밑그림이 되는 초본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고려 1294년에 제작된 <미륵하생경변상도>(그림 3)의 화면구성은 중앙에 가장 큰 의좌상의 미륵삼존을 중심으로 주위에 제석천, 범천, 10대 제자, 12신장 등을 나누어 배치했다. 또한 미륵삼존 아래에는 미륵에게 귀의하고 머리카락을 깎는 왕족들이 표현되어 있다. 묘만지본에는 이들의 옆에 금니로 각각 ‘자씨부 수범마(慈氏父 修梵摩)’, ‘자씨모 범마월(慈氏母 梵摩越)’이라 기록하여 미륵의 부모임을 밝히고 있어, 지은원본과 친왕원본에서도 머리카락을 깎는 인물들이 미륵의 부모를 그린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미륵불이 하생할 시두성의 생활상을 묘사했는데, 화려한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들, 한 번 씨를 뿌려 일곱 번 추수하는 풍족한 추수 장면, 칠보가 떨어져 흩어져 있어도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 모습 등 경전에 묘사된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 3. <미륵하생경변상도>, 고려 1294, 비단에 채색, 227.2×129cm, 일본 묘만지 소장.

고려의 <미륵하생경변상도>가 『하생경』의 내용을 잘 반영한 것처럼, 만약에 <미륵상생경변상도>가 고려에서 그려졌다면 역시 『상생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충실히 도해했을 것이다. 

아직 생을 다하지 않은 우리가 <미륵상생경변상도>에서 엿본 도솔천은 어려운 육사법을 행해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도솔천에는 아름다운 유리 개울이 흐르고 500억 천녀들의 아름다운 악기연주와 노랫소리가 가득한 깨끗하고 향긋한 천상의 세계였다. 그런데 무언가 너무 단조로워서 ‘아름다운 곳’ 혹은 ‘평안한 곳’ 이상의 사념이나 내세에 꼭 가고 싶다는 의지는 들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의 나는 이 세상에 몸을 담고 있어서인지, 이 땅의 중생들 모두가 미륵의 3번 설법으로 아라한을 얻어 붓다의 제자가 되어 누리는 <미륵하생경변상도> 속의 그림과 같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질병이 없어서 아픈 병자가 없는 세상, 땅에 금은보화가 떨어져 있어도 누구도 주우려 하지 않는 세상, 잠들어 있을 때 용왕과 나찰이 곳곳을 향기롭게 청소해주는 세상, 땅이 비옥하여 1년에 7번 추수할 수 있는 세상, 8만 4,000살의 수명을 누리는 세상, 여인은 500살이 되어야 출가하는 세상,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 세상, 더럽고 나쁜 것은 저절로 소멸하는 세상….

지금 2021년 이 땅의 모두는 이러한 미륵의 세상을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것이다. 천 년 전 미륵하생의 세상을 그림으로 그렸던 선조들은 혹독한 현실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 구원해주러 올 미륵을 기다리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이상향을 그렸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선조들 앞에서 지금의 어려움에 포기와 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힘으로 미륵하생 세상을 만들겠다는 서원을 올린다면, 틀림없이 미륵은 수기를 내릴 거라 믿는다. 

 

조성금
중앙아시아 불교회화 연구자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천산 위구르 왕국의 불교회화 연구」로 박사를 마쳤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등에서 불교미술 및 미술교섭사를 강의하며, 불교회화 도상의 기원과 도상학을 주로 연구 중이다. 저서로 『실크로드의 대제국 천산 위구르왕국의 불교회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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