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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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헌책방
  • 관리자
  • 승인 2007.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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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구름처럼

어제 저녁에는 독립문 영천시장 안에 있는 단골 헌책방에 들렀다가 헌책 열여덜 권을 골라왔습니다. 값은 기껏해야 권당 천 원에서 천오백 원입니다. 특별히 몇몇 좋은 책은 값이 따로 있습니다.
단골로 자주 들르느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버스 정류소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교통이 좋고 헌책 값이 싸며 새로 들어오는 헌책이 자주 있어서 더러 보물을 건져내는 경우가 잇기 때문입니다.
현평 가량 되는 좁은 방 안에 헌책방에서 구해와서 쌓아두고 있는 책이 여든 권쯤 되는데 이 가운데 몇몇 귀한 책이 있습니다.
어제 구입해 온 식물대보감(植物大寶鑑)은 상․하 두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밤새 이 책을 넘겨보다가 잠에 떨어져서 옆에 끼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식물대보감을 넘겨보다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식물이 있을 경우에는 천연색 사진과 긴 설명이 있는 ‘시와 만나는 100종 들꽃 이야기’와 ‘시와 만나는 77종 나무 이야기’ 책을 펼칩니다.
붓꽃 이름은 조계산 불일암(佛日庵)으로 올라가는 길 한켠에 핀 꽃을 가르키며 불임암 스님이 일러 주셔서 진작부터 알고 있는 꽃입니다.
“보통 창보라고 하지. 이 꽃 이름이 무엇인 줄 알어?”
“….”
내가 대답이 없자 스님이,
“붓꽃이라고 해. 붓꽃이야.” 하고 일러주신 기억이 새롭습니다. 대식물도감에 따르면, 붓꽃은 창포보다 키가 훨씬 커서 60㎝가량 자라고 꽃과 잎줄기는 보다 가늘고 긴 편입니다.
붓꽃이 피는 때는 오뉴월입니다. 불일암으로 올라가는 양지바른 늪지에 핀 붓꽃은 푸른빛이 감도는 자주빛으로 언제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사람의 영혼에서 색깔이 있다면 저런 붓꽃과 같은 깨끗한 색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번은 송광사 큰절 농막 일꾼 처사가 소 꼴을 벨 때에 이 붓꽃더미를 잔디밭 깎듯이 싹둑 밀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뒤로 불일암 스님은 붓꽃이 싹둑 베인 자리를 지나치실 때에 잠시 눈여겨 보시고,
“사람들이 눈여겨 보면 알텐데, 무참하게 베어버리는구만.”
혹은
“아, 그 사람들이 내가 장 보러 갈때에 미리 일러 놔도 잊어먹어 버린다니깐.”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꽃이 한참 곱게 피어있는 모습도 일꾼 처사의 눈에는 한갓 소꼴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 일꾼 같은 무지(無知)는 병 중의 큰 병입니다.
불일암 스님이 해저물녘에 숲 속에서 나는 새소리를 들으시고,
“저건 무슨 새울음소리인 줄 알아? 잘 들어 봐.”하시고는 내가 대답이 없자,
“머슴새 울음소리야. 소 물고 가는일꾼이 쯧쯧쯧 하는 소리와 같지 않아?”하시고 설명하신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벌써 수십 년 지난 일인데도 말입니다.
내가 지금 식물대보감을 열심히 보고 있는 인연은 아마 불일암 스님의 영향 탓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어른스님을 곁에서 잠시나마 모신 인연이 이렇게 음으로 양으로 내 자신을 이뤄가고 있는 모양이지요.
붓꽃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줄을 알았습니다. 이 가운데 각시붓꽃이 아름답기로는 으뜸입니다. 노란 꽃밥이 애교스럽게 삐죽 내뻗친 모습이 빼어났습니다.
새 울음소리와 관련해서 새의 모습이 어떠한지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공작과 같이 빛깔이 곱고 멋진 모양의 새일수록 새울음소리는 별로 곱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복이 각각 나눠져 있는 편이라고나 할까요.
단골 헌책방에서 구입해 온 책 가운데 귀한 책이 많습니다. 여름 내내 세계사 공부에 열이 붙게 한 학습만화세계사(제20권)는 지금도 책상 좌우에 놔두고 일고 있는 책입니다.
용악집(龍岳集)은 나의 4대조 노스님이 되신 용악 큰스님의 문집입니다. 통도사 구하(九河) 큰스님이 한문으로 직접 써서 엮은 책인데 이제 한글로 번역이 되어 나와서 헌책방에서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용악집의 한문 원본 영인본이 내게 있는 만큼 참으로 반갑기 짝이 없는 책입니다.
어떻게 4대조 노스님이 되시는가하면, 용악(龍岳)-석두(石頭)-효봉(曉峰)-은사이신 법흥(法興)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근세 청정하고 고고하기로 널리 알려진 전설 같은 어르신을 모시게 된 인연도 큰 인연 같습니다.
끝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된 후학의 한사람으로 헌책방에서 용악집을 보는 순간 노스님을 뵌 듯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삼보종찰(三寶宗刹) 가운데 통도사와 송광사는 한 문중이나 다름없는, 마치 자매결연을 맺은 인연과 비슷한 사연이 있습니다.
통도사 전 조실이셨던 구하 큰스님이 용악 큰스님의 학덕을 흠모하여 건당(建堂) 입실(入室)하였던 때가 대략 백년 전의 일입니다.
그 뒤로 용악집을 손수 엮어서 쓰신 서문에서 그 간절한 흠모의 정이 글자 한자 한자에 배어나올 듯 느껴집니다.
용악 큰스님의 출가 본사는 관북 설봉산(雪峰山) 석왕산(釋王寺)입니다. 서까래 셋을 진 이성계의 꿈을 임금왕(王) 자로 해몽한 무학(無學) 대사의 처소로 유망한 절입니다.
벽송(碧松) 토굴에서 금강경을 십만 번쯤 독경하실 때의 일입니다. 금강경을 독경하고 있는 순간 치아사리(齒牙舍利) 하나가 입으로 나왔으나 이를 주위 사람이 알까 모르게 송대(松臺) 위 바위틈에 놓아둔 적이 있으셨습니다.
또 신기한 꿈을 꾼 적이 있어 전생인연있는 일을 밝히기도 하셨습니다.
어느날 꿈이었습니다. 생전 가보지도 듣지도 아니한 오산(梧山) 수암사(水巖寺)란 절에서 석 잔의 맑은 차공양을 받아 마신 꿈을꾸셨습니다. 나중에 한 객승(客僧)의 증언으로, 과연 오산 수암사가 확실히 있다는 말을 들으셨고 그 뒤에 그날이 수암사 절 중 창주 스님의 추모재일인 줄을 확인하셨습니다. 수암사 중창주 스님은 살아생전에 부처님 경전을 찍어 보급하는 인경불사(印經佛事)를 발원하셨다고 하는 말도 전해들으셨습니다.
그 뒤로 예순여섯 살에 남족으로 발길을 옮겨 통도사에서 주석하고 계셨을때의 일입니다.
이듬해 해인사 팔만대장경 인경불사(印經佛事)를 발원하고 백일 기도를 드리는 도중이었습니다. 70일만에 통도사 법당 옆 샘에서 금개구리가 나왔습니다.다시 해인사 장경각에서 백일 기도를 디리던 도중에 홀연히 두 복행신장(腹行柛將)이 나타나는 서상(瑞相)을 보시고 계속해서 세 차례 이런 길상사를 꿈구셨습니다.
기도 영험은 마침내 왔습니다. 무술월에 왕궁에서 윤지(允旨)가 내려 팔만대장경 네 질을 인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에 구하 큰스님도 해인사 장경인출을 돕고 장경각 안에서 향을 사르고 예경을 올리셨다고 합니다.
대작불사로 이뤄진 대장경의 세 질은 삼보종찰에 나눠 모시고 나머지 한질은 강의하신 스님께 나눠 보시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말련에는 통도사 장경전에서 금강경을 독경하시는 일을 일상 공부로 삼으시다가 열반에 드시기 3년 전에 가실 날을 미리 말씀하셨는지 과연 3년 후 부처님이 입적하신 2월 15일에 입적하셨다고 합니다.
이 용악집은 큰스님이 읊으신 게송과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간단한 글귀가 대부분입니다.
전둥제자(傳燈弟子) 구하 큰스님이 정성껏 모아 책으로 엮어 송경당(誦經堂)에 남겨 전한다는 내용이 서문에 나와 있습니다.
용악집을 넘기면서 용악 큰스님을 흠모하신 구하 큰스님의 정성에 머리가 절로 숙여집니다. 또한 한글로 번역하여 책을 내신 여러 스님네(石鼎 화상 苦成 화상 知玄 화상 然觀 화상)의 노력에 한편 감사하고 한편 부끄럽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헌책방에서 이 귀한 책이 내 손 안에 들어왔는지 생각만 해도 놀랍고 기쁠따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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