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에 들를 때마다 석전 황욱이 쓴 ‘智異山 大華嚴寺’ 산문 현판의 ‘大’ 자가 걸리곤 했다. 화엄사는 태백산 부석사, 가야산 해인사 등과 더불어 ‘화엄십찰(華嚴十刹)’로 불리던 큰 절일뿐더러, 국보와 보물 등 이름난 성보들이 가득한 도량이다. 이런 대가람이 뭐가 부족해 굳이 ‘대’ 자를 넣는가. 연기조사 이래 언제부터였는가. 이 어른들이 지리산의 품과 가람의 크기로 ‘대’를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1584년, 부휴 스님은 화엄사에서 『화엄경』을 강설했다. 스님의 『화엄경』 강설은 꾸준하게 이어지며 이름이 높았는지 많은 스님이 찾아와 귀의했다는 내용이 전해온다. 1611년 유몽인이 영원사에서 부휴 스님을 만난 뒤 「유두류산록」에 그 기록을 남겼다.
부휴 스님의 제자인 벽암 각성 스님은 화엄사 스님들의 요청으로 1630년부터 1636년까지 왜란으로 소실된 대웅전과 보제루를 복원하는 1차 불사를 한다. 서산대사의 제자로 화엄사에 머물던 중관 해안 스님은 화엄사 대중의 부탁으로 『호남도구례현지리산대화엄사사적(湖南道求禮縣智異山大華嚴寺事蹟)』을 1차 불사와 함께 완성한다. 지금의 화엄사 연혁 등의 기록은 모두 해안 스님의 사적을 바탕으로 한다.
각성 스님의 뒤를 이은 화엄사 성능 스님은 1699년부터 1702년까지 각황전 조성으로 2차 불사 회향을 한다. 회향 1년 전인 1701년, 각황전 불사를 후원한 숙종은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이던 화엄사를 ‘선교양종대가람(禪敎兩宗大伽藍)’으로 승격시킨다. 부휴 스님의 맥은 각성 스님과 성총 스님 등으로 전해지다 현대에는 용성 스님 문도인 도광·도천 스님 등으로 이어진다.
寂滅堂前多勝景
吉祥峯上絶纖埃
彷徨盡日思前事
薄暮悲風起孝臺
적멸당 앞에는 빼어난 경치가 많고
길상봉 위에는 한 점 티끌도 없어라.
온종일 서성이며 지나간 일 생각하니
저물녘 효대에 슬픈 바람이 일어나네.
- 대각국사 의천
매일 새벽 4시 대웅전 마당에서 시작한 도량석은 법고가 걸린 운고루 옆 대중처소를 지나 공양간으로 향한다. 공양간을 뒤로하고 보제루 계단을 올라 각황전 앞 부처님 전에서 마친다. 지난 2022년 강원이 문을 닫으며 새벽녘 도량에 울리던 독송 소리도, 예불에 참석하는 스님의 수도 줄었으나 도량과 산중을 깨우는 사물의 울림이 줄지는 않았다.
1636년 각성 스님의 1차 복원 불사와 함께 중관 해안 스님이 남긴 『호남도구례현지리산대화엄사사적』을 보며 걸려 있던 ‘대화엄사’의 매듭이 풀리기 시작했다. 연기조사의 화엄 종풍이 원효·의상 스님을 거쳐 부휴·각성·해안에 이르니 만세에 변하지 않는 부처님의 화장 세계가 크고 또 클 수밖에 없다. 부처님을 향한 명초 스님의 축원은 지극하다.
1699년부터 1702년까지, 각황전 불사에는 숙종을 비롯한 숙빈 최씨 등이 시주자로 동참했다. 각황전 내부 단청에는 주상전하·세자저하·왕비전하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각을 받치고 있는 아름드리 기둥은 굵고 단단하다. 가운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 부처님, 왼쪽에 다보 부처님이다. 아미타 부처님 오른쪽에는 관음·지적·보현·문수 보살님 순이다.
매주 토요일 아침 6시 40분경, 아침을 여는 새소리 가운데 스님들의 비질과 발소리가 들린다. 선원에서 출발한 비질은 대웅전과 각황전 마당을 지나 일주문까지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빗자루를 움직이는 스님들의 몸은 가볍고 유연하다. 스님들은 바쁜 비질 속에서도 농담을 나누며 웃곤 한다. 소임자 스님들은 마대를 들고 뒤를 따른다.
석경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화엄계곡의 물과 바위들을 놓칠 수 없어서다. 일주문에서 보제루 마당에 이르는 길은 또 다른 화엄 도량인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르는 길과 비슷하다. 금강문에서 천왕문을 지나 보제루까지 길을 틀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보제루의 돌계단은 선재동자가 미륵보살을 만나기 전 오르는 해탈의 길과 같다. 화엄사 여름은 능소화와 백일홍이 채운다.
도량석이 지난 뒤 공양간의 시간은 다른 곳보다 6배는 빠르게 움직인다. 공양주 보살님을 비롯해 6명이 함께 일을 해서다. 밥을 담는 법운지 최명엽 보살님은 20년 넘게 공양간 일을 돕고 있다. 언젠가 보니 손가락이 휘어 있었다. 그 옆 무루행 김영숙 보살님은 공양주 보살님 부재 시 그 역할을 대행할 만큼 음식에 밝고 빠르다.
교구본사 규모의 절에서 공양간 다음으로 중요한 곳이 작업반이다. 절에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이 절을 보고 빈틈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뒤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손이 있기 때문이다. 화엄사에는 모두 5명이 있다. 반장인 정광 김진홍 님이 그들을 이끈다. 정광 거사는 묻는 말 외에 입을 열지 않는다. 부탁하는 모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글・사진. 유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