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의 발견] 불경의 탄생, 구전에서 경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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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의 발견] 불경의 탄생, 구전에서 경전으로
  • 심재관
  • 승인 2024.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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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문자로 기록하다
베다를 암송할 때 악센트의 강약은 중요하다. 스승이 제자의 발음을 가르치고 있다. 출처 F. Staal. 1983. Agni: The Vedic Ritual of the Fire Altar. 

베다의 암송, 불교의 암송

인도 문명사에서 경이로운 국면의 하나는 바로 구전 전통이다. 가장 초기의 인도 문헌인 『리그베다』가 대략 기원전 1,700년경에 성립된 것이라면 그 이후로 인도 땅에서 처음 문자가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3세기경이다. 그러니까 거의 1,500년 동안 문자 없이 종교적 가르침이 유통됐던 것이다. 그 어떤 문명보다도 강력했던 인도의 구전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베다의 암송 전통은 그 가치가 인정돼 현재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대 인도의 구전 전통은 베다의 암기 전통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데, 베다는 그 자체로 성스러운 언어로 이뤄져서 하나의 음절도 틀리지 않도록 후대에 전승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고대 힌두인들은 나름대로 독특한 기억법 혹은 문장변형(vikṛti)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하나의 문장을 암기하기 위해 그 문장을 이루는 각각의 단어들을 열 가지 방식으로 뒤섞어 암기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바라문들은 베다를 한 음절도 틀리지 않도록 정확히 암기하고자 문장의 단어들을 뒤섞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했다.

이것은 초기 바라문들의 방식이었고, 불교는 다른 암기법을 활용했다. 이러한 암기 방법상의 차이는 불교와 힌두교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언어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문들에게 베다의 언어란 변화해서는 안 되는 신의 언어(apauruseya)였고, 석가모니의 언어는 인간을 위한, 인간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에 따라 다른 언어로 기록, 번역하는 자유를 허용했던 불교의 언어관은 후대의 경전과 수행에 대한 관점을 극적으로 변모시키는 단초를 놓게 된다. 

불교는 이러한 고대 인도의 독특한 문화적 전통 속에서 등장하고 자라난 종교다. 불교가 등장했을 무렵, 인도 땅에는 문자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이끌었던 일련의 경전 결집은 문자를 사용해 경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암기하는 일이었다. 

이 암기를 통해 집성된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잘 알다시피 두 종류인데, 하나는 경(sūtra)이고 또 하나는 율(vinaya)이다. 후대에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는데, 가르침의 목록들(mātṛkā)이 그것이다. 이 마뜨리까는 불멸 후 교리상으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 것들을 리스트로 만든 것이다. 이것도 역시 불교 초기의 암기 전통과 일정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설령 부처님 당시에 문자가 소개됐다고 가정해도 당시에 ‘글을 쓴다’라는 것은 그렇게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불교가 등장했던 인도 사회에서도 전문 지식인들(바라문)은 베다 경전을 매우 엄격한 방법으로 암송하고 있었고, 불교 내에서도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장려할 만한 풍속이 아니었음은 후대의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불교의 암기법 

초기 불교 승려들이 경전을 암송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힌두 바라문들과 같이 극히 정밀한 암기 방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전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부처님 말씀은 기억의 연장을 위해 반복적으로 되풀이해 암기하는 방법을 택했다. 니까야(nikaya)나 아함경(阿含經)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상용구와 반복구가 이를 증명한다. 

물론 불교 승려들 사이에서도 무턱대고 상용구나 반복구를 외웠던 것은 아니다. 불경 속에는 지루하리만치 유사한 단어와 문장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에도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어 명사나 동사들이 길게 반복적으로 나열될 때, 이것은 음절의 순서대로 나열됐다. 

빨리어 경전에 ‘나이 듦’을 뜻하는 다섯 단어를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고 해보자. 경전 속에서 이 단어들은 음절이 짧은 것부터 시작해, 많은 것으로 열거하게 된다. (jiṇṇo, vudd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atto.) 이 단어들은 두 음절, 네 음절, 여섯 음절 이렇게 작은 음절의 단어부터 먼저 나열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배치한 것이다. 그래야 외우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은 문장을 압축해 외우기 편리한 방식으로도 변형된다. 예를 들어 경전에 “꽃다발, 향기, 친족, 마차, 마을, 읍성, 도시, 나라(mālākathaṃ, gandhakathaṃ, ñātikatham, yānakatham, gāmakatham, nigamakatham, nagarakatham, Janapadakathaṃ) 등의 이야기”와 같은 단어들이 열거됐다고 하자. 경전에서 이 단어들은 여러 이야기의 나열일 뿐이다. 그리고 이 단어들도 역시 음절의 숫자에 따라 짧은 순서대로 열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은 더 확장되어, 명사들의 나열이 “꽃다발의 향기가 가득한 그의 친족들을 태운 마차는 그의 마을을 떠나 마차에서 도시로, 그리고 나라를 돌아다녔다”라는 문장으로 압축한 것일 수도 있다. 즉 경전에서 반복적이고 삭제해도 될만한 시시한 문장을 그 단어만 들어도 내용을 간파할 수 있는 압축적 문장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경전의 문장을 암기할 때 단어들의 배치를 모두 그렇게 음절의 수대로 배열하거나 압축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十二緣起)처럼, 어떤 교리적 가르침의 문장들은 단어의 순서가 결정된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는 작은 음절부터 나열하는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최초로 기록된 불경의 문자

이러한 인도 초기 불교 승려들의 암기가 경전을 전했던 최초의 모습이었다면, 문자가 등장한 이후는 어떠했을까. 또한 결집을 통해 모인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최소 수백 년간 승려들이 암송했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언어와 문자로 기록돼 경전이 탄생하게 됐을까. 

석가모니의 직설이 어떤 언어로 이뤄졌는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빨리(pali)어는 중기의 인도-아리아 어의 하나로 산스크리트와 마찬가지로 인도 북부에서 유통됐던 기록 언어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언어가 실제로 석가모니의 직설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대부분이 회의적이다. 아마도 다수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기록 언어가 점차 인도 땅에서 ‘산스크리트화’되어 갔을 것이다.  빨리어는 그러한 언어 가운데 생존한 하나의 언어다. 그러한 언어는 문자를 만나 비로소 책의 형태를 갖춘 경전이 탄생하게 된다. 

만일 불경이 처음 부처님 당시나 그 이후 수십 년 안에 기록됐다면 아마도 그 경전의 언어는 아람어 문자로 기록됐을 가능성도 있다. 아람어와 그 문자는 석가모니 당시 서아시아와 서북 인도 지역의 국제어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람어나 그 문자로 기록된 불경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람어로 기록한 아쇼카 대왕의 비문[도판 1]이 존재하기에, 그 형태를 추적해 인도 최초의 문자인 브라흐미 문자나 카로슈티 문자가 이 문자에서 파생한 것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따라서 최초의 ‘기록된’ 불경은 브라흐미 문자나 카로슈티 문자로 작성된 문헌이다. 

[도판 1] 브라흐미 문자로 쓰인 ‘아쇼카 석주’의 비문(碑文). 대략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인도 최초의 문자인 브라흐미 문자는 아쇼카 석주에서 잘 나타난다. 사진 심재관

 

오래된 불교 경전들

불교 전승에 의하면 경전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기원전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기록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것에 대한 실증적인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실물로 남겨진 가장 오래된 불경은 기원후 1세기에서 2세기경에 기록된 몇 가지 것인데, 대략 2,000년 전인 기원후 1세기경에 기록된 『코뿔소경』, 『법구경』(기원후 2세기)과 『대반열반경』(기원후 2세기) 등과 같은 것들이다. 

대부분 인도 북서부 특히 간다라 지역 등에서 발견된 이 경전의 필사본들은 자작나무 껍질이나 야자나무를 재단해 만든 패엽(貝葉) 위에 잉크로 쓴 경전들이며 이 당시에 이미 상당수는 산스크리트어나 혼성 산스크리트로 작성된 것들이다.  

파키스탄의 탁실라에서 발견된 아람어 비문(碑文). 아람어는 부처님 당시 국제적 공용어였다. 카로슈티 문자나 브라흐미 문자 등은 이 아람어 문자에서 파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진 심재관
자작나무 껍질에 쓴 불경. 대략 기원후 1세기경. 영국도서관 소장 

이후 인도에서 만들어진 불경들은 승려 개인들의 노력과 국가적 배려가 결합해 스리랑카와 티베트, 중국 등으로 전해진다. 전승에 의하면 인도 불경은 승려 마힌다의 암송에 의해서 기원전 3세기경 스리랑카에 전해졌으며, 빨리어 경전은 기원전 1세기경 기록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전승의 역사성은 거의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가장 일찍 삼장(三藏, Tripitaka)의 형태를 갖추고, 또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된 시기를 기원후 5세기경 이후로 보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빨리어 경전은 최근 200~300년 전의 필사본을 근거로 편집한 것이다. 

 

빨리어 경전

빨리어 경전으로 범위를 좁히면 가장 오래된 것을 미얀마에서 만나게 된다. 미얀마 퓨(Pyu)의 고대 도시들 가운데 하나인 슈리 크쉐트라(Śrī Kṣetra)는 한때 번성했던 왕국의 수도였다. 말 그대로 ‘번영의 땅’이었다. 20세기 초에 발굴이 이뤄지는데 여기서 기원후 5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스투파의 중앙 공간에서 사리기와 금판 경전이 발견된다[도판 2].

[도판 2] 미얀마에서 발견된 금판 빨리어 불경. 
대략 기원후 5~6세기경. 아마도 이 금판 불경이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빨리어 경전일 것이다. 출처 Juy John.ed. 2014. Lost Kingdoms.

사리기는 은으로 만든 원형 형태로 석가모니불이 돋을새김 됐다. 금판 경전은 대략 한 뼘 길이에 3cm가량의 폭을 가진 얇은 황금판 20매로 이뤄졌는데, 경전 문구는 브라흐미 문자를 음각해 새겼다. 

특별히 이 문자는 브라흐미 문자가 남인도 에서 변형되기 시작할 무렵의 문자(흔히 까담바 문자라고도 부른다)이며, 물론 가장 완벽한 형태의 빨리어를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 현재로서는 인류에게 남겨진 가장 오래된 “팔리어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여러 필경사가 여덟 종류의 경전 내용을 일부 베껴 쓴 것이지만, 마치 한 권의 패엽경처럼 황금줄로 묶은 상태로 발견됐다.

그렇다면 스리랑카와 동남아의 빨리어 경전들이 정말 오래된 경전일까. 오히려 빨리어 경전들은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여러 경전 유통 전통의 하나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빨리어 전승보다 훨씬 더 오래된 물리적 증거들이 최근 간다라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필자의 글이 이러한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 땅에서 문자가 등장한 이후부터 현존하는 초기 불경의 모습을 비롯해 다양한 불경의 모습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간다라 지역의 불교 경전

특히 최진경(겐트대)은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산스크리트어’로 쓴 『장아함경(長阿含經)』을 보여준다. 이 『장아함경』은 간다라 길기트(Gilgit)에서 최근 발견된 것으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교단의 경전이다. 여기에는 기존의 빨리어나 한역 『장아함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삼장경(三杖經)』 같은 부분이 수록돼, 초기 경전들의 전승과 수행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최성호(경남대)가 소개하는 『팔천송반야경』은 2세기경 지루가참에 의해서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으로 옮겨지는데, 이는 반야경 가운데 가장 초기의 문헌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 『팔천송반야경』의 필사본 역시 간다라 지역에서 발견됐다. 이 필사본은 무려 기원후 1~2세기경에 해당하는 것이다. 

방정란(경상대)은 조금 더 나아가, 반야경의 유행이 반야경을 쓰는 행위 자체에 영향을 줬고 반야경 사경(寫經) 문화를 이끌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반야경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담고 있으므로 경전 자체가 부처님의 지혜 자체를 의미할 수 있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인도 초기·중세기에 반야경에서 말하는 최고의 지혜 단계인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자체가 신격화돼 여성신으로 숭배됐다는 점이다. 

찰스 디시몬(겐트대)은 가장 최근(2017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된 메스 아이낙(Mes Aynak) 사본을 선보인다. 이는 간다라 지역에서 유통됐던 불교 경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카불 근처 메스 아이낙 광산에서 발견된 이 필사본은 6~7세기경 자작나무 껍질 위에 쓴 경전으로 『법화경』과 반야경의 파편도 여기서 발견된다. 『팔천송반야경』은 이 지역에서 발견된 매우 특이한 경우에 해당한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경전

불교학자들은 초기 불경의 역경사들이 간다라 지역의 필사본들을 한역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해진 불경의 흔적이 실크로드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최중혜(홍콩대)가 쓴 글은, 실크로드의 불교 중심지였던 투루판 인근에서 발견된 한역 경전, 『제불요집경(諸佛要集經)』에 관한 것이다. 이 경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역 경전의 파편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1920년대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가 발굴했던 것인데, 서기 296년에 필사된 것으로 확인된다. 놀랍게도 이 당시에 한역된 불경의 서체는 현대의 정서체와 너무 흡사해 현대의 위조품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차상엽(경북대)은 실크로드의 또 다른 도시, 돈황에서 발견된 불경들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위아래 폭이 좁고 가로가 긴 형태의 경전은 고대 인도에 가장 널리 유통되던 경전의 형태 ‘뽀띠’이다. 그렇지만 아코디언처럼 접을 수 있는 경전의 형태나 두루마리 형태의 경전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중국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히 무역이 활발하던 사막 오아시스 지역에서 유통됐던 경전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심재관(상지대) 필자는 스리랑카와 동남아 지역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는 경전인 패엽경의 제작과정을 다음 글에서 설명하고자 했다. 야자잎에 경전을 새기는 전통은 거의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동남아국가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경전의 형태다. 

김성주(동국대)는 한국에서 제작된 최초의 통합적 불경이라 할 수 있는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석보상절』은 부처님의 일대기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유통되던 설화와 기원정사의 유래도 포함돼 있으며 여러 대승 경전도 섞여 있다. 여러 불경을 뽑아서 한문으로 번역한 뒤에 다시 훈민정음으로 번역했기에 국어사적인 의미도 깊은 불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불광의 기획 원고를 위해 애써주신 여러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여기에 남긴다.  

 

심재관
상지대학교 교수.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 의례와 신화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다.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힌두교의 문헌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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