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의 메신저, 저승사자] 저승사자의 경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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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의 메신저, 저승사자] 저승사자의 경제생활
  • 이경덕
  • 승인 2024.07.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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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의 노잣돈과 사잣밥

 

저승, 이승과 다르지 않다

저쪽 세상인 저승은 이쪽 세상인 이승과 살아가는 모습에서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저승에 관해 남겨진 여러 기록을 보면 저승은 죽은 자들의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사는 모습이 이승과 다르지 않아서 저승에서도 먹어야 하고 옷이 필요하며 집도 있어야 한다. 즉 우리가 그런 것처럼 의식주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세상, 즉 이승에서 의식주를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얻기 위해(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고 하면) 기본적으로는 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노동을 해야 한다. 그건 저승도 다르지 않아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 과거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 쓰라고 죽은 자의 입이나 눈에 동전을 놓아두고 쌀을 넣어주기도 했고, 이승에서 권력과 부를 누렸던 사람들은 죽어서도 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화려한 부장품을 넣어주기도 했다(물론 그 화려한 부장품을 가장 잘 활용한 것은 도굴꾼들이었다). 심지어 살아 있는 사람까지 함께 묻는 순장까지 했다는 사실은 당시 이승과 저승의 삶이 다르지 않다고 깊이 믿었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동아시아 상상력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서유기』에서 당 태종은 경하 용왕의 고발로 저승을 다녀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몇몇 경제적인 문제는 제법 흥미롭다. 당 태종은 저승으로 끌려갔으나 경하 용왕의 고발이 무고임이 밝혀졌고 덤으로 수명까지 늘어났는데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당 태종이 이승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하교라는 다리를 건너는데 그곳에는 당 태종이 일으킨 전쟁에서 죽은 수많은 원혼이 죽일 듯 당 태종에게 달려든다. 당 태종을 안내하던 최판관은 그들에게 저승길을 갈 노잣돈을 주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당 태종은 저승에 저축을 많이 해둔 개봉부에 사는 상량의 저승 돈을 빌려서 원혼들에게 나눠주고 그 자리를 겨우 빠져나온다. 당 태종은 이승으로 돌아와 상량에게 이승의 돈으로 저승에서 진 빚을 갚는다. 

그러니까 당 태종의 고사는 죽은 사람에게도 노잣돈이 필요하고 당 태종의 사례처럼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당 태종은 저승의 시왕에게 감사의 표시로 저승에 없다는 호박을 보내준다. 귀한 물질적 선물 없이 감사하다는 말과 마음만 주는 게 공허하다는 것 또한 이승이나 저승이나 다를 것이 없다. 

상여(喪輿)에 조각된 저승사자,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상여는 망자의 시신을 매장할 곳까지 운반하는 도구이자, 이승에서 저승으로 향하는 망자가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상여에 장식된 나무 조각을 ‘꼭두’라 하는데, 다양한 모습의 저승사자도 조각돼 있다. 

 

낡은 관복과 구멍 뚫린 신발을 신은 저승사자

공무원은 안정적이기에 취업이 불안할 때는 우선순위로 꼽히지만, 박봉이라는 점에서 취업 시장이 안정적으로 되면 뒷순위로 밀려난다. 저승에도 이런 공무원과 같은 존재가 있는데 바로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자들이다. 저승사자는 무서운 사람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으나, 실제로 ‘저승+사자’로 이뤄진 단어로 지역을 가리키는 저승에 더해서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사자(使者)’가 합쳐진 말이다. 단순하게 정의하면 저승에서 일하는 심부름꾼 정도가 된다. 이들에게 무서운 이미지가 생긴 것은 직접 삶의 끝인 죽음을 통보하는 일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권력자 등의 은밀한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심부름꾼이 많은 임금을 받거나 후하게 대접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건 저승사자도 다르지 않다. 저승사자는 그 이미지와 달리 절차에 따라 공식적으로 임무를 진행한다(살아 있는 사람이 보기에 은밀하게 찾아올 뿐이다). 

즉 시왕을 비롯한 저승의 높은 관리의 명령을 받고 사람이나 여러 존재의 수명이 기록된 생사부라는 서류에 기록된 내용에 따라 데리고 갈 사람을 정하고 저승으로 안내하는 비교적 단순한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얼핏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해 보이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저승과 이승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임금이 높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저승사자도 이승의 공무원처럼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경제적인 협상(거칠게 말하면 뇌물)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건 여러 저승과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 저승사자의 경제생활이 그다지 풍족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거래가 힘든 상대는 왕처럼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나 애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이쪽은 받을 것이 많지만 이쪽에서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거래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아마도 처우가 좋지 않은 듯이 보이기에 이쪽에서 줄 수 있는 게 많고 따라서 얻어낼 것도 그만큼 많다. 우리 신화 ‘사만이본풀이’에 이런 내용이 있다.

길에 굴러다니던 해골을 집으로 가져와 잘 모신 덕에 큰 부자가 된 소사만은 어느 날 아내와 동시에 같은 꿈을 꾸게 된다. 백발노인이 꿈에 나타나 저승사자가 수명이 다 된 소사만을 잡으러 오고 있으니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며 어떻게 저승사자를 다뤄야 할지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소사만과 그의 아내는 백발노인이 일러준 대로 저승사자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먼저 소사만의 아내는 굿을 잘하는 무당을 불러서 문 바깥에 신장대를 높이 세운 다음 시왕 가운데 하나인 염라대왕을 맞이하는 시왕맞이 굿을 시작했다. 그리고 저승사자를 위해 관복 세 벌과 허리에 매는 띠 세 개, 신발 세 켤레를 준비하고 큰 주석으로 만든 그릇에 좋은 쌀을 가득 담았다. 한편 소사만은 머리를 잘 다듬고 몸을 깨끗하게 씻었다. 

다음 날 밤이 되자 소사만은 저승사자가 내려오는 길목인 삼거리로 가서 족자 병풍을 두른 다음 정성껏 맑은 음식을 한 상 차렸다. 비자나무로 만든 상에는 흰 시루떡과 달걀로 만든 안주, 좋은 술로 가득 채웠다. 그런 다음 상 위에 촛대를 세우고 초에 불을 밝힌 다음 자기 이름을 써서 상 밑에 붙여놓고 백 걸음 정도 떨어진 곳으로 가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

진도 씻김굿의 사자상. 저승사자가 들어오는 길에 사잣밥을 놓는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민간신앙에서 저승사자는 세 명이 한팀으로 움직인다. 밥도 세 그릇, 국도 세 그릇, 짚신도 세 개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얼마 후에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은 세 저승사자가 삼거리에 나타났다. 이들은 맛있는 음식과 술이 가득한 상을 보고 강한 허기를 느끼고 허겁지겁 먹고 마셨다. 배를 가득 채운 다음에야 상 밑에 있는 이름을 보고 자기들이 뇌물을 먹었다는 걸 깨달았다. 저승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상황을 살피기 위해 소사만의 집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는 시왕맞이 굿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자기들을 위해 준비한 듯한 옷과 띠, 신발이 놓여 있었다. 저승사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씩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낡은 관복과 띠, 구멍 뚫린 신발을 벗어 던지고 기분 좋게 새 옷과 띠로 갈아입고 새 신발을 신었다. 

저승사자들은 염라대왕이 시왕맞이 굿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얼른 저승으로 가서 장부를 꺼내어 ‘三十(삼십)’이라고 적힌 소사만의 수명을 획을 하나 더 그어 ‘三千(삼천)’으로 고쳐놓았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소사만을 잡아 오지 않은 연유를 묻자 서류를 보여주며 헛걸음했다며 짐짓 시치미를 뚝 뗐다. 염라대왕도 소사만의 아내가 준비한 정성을 다한 시왕맞이 굿이 마음에 들었는지 더 추궁하지 않았다.

위의 신화에서 앞에서 제시한 이승과 저승이 먹고 사는 게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 저승사자들의 처우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과,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다는 법칙이 저승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처우가 좋지 않거나 박봉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야기 속 저승사자는 늘 배가 고픈 상태(달리 말하면 늘 협상이 가능한)로 묘사된다. 웹툰 <신과 함께> 이후 이름이 알려진 강림이 상관인 원님의 명령으로 저승으로 염라대왕을 잡으러 갈 때도 배고픈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강림은 아내가 해준 시루떡을 갖고 염라대왕을 잡기 위해 저승으로 출발했는데 초행인 데다 살아서 갈 수 없는 저승으로 가는 길이 쉬울 까닭이 없었다. 조왕신(부엌을 지키는 신)과 문신(대문을 지키는 신) 등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해서 저승의 초입에 이르자 구불구불하고 칼날처럼 좁은 길이 나왔다. 강림은 기다시피 하며 그 길을 가다가 길가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자를 하나 만났다. 강림은 문신이 알려준 대로 그 사람 앞에 시루떡을 내놓았다. 그러자 졸던 남자가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으로 눈을 번쩍 뜨고 허겁지겁 떡을 먹었다.

떡을 먹고 배가 부르자 남자가 그제야 강림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자기가 명령을 받고 길을 고치는 저승사자라는 것과 살아 있는 사람은 백발이 되도록 걸어도 저승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떡을 먹었기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르겠다며 염라대왕을 붙잡을 방법을 알려줬다. 거칠게 말하면 떡을 먹고 상관을 팔아넘긴 것이다(우리가 뇌물을 달리 떡값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에서도 저승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인 저승사자가 의식주가 풍족하지 않은, 그래서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저승사자는 낡은 옷에 구멍 뚫린 신발을 신고 늘 배가 고픈 걸까? 

장례식에서 노잣돈을 새끼줄에 거는 모습. 저승사자를 달래는 의식은 민간신앙에서도 오랫동안 유지됐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저승, 이승과 다르다

주(主)신이 저승의 신(오시리스)인 이집트와 같은 특별한 지역을 제외하면 죽은 자의 세상인 저승은 대체로 황량하고 어두우며 빈한(貧寒)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또 어떤 곳은 춥기까지 하다. 그건 저승이 죽은 자들을 위한 죽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생명의 반대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 이미지 또한 생명과 대비된다. 즉 생명은 봄에 활짝 핀 꽃처럼 화려하고 싱싱한 윤기가 가득해서 계절에 비유하면 생명은 봄이지만, 죽음은 뼈대만 남은 무채색의 겨울과도 같다. 삶은 무성한 나뭇잎처럼 풍요롭지만 죽음은 『서유기』에서 보듯 호박도 존재하지 않는 빈한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 빈한한 곳에서 일하는 저승사자가 풍요로운 경제생활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늘 배가 고프고 누군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면 수명을 늘려줄 뿐만 아니라 자기 상사까지 팔아넘기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예부터 상을 당하면 저승사자에게 죽은 자를 잘 대해 달라는 의미로 각각 세 그릇의 밥과 나물, 술 석 잔으로 이루어진 사잣밥을 차리고 옆에 짚신 세 켤레와 엽전 세 꾸러미를 올려뒀다(저승사자는 대체로 3명으로 이뤄져 있다). 사잣밥을 차릴 때 나물은 매우 짜게 무쳤는데 그것은 배가 고픈 저승사자들이 서둘러 밥을 먹을 테고 짠 나물을 많이 먹으면 물을 자주 많이 마시게 될 터이니 그만큼 죽은 자가 저승으로 늦게 갈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원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죽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보하고 안내하는 저승사자가 여전히 일하고 있다면 어떤 행색을 하고 다닐까? 전설의 고향에 나온 것처럼 여전히 그들은 갓을 쓰고 검은 두루마리를 입고 다닐까? 아니면 해지고 반들반들한 낡은 양복에 헌 구두를 신고 다니는 건 아닐지. 

요즘 제사상에는 피자와 치킨, 바나나와 파인애플과 같은 과거에 없던 음식과 과일이 올라간다. 과연 요즘 저승사자는 이런 음식을 좋아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사잣밥을 얻어먹기 힘들어진 오늘날 그들이 어떻게 배를 채우는지도 궁금하다. 

 

이경덕 
대학에서 철학,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아시아문화의 이해, 의례축제신화, 경제인류학 등을 강의한다. 저서로는 『새롭게 만나는 한국 신화』,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그리스인 이야기』(전 3권), 『주술의 사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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