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생에서 호법신으로
용왕은 인도 신화에서 대지의 보물을 지키는 반(半)신격의 강력한 힘을 소유한 뱀(나가)에서 비롯한 존재다. 나가는 코브라 등 강력한 독을 지닌 동물이자, 인도 신화에서는 창조신 브라흐마의 아들 카샤파(Kashyapa)와 다크샤신의 딸 카드루(Kadru) 사이에서 태어난 종족을 말한다.
힌두교에서 그들은 지하세계인 나가로카에 거주하지만 천상과 지하, 인간계에 두루 존재하며 삼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나가는 신의 종족으로서 선과 악이 모호하고, 영웅 혹은 괴수의 모습으로 인간계에 섞여 사는 존재인 것이다. 불교적인 세계관으로 볼 때 나가는 조화와 변신이 자유롭고 지상과 천상을 오르내리는 신통력을 지녔지만, 결국 축생에 속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인도 신화 속 용들의 일부가 불교에 유입되며 용왕으로 변모한다. 경전에 등장하는 용왕들은 부처님께 귀의했지만, 선악의 양면을 모두 갖고 있고 갖가지 신통력을 지닌다.
용왕의 형상은 매우 다양하게 표현된다. 용왕을 뱀의 이미지로 표현한 미술은 남인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의 불교회화에서는 용의 모습 혹은 용과 용왕의 이미지가 중첩된 형상, 그리고 마치 제왕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불화 속에 등장하는 용의 모습을 살펴보자.
용왕이 용의 모습으로 표현된 사례는 1334년 『대방광불화엄경』 권15의 변상도(화엄경변상도)[도판 1]에서 볼 수 있다. 오른편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설법하고 있고, 왼쪽에는 수미산이 그려져 있다. 해와 달이 수미산 중턱에 있으며, 수미산 정상에 그려진 건물은 제석천이 머무는 도리천궁(忉利天宮)의 희견성(喜見城)이다.
수미산 우측에서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희견성에서 코끼리를 타고 나온 제석천의 군사들과 수라궁에서 나온 아수라(阿修羅)의 군사들이 격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그 와중에 열 마리의 용이 수미산과 희견성 주변을 날아다닌다. 제두뢰타, 연라바니, 비류박차흑구담, 여의주, 바수시, 단다바타, 만현, 난타라는 이름을 가진 용왕들이다. 용은 천과 아수라가 싸울 때, 명(名)과 색(色)의 위력으로 제석천을 도와 옹호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용과 용왕의 이미지가 중첩된 모습은 고려 『묘법연화경』(『법화경』) 변상도[도판 2]의 영산회상도에서 볼 수 있다. 높은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채 설법하는 석가모니 부처님 주변에 10대 제자와 천왕, 보살중이 있고 바깥으로 가루다, 건달바 등의 팔부중이 외호하고 있다. 부처님 위로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과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양쪽에 각각 있고, 타방(他方)의 불보살이 구름을 타고 하강하고 있다. 그림 왼쪽 하단에는 음악의 신 건달바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옆으로 두 명의 용왕이 그려져 있다. 용왕 뒤로 용틀임하는 두 마리의 용이 있다.
용왕, 용궁의 보물을 공양하다
일본 다이토쿠지(大徳寺) 소장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도판 3]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해 관음보살에게 공양하는 용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과 율장·논장에 대한 목록집인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에 의하면, “용궁에는 신묘한 구슬과 경전(금첩金牒), 얻기 어려운 재화와 듣기 어려운 법(法)이 탑과 절(塔寺)마다 널려 있다”고 한다.
그림 왼쪽 아래에는 신묘한 구슬과 경전을 수월관음에게 공양하기 위해 바다 위로 올라온 인물들이 표현됐다. 제일 앞에서 향로를 들고 있는 인물이 바로 용왕이다. 용왕은 두 개의 뿔이 장식된 황색의 금관을 쓰고 있으며, 금색 문양이 그려진 홍포(紅袍, 붉은색 예복)를 걸치고 있다. 향로는 연꽃 모양이다.
용왕 뒤로는 용왕의 부인이 산호와 보배스러운 꽃이 담긴 접시(반盤)를 두 손에 들고 뒤따른다. 용왕 부인 뒤로는 관모를 쓴 남성 한 명과 공양물을 들고 있는 두 명의 여인이 있다. 여인들 뒤로는 여러 권의 두루마리를 허리에 끼고 관복 차림을 한 무서운 모습의 종규(鍾馗, 나쁜 귀신의 일종)가 있다. 종규 옆에는 어린아이를 등에 업은 인물이 있다. 사람의 몸을 가졌지만, 머리는 귀신이다. 어린아이는 붉은색의 여의보주를 들었다.
용왕과 용왕 부인, 어린아이 등의 인물 뒤로는 윗옷을 벗어 몸을 드러낸 인물 넷이 뒤따른다. 제일 앞은 번(幡)의 깃대를 쥔 반인반수(半人半獸)다. 뒤로 세 명이 있는데, 앞쪽에 귀신 머리를 한 인물은 보화가 가득 담긴 항아리(대호大壺)를 등에 멨다. 바로 옆 짐승 모양 머리의 인물은 벌거벗은 상반신의 어깨 위로 표면이 거칠고 울퉁불퉁한 공양물을 짊어졌다. 이어 바다 동물의 형상을 한 인물은 머리에는 진주가 담긴 조가비를 이고, 허리에는 아주 큰 홍산호를 끼고 뒤따른다.
용왕을 비롯한 여러 인물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종규다. 종규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두루마리는 용궁 속에 비밀리에 모셔졌던 불교 경전들이다. 그 경전은 부처님이 입멸한 후 현세에 불법이 유행하지 않게 되자 용궁 속에 비밀리에 모셔졌던 경전들이다.
용왕, 경전을 수호하다
‘바다 깊은 곳 용궁에 불교 경전이 비밀리에 전하고 있다’는 설화는 원효 스님의 전기에서도 볼 수 있다. 일본의 국보인 <화엄종조사회전(華嚴宗祖師繪傳): 원효회(元曉繪)>는 원효 스님의 설화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일본 교토 외곽에 있는 고잔지(高山寺)의 개창주였던 묘에쇼닌(明惠上人, 1173~1232)은 원효를 깊이 흠모해 그의 전기를 에마키 형태로 남겼다. 에마키란 ‘두루마리 그림(회권繪卷)’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의 후반부에는 원효의 대표 저서인 『금강삼매경론』을 저술하고 직접 강경(講經, 경전 강독)한 인연을 큰 비중으로 그렸다[도판 4].
신라 문무왕 시절, 왕비가 중한 병에 걸려 죽어가자 왕은 영험한 약을 구하기 위해 당나라에 칙사를 파견한다. 그림 ❶은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가르며 항해를 하던 중 칙사가 탄 배의 사공이 허공 중에 한 관인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는 용왕의 사자로, 불법을 중히 여기는 왕비가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을 마음 아파하며, 용궁에 영험한 『금강삼매경』이 있음을 알려주고자 바다 위로 올라왔다.
다음 그림 ❷는 칙사가 사자의 말을 믿고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용궁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두 사람 앞으로 용궁의 지붕이 얼핏 보인다. 그런데 용궁에 도착하기 전, 무섭게 생긴 마갈어(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 괴어)가 바닷속에서 뛰놀고 있다. 칙사가 크게 놀라자, 사자는 “나의 부하들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이어 그림 ❸은 용궁에 도착한 칙사가 금해(鈐海) 용왕에게 『금강삼매경』을 받는 장면이다. 용왕은 “신라에 돌아가 반드시 대안성자(大安聖者)에게 경을 정리시키고, 원효대사에게 경의 소(疏)를 짓게 하고 설법하면 왕비의 병이 쾌유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칙사는 바닷물에 경전이 흩어지지 않도록 정강이를 가르고, 그 안에 경전을 넣는다. 그 옆에 ‘고통스럽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담은 재미있는 문구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용궁에는 비밀스러운 경전이 보존돼 있고, 용왕은 이 경전을 지상으로 유통하는 역할을 한다.
용왕이 경전을 수호하고 유통한다는 이야기는 조선 후기 신중도(神衆圖)에도 나타난다. 1755년 제작된 <운흥사 천룡도>[도판 5]는 드물게 경전의 유통과 관련된 천룡팔부중의 역할을 보여준다.
흰 용수염을 지닌 용왕은 화면 중앙에 위치한다. 2개의 여의보주가 박힌 관(冠)을 쓰고, 양손은 모아 용의 뿔을 들고 서 있다. 어깨 뒤로는 꿈틀거리는 용의 형상이 보인다. 주변에는 깃털관을 쓴 채 보봉(寶奉, 보배로운 지팡이)을 양팔에 얹고 있는 신중 모습이 보인다. 위태천(韋馱天)이라고도 불리는 동진보안보살이다.
세 개의 눈을 가진 아수라, 사자관을 쓴 건달바, 새부리에 큰 날개를 가진 가루다, 뾰족한 새부리관을 쓴 긴나라 등이 자리하고 있다. 용왕 앞에서는 일월관(日月冠)을 쓴 천자가, 위로 솟은 붉은 머리의 신중에게 두루마리를 건네고 있다.
화면 위쪽에 그림의 제목이 남겨져 있다.
천룡팔부는 허공에 충만하고,
가는 빛줄기에도 거하며,
항상 부처님의 말씀을 수호하고 옹호하며,
경전을 봉행하여 영구히 유통한다.
천룡팔부중 가운데 용왕을 중앙에 크게 배치한 것은, 경전 수호자로서 용왕의 역할에 주목했기 때문이 아닐까?
용녀, 축생과 여성 성불의 아이콘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8만 4천의 모든 주(洲)에는, 난생·태생·습생·화생 등 다양한 환경에서 태어난 용들이 있다. 모든 용은 용부(龍婦)·용남(龍男)·용녀(龍女)·용자(龍子) 등의 가족 구성원을 이룬다. 용들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은 이가 사갈라(娑竭羅) 용왕의 딸인 용녀다. 그녀는 여성의 몸으로, 그것도 매우 어린 나이인 8세에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이룬다. 용녀의 성불 이야기는 『법화경』 권4 「제바달다품」에 나온다.
그때 사리불이 용녀에게 말하였다.
“네가 오래지 않아 위없는 높은 도를 얻겠다고 말하지만 그런 일은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여자의 몸은 때묻고 깨끗하지 못하므로 법기(法器)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부처님의 도는 멀기 때문에 한량없는 겁 동안 부지런히 고행을 쌓고, 모든 법도를 닦아 갖춘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요, (중략) 어떻게 여자의 몸으로 빨리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느냐?”
그때 용녀에게 한 보배 구슬이 있었으니, 그 값은 삼천대천세계와 같았다. 그것을 부처님께 받들어 올리니 부처님께서 곧 받으시거늘, 용녀가 지적보살과 사리불존자에게 말하였다.
“제가 지금 보배 구슬을 세존께 받들어 올리니, 곧 받으셨거늘 이 일이 빠르지 않습니까?”
그들이 빠르다고 대답하니, 용녀가 다시 말하였다.
“여러분들은 신통력으로 제가 성불하는 것을 보십시오. 이보다 더 빠를 것입니다.”
그때 모인 대중이 모두 용녀를 보니, 홀연지간에 남자의 몸으로 변하여 보살행을 갖추고, 남방의 청정한 세계에 가서 보배 연꽃에 앉아 등정각을 이루었다.
- 『법화경』 권4 「제바달다품」 중에서
1385년 제작된 변상도[도판 6]는 『묘법연화경』 「제바달다품」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용녀는 삼천대천세계에 비유할 만큼 크나큰 공덕을 쌓는 수행으로 여의주를 얻었으며, 이 여의주를 부처님께 바쳤다. 또 부처님이 여의주를 받는 것보다 빠르게 성불했다. 당시 용녀의 나이는 8세에 불과했다. 문수보살이 용궁에 와서 『법화경』을 가르쳤을 때, 용녀는 모든 진리를 단박에 깨닫고 즉시 정각을 이뤘다고 한다.
‘여성의 몸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당연시했던 대중 앞에서, 용녀는 보란 듯이 부처님의 위신력에 힘입어 홀연히 남자의 몸으로 바뀌어 보살행을 갖췄다. 그리고 무구(無垢) 정토 연화대에 앉아 등정각(等正覺), 곧 깨달음을 이룬 모습을 보여줬다.
‘남자의 몸으로 변해야 성불한다’는 변성남자설(變成男子說)의 유포는, 여성에 대한 당대 불교계의 차별적 인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여성도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라는 또 다른 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용녀는 용이라는 축생이었고, 여덟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다. 그것도 여성의 몸이었다. 비록 남자의 몸으로 변화한 이후이지만 용녀의 성불은 미천한 중생의 성불, 여성 성불이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승희
고려시대 아미타정토불화 연구로 홍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 용인대, 단국대, 충북대 등에서 강의, 불교미술사학회 운영위원장, 동양미술사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시 문화재전문위원,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수리기술위원, 순천대 연구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