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 용이 나르샤] 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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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용이 나르샤] 포토에세이
  • 유동영
  • 승인 2023.12.2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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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이어라
선사들의 용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보물). 쌍봉사 주지 증현 스님은 차차 경내의 담들을 모두 걷어내려고 한다.

장엄하고 성스러운 신라인의 용은 바다를 거쳐 산중의 산문에도 몸을 틀었다. 구산선문에 깃든 용 중 이왕이면 탑과 탑비를 함께 볼 수 있고, 보호각이 없으며, 시대를 대표할 만한 스님의 것을 찾았다. 통일신라 말을 대표하는 스님의 탑과 탑비로 사자산문 쌍봉사 철감선사의 용을, 고려 전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봉림산문 흥법사지 진공대사와 고달사지 원종 스님의 용을 선택했다. 신라인의 용은 11세기 말,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말없이 이어지는 선가의 법을 수호하는 용들은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웅혼했다.

 

철감선사탑(국보)을 대하는 순간 그 단단한 아름다움에 놀라 말문이 닫힌다. “우리나라 승탑의 백미”라고 했던 미술사학자 유홍준의 말을 떠올릴 새도 없다. 하대석에는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속을 노니는 용들과 다양한 동작의 사자들이, 중대석과 상대석에는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들이, 탑신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과 수직 낙하하는 천인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빛을 낸다. 

 

철감선사는 선의 황금기를 다진 육조 혜능·남악 회양·마조 도일·남전 보원 스님으로 이어지는 당나라 남종선의 법을 받아 귀국했다. 금강산에 회상을 차린 스님 아래로 많은 스님이 몰려들었고, 그 안에는 사자산문을 개창한 징효 절중 스님도 있었다. 지금의 승탑과 탑비는 철감선사의 의발을 물려받은 징효 스님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미소 지으며 걷는 용의 한가로운 모습이 고맙다.

 

양감과 역동성이 넘치는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보물)의 귀부와 이수. 섬강 건너로 보이는 산이 건등산이다. 왕건이 견훤산성의 견훤과 싸우기 위해 진을 친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진공대사탑(보물). 진공대사는 창원 봉림산문의 개산조인 고달사지의 원감국사 현욱 스님과 진경대사 심희 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봉림산문의 스님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진공 스님을 궁으로 초청해 법문을 듣고 왕사로 추대한 뒤 흥법사를 중건해 스님을 주석하게 했다. 940년 7월 스님이 입적하자 태조는 왕실 후원으로 탑과 탑비를 조성하게 했다. 

 

태조는 시호와 탑호를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비문을 작성했다. 글씨는 왕희지체를 선망하고 따랐던 당 태종 이세민의 글씨를 뽑아 썼다. 빼어난 비신은 화를 불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노략질로 깨진 절반만 남았고, 그 뒤로도 부침이 심해 겨우 몇 부분만 남아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세상 모든 왕희지 글씨를 무덤까지 가져가려 했던 당 태종다운 글씨다.

 

여수 고달사지의 원종대사 혜진탑비(보물). 1915년 깨진 탑비신은 여주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현재의 탑비신은 2016년에 세운 모형이다. 아쉽게도 귀부와 이수가 한 몸일 때 뿜는 위엄은 없다.

 

원종대사 혜진탑으로 불리는 보물이다. 고달사는 봉림산문의 개산조인 원감국사 현욱 스님과 봉림산문을 개창한 진경대사, 그리고 그들의 법을 이은 원종대사까지 삼대에 크게 번창했다. 원종대사는 태조 왕건에서 광종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광종은 스님을 국사로 봉하고 증진대사란 호를 내렸다. 스님이 입적하자 시호와 탑비를 내렸고 진영을 모시게 했다. 

 

국보 승탑. 고달사지의 두 승탑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 새로운 의견이 나온다. 지금껏 원종 스님 탑으로 알았던 승탑이 원감국사 현욱 스님의 것이고, 이 국보 승탑이 원종대사의 승탑이란 것이다. 그 근거로 돌을 다듬는 수법과 양식을 든다. 두 스님 사이에는 약 90년의 시차가 있다. 보물 승탑의 균형과 세밀한 표현 기법이 국보 승탑에 비해 빼어나고 규모와 표현 방식은 국보 승탑과 혜진탑비 사이에 유사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보 승탑 중대석의 용. 보물 승탑에 비해 선이 굵고 전체 높이는 4.3m에 이른다. 구름을 헤치고 불을 뿜는 용과 더불어 옥개석 아래를 나는 비천은 이 승탑의 절정이다. 

 

글・사진. 유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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