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역사: 사찰로 온 헤라클레스] 힘의 상징 헤라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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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 사찰로 온 헤라클레스] 힘의 상징 헤라클레스
  • 이경덕
  • 승인 2023.10.2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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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

신과 인간 그리고 영웅

우리(한국) 신화에는 영웅이 없다. 영웅이 없는 것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굳이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익숙한 그리스 신화에는 많은 영웅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람들이 우리 신화보다 그리스 신화를 더 흥미롭게 여기고 더 좋아하는 것은 이런 영웅들의 이야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이 필요한 것은 신들의 행태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인간의 결정적인 차이는 죽음이다. 한쪽은 죽지 않고 다른 한쪽은 죽는다. 물론 죽지 않는 쪽은 신들이다. 이 죽음을 빼면 그리스 신화에서 신과 인간은 다를 것이 없다. 신들도 질투하고 분노하며 살인과 폭행, 강간을 비롯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신들의 행태는 죽음(한정된 시간)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정된 시간(같은 시간을 반복해서 경험할 수 없는)이 주는 순간의 힘에 흥미를 느낀 듯하다. 영원을 살아야 하는 신들에게 ‘찰나’나 ‘순간’은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종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세상으로 내려와 인간이 누리는 삶을 경험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간보다 강한 힘을 지닌 신들은 인간보다 쉽게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

따라서 신들은 인간에게 삶의 모범(이렇게 살아야 한다)을 제공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역할을 맡을 영웅이 필요해졌다. 영웅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뛰어난 용기와 숭고한 미덕으로 무장하고 목숨을 걸고 사회의 악덕(괴물로 표현되는)과 맞서 싸우고 고통과 고난을 극복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영웅은 헤라클레스다.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은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알려졌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엄청난 바람둥이가 된 것은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가 제우스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삼았기 때문인데 그를 위해서는 그들의 여자 조상이 제우스의 아이를 낳아야 했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많게는 2,000개를 헤아린다. 

이렇게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 됐는데 행복과 불행이 홀로 오지 않는 것처럼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영광에는 헤라의 질투라는 고난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 고난이 헤라클레스를 영웅의 길로 인도했다. 헤라클레스의 고난은 헤라가 아기가 태어나지 못하게 방해하고 태어난 지 8개월쯤 됐을 때 맹독을 지닌 뱀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하녀의 도움으로 무사히 태어났고, 맹독을 지닌 뱀은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목을 졸라 죽였다. 

헤라의 진짜 시련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왔다. 헤라클레스가 잔치 도중에 미쳐서 아내와 세 아들을 죽였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그의 가슴을 때려 정신이 되돌아왔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스스로 추방하고 델포이 신전으로 가서 미래의 삶에 대해 신탁했다. 이때 무녀가 알케이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를 ‘헤라클레스(헤라의 영광)’라고 불렀다. 거기에는 헤라를 위한 삶, 즉 대립보다는 화해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헤라클레스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신탁은 그와 미케네의 왕위를 둘러싸고 갈등 관계에 있던 에우리스테우스의 부하가 되어 그를 섬기면서 주어진 과업을 해내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기에 매우 굴욕적인 일이었으나 헤라클레스는 순순히 신탁에 따라 에우리스테우스를 찾아가 그를 섬겼다. 한편 에우리스테우스는 평소에 고깝게 여겼던 헤라클레스에게 인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명령했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헤라클레스는 힘든 과업을 수행하며 영웅의 자리에 올랐다. 영웅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힘든 일을 하고 새로운 삶의 경험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헤라클레스가 12년 동안 진행한 12가지의 과업도 그러했다. 원래 10가지 과업이었으나 에우리스테우스가 2가지를 부정했기 때문에 2가지가 늘어나 12가지 과업이 됐다. 이 12가지 과업은 각기 상징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을 오늘날에 비유하면 어려운 과제를 극복하고 잠재해 있는 자기의 재능을 깨워 성장해간다는 자기계발과 비슷하다. 

먼저 과업을 행한 장소부터 살펴보면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전체의 절반인 6곳, 그 바깥이 4곳, 저승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2곳이었다. 12곳을 여행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곳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 주어진 임무는 네메아 계곡에 사는 식인 사자의 가죽을 가져오는 일이었다. 달의 여신 셀레네의 젖을 먹고 자란 사자는 무기가 통하지 않는 불사의 괴물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이 식인 사자의 상징은 죽음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곤봉과 활이 통하지 않고 땅 위에서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사자를 허공으로 들어 올린 상태로 목을 졸라 죽였다. 죽지 않는 식인 사자의 퇴치는 죽음이 지닌 공포의 극복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히드라라는 이름을 가진 물뱀의 퇴치였다. 히드라 역시 죽지 않는 뱀으로 모두 9개의 머리를 가졌는데 머리를 자르면 그곳에서 두 개의 머리가 나왔다. 헤라클레스는 8개의 머리를 불로 지지고 죽지 않는 한 개의 머리는 큰 바위로 눌러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히드라의 많은 머리는 고뇌와 번민을 가리키는데 우리 삶에서 고뇌와 번민은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라클레스는 강한 의지로 그것을 막고 눌렀다.

세 번째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전차를 끄는 사슴 한 마리를 산 채로 잡아 오는 것이었고 네 번째는 에리만토스의 괴물 멧돼지를 역시 산 채로 잡아 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말인 켄타우로스의 싸움에 휘말렸고 훗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된다. 

다섯 번째는 아우게이아스의 마구간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아우게이아스는 소를 많이 키웠는데 30년 동안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벽에 구멍을 뚫고 강물을 끌어들여 하루 만에 청소를 끝낸 뒤에 벽을 막았다. 여섯 번째는 청동으로 된 새 떼를 쫓아내는 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골머리를 앓다가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방울로 모두를 유인해 활로 쏘아 죽였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과업은 번잡하게 많은 것을 단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일곱 번째 과업부터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떠나야 했다. 일곱 번째는 크레타섬에 사는 포세이돈의 황소를 데리고 오는 것으로 크레타 왕 미노스의 허락을 받고 잡아 와서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보여주고 풀어줬다. 이 황소는 떠돌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훗날 헤라클레스를 롤 모델로 삼았던 테세우스에게 잡혀 죽었다.

여덟 번째 과업은 호전적인 민족의 왕인 디오메데스의 식인 말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디오메데스는 헤라클레스와 싸움을 벌였다가 살해됐고 디오메데스의 말 또한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보이고 풀어줬는데 들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다. 아홉 번째는 아마존의 여왕인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것으로 히폴리테가 선선히 허리띠를 내줬다. 영웅은 특히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열 번째는 게리온의 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몸통이 셋인 괴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게리온을 죽이고 소를 잡아 왔는데 이 과정에서 오늘날의 지브롤터를 지나며 그곳에 흔히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기둥을 세웠다. 이 기둥은 오늘날 스페인의 국기에 들어가 있다.

이렇게 10가지 과업을 마쳤으나 히드라를 퇴치할 때 조언을 받았다는 것과 아우게이아스의 마구간을 청소할 때 대가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새롭게 2가지가 추가됐다. 

열한 번째는 아틀라스의 딸이 지키는 황금 사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고 있던 프로메테우스를 구해줬다. 마지막 과업은 저승을 지키는 문지기로 개의 머리(50개)와 뱀의 꼬리를 가진 케르베로스라는 괴물을 데리고 오는 일이었다.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저승으로 보내 죽일 생각이었으나 헤라클레스가 저승으로 가서 저승의 신 하데스의 허락을 받은 다음에 케르베로스를 힘으로 굴복시켰다.

헤라클레스는 12가지 과업 외에도 그리스 곳곳을 다니며 어려움에 처한 타자를 도왔다. 한편으로 정신 발작을 일으켜 싸움과 살인을 했고 많은 여자 사이에서 아이를 얻기도 했다. 헤라클레스가 경험한 불행한 사건은 대부분 헤라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제우스가 분노하며 헤라의 팔다리를 묶어 올림포스 산꼭대기에 매단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헤라의 집요한 공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헤라클레스는 꿋꿋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갔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였던 프로디코스가 쓴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에서 사자를 죽인 다음 갈림길에서 함께 걸어오는 두 미녀를 만나게 된다. 한 여자는 짙은 화장을 하고 헤라클레스를 향해 달려와 자기와 함께하면 평생 즐겁고 편하며 짜릿한 쾌락과 사치를 누릴 수 있다며 유혹했다. 이름을 묻자 자기 친구들은 ‘행복’이라고 부르지만 어떤 이는 ‘악덕’이라고 부른다고 대답했다. 한편 다른 한 여자는 천천히 걸어와 자기와 함께하면 가시밭길을 걷듯 고통스럽고 투쟁과 모험이 연속되겠지만 영광과 보람으로 가득 찰 것이라며 손을 내민다. 헤라클레스는 고민 없이 두 번째 여자의 손을 잡았고 한 번도 자기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다.

 

신이 된 헤라클레스

한정된 삶을 살던 인간 헤라클레스는 죽어서 영원한 삶을 사는 신이 됐다. 헤라클레스에게는 “죽은 자에게 죽임을 당한다”라는 예언이 있었다. 달리 말하면 살아 있는 것은 그를 죽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는 아내 데이아네이라와 함께 길을 가다가 강을 건너려고 할 때 네소스라는 켄타우로스가 나타나 데이아네이라를 편히 건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먼저 강을 건넌 네소스는 데이아네이라를 겁탈하려고 했고 그 장면을 본 헤라클레스가 활을 쏘아 네소스를 죽였다. 그러나 네소스는 죽어가면서 데이아네이라에게 훗날 헤라클레스의 사랑이 식으면 자기의 피를 사랑의 미약으로 쓰라고 말했다. 

언젠가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을 들었고 헤라클레스의 옷에 네소스의 피를 발랐다. 옷에 온기가 돌자 옷에 묻어 있던 독이 피부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곧 몸이 피투성이가 됐다. 이 모습을 본 데이아네이라는 목을 맸고 헤라클레스는 죽음을 결심했다. 헤라클레스는 장작을 쌓으라고 명령하고 그 위에 편안하게 누워 지나가던 양치기에게 불을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인간의 것에 속한 육체가 모두 불에 타자 천둥소리가 나고 헤라클레스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헤라와 화해했고 신이 되어 헤라의 딸인 헤베와 결혼했다. 헤라클레스는 인기가 매우 높은 신이 됐다. 

중국에 헤라클레스와 유사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오늘날 도교의 최고신으로 숭앙을 받는 관우(관제)다. 그는 유명한 삼국지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로 듬직한 신의와 굳센 의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죽어서 민중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신이 됐다. 

신이 되면 그를 믿는 사람들의 발길과 입을 통해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고대 그리스 문화가 오늘날의 유럽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국가의 영역에서 보다 넓은 세계로 뻗어나간 때는 그리스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때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군대는 창칼과 함께 문화(헬레니즘)를 장착하고 아시아를 휩쓸었다. 곳곳에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을 딴 도시가 건설됐고 그들의 문화가 씨앗이 되어 떨어졌고 자라났다. 군인은 늘 죽음과 직면해 있기에 신앙심이 두터웠고 그리스를 정복한 마케도니아의 군대 사이에서 헤라클레스는 인기가 많은 신이었다. 신이 된 헤라클레스는 군인들과 함께 세계를 떠돌았고 오늘날의 파키스탄 페샤와르 지역에서 아직 몸을 갖지 못했던 불교의 수호신인 금강역사에게 자기의 얼굴과 몸을 내주었다. 

 

이경덕 
대학에서 철학,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아시아문화의 이해, 의례축제신화, 경제인류학 등을 강의한다. 저서로는 『새롭게 만나는 한국 신화』,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그리스인 이야기』(전 3권), 『주술의 사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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