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역사: 사찰로 온 헤라클레스] 신라 문화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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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 사찰로 온 헤라클레스] 신라 문화의 수호자
  • 강삼혜
  • 승인 2023.10.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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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 원초적 숨결로 신라 역사 지키다

석굴암 관음보살상과 금강역사상

언제이던가 석굴암 11면관음보살상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석굴암 새벽 예불에 참석해 그토록 아름다운 석굴암의 여러 존상을 친견할 수 있었다. 새벽 어스름한 불빛 속에서 한 점 한 점 최상의 예술로 빚어낸 조각상들 속에서 찰나와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전실에 앉아 예불을 드리며 석굴의 수많은 부조상을 올려다보니, 이 부조상들은 석가모니의 불국토를 완성하는 판테온(만신전萬神殿)의 의인화된 부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원형 주실 공간에 꽉 들어찬 본존 불좌상에 비해 다른 존상들은 판석(板石)에 부조로 조각돼 어스름한 불빛 속에서 그 존재감은 생각만큼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유독 11면관음보살상과 두 금강역사상만은 앞으로 툭 튀어나온, 거의 입체적인 고부조이자 정면관으로 예배자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단박에 이 두 상은 본존상과 함께 매우 중요한 의도를 가지고 제작된 상임을 느낄 수 있었다[도판 1, 2].

[도판 1] 전실에서 바라본 석굴암(국보) 본존과 금강역사상, 통일신라 8세기, 
경주, 국립문화재연구원(사진 한석홍)
[도판 2] 석굴암 11면(十一面)관음보살입상, 국립문화재연구원(사진 한석홍)

11면관음보살의 여성스러운 관능미와 금강역사상의 남성적인 역동미의 대비는 석굴암 공간 전체에 활력을 주며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상에서 느껴지는 고부조 표현은 도판으로는 도저히 그 실감을 체험할 수 없는, 직접 그 공간에 머물러 보아야 느낄 수 있는 감흥이었다. 

11면관음보살상과 두 금강역사상의 중요성에 대해 짧은 시간에 느낀 점이지만, 이 존상들이 석굴암의 조성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당시 발표한 논문에서는 『삼국유사』 기록과 중국의 천룡산석굴 9굴 등의 삼존불 사례를 통해 11면관음보살상이 본존불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실 입구 좌우에 배치된 문수와 보현보살상과 정삼각형의 배치 구도 아래 두 보살상의 본존으로서의 주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석굴암 금강역사상은 미처 살펴보지 못한 채 풀지 못한 수수께끼처럼 남아 그 후 내내 필자의 숙제가 됐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난 금강역사상

2022년 1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발령받아 신라미술관 불교조각실 리모델링에 참가했다. 그 전 해에 이미 2층 불교사원실 리모델링이 완성돼, 그야말로 “절과 절이 별처럼 많고 탑과 탑이 기러기처럼 연이어 있다(寺寺星張 塔塔雁行)”는 신라 왕경 사찰의 모습이 멋지게 전시실에 구현돼 있었다. 

불교사원실의 성과를 이어, 2022년 새로 마련하는 불교조각실은 경주 남산을 거닐다 문득 마주치는 불상과 탑처럼 자연스럽게 조각상을 만날 수 있도록 노출 전시로 전시 콘셉트를 잡았다. 

전시실 1부는 불국토 신라를 지키는 신장상(神將像)인 팔부중, 금강역사상, 사천왕상 등을 배치했다. 차디찬 유리 벽에 갇히지 않은 신장상들은 제각각 활달하고 힘찬 에너지를 뿜어냈다. 전시실의 여러 신장상 중 단연 금강역사상은 그 생명력과 힘차게 용솟음치는 기세가 비교 불가였다. 

특히 경주 구황동 모전석탑 터에서 옮겨온 두 구의 금강역사상[도판 3]은 마치 우리를 향해 걸어 나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박물관에서 야간 개장하는 날 밤이면, 어쩌다 비라도 내리거나 남산에서부터 바람이 몰아치기라도 하면, 이 두 금강역사상은 마치 삼국통일 전쟁 중에 목숨을 잃은 장군처럼 처연하고 으스스했다. 

황룡사 인근에 있는 구황동 모전석탑 터. 분황사 탑과 같이 벽돌로 조성된 탑이 있었다. 
경주 구황동 모전석탑 터에 있는 금강역사상
[도판 3] 경주 구황동 모전석탑 터 금강역사상, 통일신라 7세기, 국립경주박물관

분황사 탑 금강역사상처럼 문 좌우에서 실제 서 있는 것처럼 고부조로 조각돼 있고, 천의 자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어 상에서 느껴지는 역동감과 함께 그 실재감은 배가 된다. 상이 새겨진 모전석탑의 문은 여닫는 돌쩌귀가 놓인 위치로 보아 열려진 문이다. 열린 문 앞에서 두 금강역사상은 우리에게 어서 불국토로 들어오라고, 부처가 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겠노라고 호령한다.

토함산 석굴암 금강역사상[도판 4]은 통일신라 조각의 최고봉이다. 올리고 내린 두 팔의 근육 표현은 눈빛과 함께 적을 제압하기에 충분하다. 마치 살아서 판석을 깨고 나온 듯 정면을 응시하고 두 발은 대지를 단단히 딛고 서 있다. 근육질의 사실적인 신체 표현과 달리 몸 뒤로 바람에 날리는 천의 자락은 두광(頭光)과 함께 매우 추상적으로 표현됐는데, 동그랗게 말린 천의는 태극 문양처럼 보여 도교적인 느낌도 든다. 

[도판 4] 경주 석굴암 금강역사상, 국립문화재연구원(사진 한석홍)
[도판 4] 경주 석굴암 금강역사상, 국립문화재연구원(사진 한석홍)
[도판 4] 경주 석굴암 금강역사상, 국립문화재연구원(사진 한석홍)

추상과 사실 표현의 절묘함, 근육질의 두 금강역사상의 대칭과 비대칭의 조합, 대좌를 앞으로 튀어나오게 하여 마치 환조상처럼 표현하면서도 천의 자락은 아주 얕고 가냘프게 조각한 그 대비점은 실로 절묘하다.

석굴암 금강역사상과 같은 얼굴 모습의 상이 국립경주박물관에 또 한 점 있다. 1914년 일본의 석굴암 해체 수리 과정에서 발견돼 박물관으로 옮겨진 것으로, 입을 다문 금강역사상의 두상, 팔뚝까지 남아 있는 왼팔, 주먹 쥔 손 총 세 점[도판 5]이 박물관으로 입수됐다. 당시 석굴암 향우측 금강역사상 뒤 돌무더기 안에서 이 조각상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완성작이 아닌 것으로 보아 만들다가 실패한 작품을 돌 속에 묻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아직 풀리지 못한 수수께끼가 많다. 

[도판 5] 전시 중인 석굴암 금강역사상의 두상, 국립경주박물관 
석굴암 해체·수리 과정에서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입수된 석굴암의 또 다른 금강역사상이다.
석굴암에서 발굴된 금강역사상의 손, 통일신라 8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석굴암에서 발굴된 금강역사상의 손, 통일신라 8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석굴암에서 발굴된 금강역사상의 팔, 통일신라 8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전시 조명 밑에서 본 이 금강역사상은 모든 것을 초탈한 탈속인으로 보였다. 몸 없이 얼굴만 덩그러니 놓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먹 쥔 손은 비록 파손됐을지라도 손가락 마디마다 적을 섬멸하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하고, 손등에 돋은 섬세한 핏줄은 불국토를 지키고자 하는 따뜻한 보살의 마음이 맥놀이 쳤다.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조각실 전시품 중 가장 우수한 조각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이 석굴암 금강역사상의 주먹 쥔 손을 들 것이다. 맨손으로 적을 격파하는 금강역사상의 응집된 활력이 이 손안에 모두 표현됐기 때문이다.

경주 덕동호를 지나 험준한 산골에 위치한 황용동 만호봉 절터에서 옮겨온 금강역사상[도판 6]도 불교조각실 한편을 지키고 있다. 석탑 부재에 부조된 상으로 각 모서리에 금강역사상이 새겨져 있어, 각각 떨어져 있는 네 구의 탑신을 합하면 각 면에 두 구씩 배치되는 형태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체에 귀여운 손짓까지 저절로 웃음을 짓게 하는 8구의 금강역사상이다. 

[도판 6] 전시 중인 경주 황용동 만호봉 절터 금강역사상, 통일신라,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불교조각실’의 신장상

이제까지 보았던 사실적이고 육감적인 금강역사상이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표현된 것은 시대의 흐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목에 잔뜩 힘을 주어 힘줄이 살아난 모습이나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린 포즈 정도가 신장상임을 알게 한다. 변화된 금강역사상의 모습은 외부의 적을 방어하기보다 내면의 번뇌와 집착을 끊어내고자 하는 수행자의 모습처럼 보인다. 

영천 거조암 오백나한상 중에서도 이렇게 목에 힘을 잔뜩 준 수행자 오백나한상[도판 7]이 있다. 다시는 번뇌에 빠지지 않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오백나한상의 얼굴에는 갖가지 인간의 희로애락이 자유롭게 표현됐다. 목에 힘줄이 올라와 있는 모습일지라도 자신의 감정에 매몰된 모습이 아니라, 인간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자유롭게 벗어던진 모습이다.

금강역사의 분노하는 모습 속에도, 우리를 지켜주고자 눈을 크게 뜨고 좌우를 살피는 험상궂은 모습 속에도 고통에서 인간을 구해내겠다는 그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진다.

[도판 7] 만호봉 절터 금강역사상(통일신라)
[도판 7] 영천 거조암 오백나한상(고려 말)
[도판 7] 영천 거조암 오백나한상(고려 말)

 

신라인의 원초적인 미감이 담긴 금강역사상

통상적으로 금강역사라고 하면 말 그대로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쥔 역사(力士)를 일컫는다. 지물(持物)을 든 금강역사상은 초기 도상에 많이 등장한다. 제석천의 지물인 번개에서 유래된 금강저, 즉 바즈라를 든 금강역사상은 간다라 불전도(佛傳圖)에서 항상 붓다 곁을 호위한다. 

금강저는 만물을 파괴하는 성질 때문에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마음의 번뇌를 없애주는 상징으로 쓰였다.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경에는 중국 고대 문신(門神, 문을 지키는 수호신)과 역사의 이미지가 금강역사에 투영되면서 한 구이던 금강역사상이 자연스럽게 문 앞에 쌍으로 배치됐으며 지물인 금강저를 내려놓고 맨손의 권법 자세를 취하게 됐다. 이러한 도상이 신라의 금강역사상 도상에 영향을 준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신라 금강역사상의 이른 예로 분황사 모전석탑(634년) 금강역사상[도판 8]을 꼽는다. 금강역사상은 구식의 초기 불탑이나 모전석탑 등에 조각된 사례가 많다. 고선사, 감은사 삼층석탑(682년) 이후 석탑이 정형화되면서 점차 초층 탑신의 크기가 작아짐에 따라 조각할 공간도 협소해졌다. 또한 감실의 생략에 따른 탑 내부 공간의 부재(不在)와 더불어 『금광명경』에 의한 사천왕 신앙의 도입에 따라 금강역사상은 어느새 사천왕상에게 차츰 자리를 내준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위쪽부터)동면에 새겨진 금강역사상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남면에 새겨진 금강역사상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서면에 새겨진 금강역사상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북면에 새겨진 금강역사상

 8세기 중엽 이후에는 경주 장항리 터 남탑과 구례 화엄사 사사자석탑 등에서 보듯이 사천왕상처럼 손에 무기를 쥔 금강역사상이 등장하지만, 9세기 이후에는 거의 잘 표현되지 않는다. 금강역사상이 사천왕으로 대체되는 시기에 석굴암에서는 다시 금강역사상이 화려하게 등장해 사천왕상, 범천과 제석천보다도 더 고부조로 조각돼 석굴암 판테온 안에서 붓다를 호위하고 있다. 

금강역사상은 어쩌면 경북 영주 순흥 읍내리 고분벽화 역사상처럼 웃통을 벗은 토속신들의 모습이 투영돼, 시간이 흘러도 신라인의 마음속에 그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금강역사상은 신라 본연의 신성이 깃든, 재래신의 이미지가 내재된 신이 아니었을까? 무기를 들고 갑옷을 입은 이국적인 사천왕상의 이미지는 먼먼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정형화된 채 외래적인 문물로 받아들였지만, 금강역사상은 신라인들이 처음으로 불교의 신장상을 받아들이면서 신라인들이 가지고 있던 자신들만의 원초적인 미감을 가미하지 않았을까? 

금강역사상이 처음으로 세워진 분황사 석탑 역시 인도의 스투파를 모방하고자 돌을 벽돌처럼 만들어 초기 석탑 형태의 순수함을 간직하고자 했듯, 같은 맥락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를 금강역사상에 덧입혔을 것이다.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조차도 함께 가고자 했던 든든한 역사의 모습을 투영한 금강역사상. 신라인들은 이 원초적 숨결을 간직한 금강역사상을 석굴암 석굴 맨 앞의 전초기지에 당당하게 세워, 더할 나위 없이 융성했던 자신들의 문화를 표방하고자 한 것임을 뒤늦게나마 알게 됐다.  

 

사진. 유동영

 

강삼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 강원도 문화재위원으로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했다. 2009년 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 《팔공산 동화사》, 2017년 국립춘천박물관 상설전시실 리모델링, 2018년 특별전 《창령사 터 오백나한》, 경천사 십층석탑 미디어파사드 《하늘 빛 탑》, 국립중앙박물관 2021년 특별전 《조선의 승려 장인》, 
2022년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조각실 리모델링 등의 업무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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