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거천・공거천 수미산 중턱에서 정상을 지나 공중에 이르기까지 분포하는 육욕-천은, 하층부터 나열하면, 544호에 소개한 ⑥ 사대천왕-천(四大天王-天), 그리고 이번 545호에 살펴볼 ⑤ 도리-천(忉利-天)과 더불어, 다음 호에 살펴볼 ④ 야마-천(夜摩-天), ③ 도솔-천(兜率-天), ② 화락-천(化樂-天), ①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으로 구성된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천신들의 제왕인 천제석(天帝釋)이 관할한다는 수미산 중턱(pariṣaṇḍa)의 4대천왕천과 수미산 정상(mūrdhan)의 도리천은, 인간계를 포함한 4대주(四大洲)에서
바라본다면, 공중(vimāna)에 존재하는 천계(devaloka)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중심에 서 있으며 산들의 왕이라 불리는 수미산이 지하의 심연에서 지상으로 뻗어 나와 있는 거대한 산이자 지표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땅에 존재한다는 지거천(地居天)으로 불린다. 반면 나머지 네 개의 천계들은 수미산 정상을 떠나 공중에 존재하기에 공거천(空居天)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 543호에 소개했던 프라단(Pradhan)의 범본 구사론(3장 166/20)에서 지거천은 부미-니와신(bhūmi=nivāsin), 공거천은 위마나-니와신(vimāna=nivāsin)에 포함되어 표현되어 있는데, 이 모두는 천신(deva)이나 천자(devaputra)를 수식하는 형용사로서 전자는 ‘지표/땅(의 천계)에-머무는’을 의미하고, 후자는 ‘(특정 위치에서) 뻗어 나온 공중/허공(의 천계)에-머무는’을 뜻한다.
표제어 그런데 특이하게도 위에 열거된 육욕천은 범본 불전들에서 단 한 번도 명사로 나타나지 않는다. 각각의 천계는 거의 예외 없이 ‘…천에 속하는’의 형용사로 사용되며, 수식하는 명사는 천신 또는 천자이다. 사실 문헌들을 잘 살펴보지 않은 상황에서 그 어떤 번역어에서이든 원어이기에 병기(倂記)되는 산스크리트의 표제어 설정에는 적지 않은 오류들이 눈에 띈다. 사대천왕-천을 예로 들면, 필자가 생각하는 표제어는-비록 문헌상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ika가 빠져있는 cāturmahārāja=kāya이고, 문헌상에서 ika가 붙은 °kāyika는 ‘사대천왕-천에 속하는’으로 번역해야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경전의 이해나 번역에 있어 중요한 사항이기에 어원 이야기와 더불어 올바른 표제어 설정에도 초점을 두어 진행해보기로 한다.
| 도리천
사대천왕-천의 상부에 영역을 둔다는 도리-천은 트라야스-트링샤(trāyas=triṁśa)의 음역이고, 의역은 33천(三十三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산스크리트 사전들에서 찾아보니, 수사 ‘3’에서 장모음의 trāyas°가 아닌 단모음의 trayas°가 검색된다. 문헌들을 살펴보았더니, 『팔천송반야경』은 장모음의 형태만 보여주고, 『이만오천송경』의 경우 장모음보다 단모음의 형태가 2배 이상 더 나타나는 반면, 『십만송반야경』에서는 단모음보다 장모음의 형태가 10배 이상 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품사는 어떠할까? 모음의 장단에 관계 없이 전적으로 ‘33천의,-에 속하는’을 뜻하는 형용사로서 천신이나 천자를 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수사 ‘3+30, 33’인 트라야스-트링샷(trayas=triṁśat)에서 ‘33개(의 천계들)로 구성되는’의 형용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말의 t가 탈락되고 동시에 어두 모음의 브릇디(vṛddhi)가 작용하여 불교 혼성 산스크리트(Buddhist Hybrid Sanskrit)적인 trāyastriṁśa가 만들어졌고, 이후 서수(序數)로 사용되는 기존의 단모음 형태와 공존하면서 뒤섞여 사용된 것이 아닌가하는 필자 나름의 판단이 나온다. 그렇다면 명사로서 33천은 산스크리트로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다행히도 단 2회이지만 범본 『팔천송반야경』에 형용사가 아닌 명사로서 33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대천왕-천의 단어형성과 같은 방식인 trāyastriṁśat=kāyika이다. 이 단어의 파생과정은 먼저 수사 33에 ‘천’에 대응하는 카야(kāya)가 붙어-비록 문헌상에서 찾을 수 없는 어형이지만-명사 trayastriṁśat=kāya ‘33천’이 되고, 여기에 접미사 이카(ika)가 붙으면서 동시에 어두 모음을 장음화시켜 ‘33천에 속하는’을 뜻하는 형용사가 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팔천송반야경』의 3장 ‘바라밀다와 불탑’편에 나타나는, 해당 명사구가 포함된 산스크리트 문구와 한역본을 소개한다.
“trāyastriṁśatkāyikāḥ·devaputrāḥ·divyāni·māndāravapuṣpāṇi·abhinirmāya….”
“〔세존이 계신 쪽을 향해 흩뿌리기 위해〕33천에 속하는·천자(天子)들이·천상의·만다라화(曼陀羅花)들을·〔마법으로〕만든 후….”
그런데 이 문구는 구마라집(鳩摩羅什, T227)의 경우 “도리제천(忉利諸天) 화작천화(化作天華)”에 대응하고, 현장(玄奘, T220)에서는 “무량삼십삼천(無量三十三天) 구시화작천묘음화(俱時化作天妙音華)”에 대응하고 있다.* 밑줄 친 표현들처럼 ‘33천에 속하는 천자들’이 단순하게 다소 애매하게 번역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33천’과 ‘33천에 속하는 천자들’은 분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33천 그러면, 수미산 정상에 존재한다는 33천은 도대체 어떠한 천계들일까? 필자 역시 궁금하여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아직 33개 천계들이 모두 나열된 범본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8개 정도의 핵심적인 천계들이 산스크리트로 된 『팔천송반야경』과 『구사론』에 확인되고 있기에 이들에 관한 소개도 해 보기로 한다. 혹 한자어로 된 33천의 명칭들을 알고 싶다면**, 가우타마 프라즈냐루치(Gautama Prajñāruci), 음역으로는 고담 반야류지(瞿曇 般若流支)가 6세기에 범본을 한역했다는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 T.721) 25권을 찾아보기 바란다.*** 존재하지 않아 그 내용은 한역본을 통해서만 알 수 있지만, 산스크리트 경전 이름은 삿-다르마-스므르티-우파스타나-수트라(sat=dharma=smṛti=upasthāna=sūtra)로 알려져 있다.
* | ** 『팔천송반야경』과 『정법염처경』의 한역본들은 http://21dzk.l.u-tokyo.ac.jp/SAT/satdb2015.php 참조 |
*** 33천의 명칭들에 대해서는 https://ko.wikipedia.org/wiki/도리천 참조 |
집금강신 범본 구사론(3장 167/18)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의 사방(四方) 각각에 높고 넓은 봉우리(kūṭa)가 한 개씩 있으며, 그곳에 와즈라-파니(vajra=pāṇi)라 불리는 약사(yakṣa)들이 머문다고 한다. 전자는 탓-푸루사(tat-puruṣa)라는 한정합성어로서 ‘금강저(金剛杵)를 손에 쥐고 있는 천신’을 의미하여 집금강-신(執金剛-神)으로 의역되고, 후자는 어원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야차(夜叉)로 음역되고 있다. 불교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집금강신과 관련하여 『팔천송반야경』 17장 ‘불퇴전 보살의 성향 특성 근거’편에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다.
“수보리야,〔무상의 올바른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는〕불퇴전의 보살마하살에게는 위대한 야차인 집금강신이 항상 따라다니느니라.〔그렇기에〕그 보살은 인간이나 귀신들이 공격하기 어려운, 압도하기 힘든, 가까이하기 어려운 자이니라.”
33천 가운데 봉(峯)과 정(頂)이 포함된 주봉천(住峯天)과 주산정천(住山頂天)이 집금강신이 머문다는 봉우리들에 위치한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선견성 수미산 정상 한가운데에는 선견성(善見城)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성의 산스크리트 표제어는 수-다르샤나(su-darśana)로 알려져 있다. 범본 구사론(3장 167/23-24)에 sudarśana-m·nāma·nagara-m으로 표현되어있는 것처럼, sudarśana는 ‘아름다운-외관’을 뜻하는 중성명사이고, nāma는 ‘…라고 불리는’의 불변사와 ‘도시, 성’을 의미하는 중성명사 nagara가 따라 나오며, -m은 중성명사의 주격 표지이다. 따라서 산스크리트 문구의 전체 의미는 ‘(금과 백한가지의 색깔로 치장되어) 미관(美觀)으로 불리는 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33천 가운데 선견성천(善見城天)이 이와 관련한다.
수승전 선견성 안의 중앙에는 수승전(殊勝殿)이라 불리는 궁전이 있다고 한다. 수승-전의 산스크리트 표제어는 수승에 대응하는 와이자얀타(vaijayanta)이고, 이 용어의 파생과정과 그 의미는 대략 vi-ji- ‘싸워 정복하다’ > *vi-jay-ant- ‘싸워서 정복하는’ > vai-jay-ant-a- ‘싸움을 통한 정복’이다. 범본 구사론(3장 168/02-04)에는 vaijayanta-ḥ·nāma·prāsāda-ḥ로 표현되어있는데, 이는 ‘수승(殊勝)으로 불리는 궁전’을 뜻한다. 『팔천송반야경』 11장 ‘마왕의 소행I’편에 세존께서 수승전을 비유하여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는데, 필자가 순서를 바꾸어 편집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보리야, 충분히 성숙된 선근(善根, kuśalamūla)을 지니지 않으며 이해력이 낮고 나약한 의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6바라밀다와 연관된 경전들을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로서 반야바라밀다를 버리고, 성문과 독각의 계위(階位, bhūmi)를 경배하는 경전들을 찾아야 하며, 여기에서 전지자성(全知者性, sarvajñatā)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니라. 수보리야, 이는 마치 석공이…수승전의 크기와 맞먹는 궁전을 세우기를 바라면서, 해와 달의 지름과 둘레를 구하는 것과 같으니라….”
천제석 33천의 관할자로서 선견성 내 수승전이란 궁전에 거주한다는 천제석은 『팔천송반야경』에서 202회 언급되며, 수보리와 사리자 장로 다음으로 담론에 많이 참여하는 인물이자 천신이다. 심지어 32장으로 구성된 이 경전에서 두 개의 장에 제목으로 오를 정도이기 때문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31장 ‘상제보살’편에서 천제석은 인간계 젊은이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괴로워하는 상제(常-啼, sadā=prarudita) 보살마하살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천제석을 완전하게 표현하는 산스크리트 명칭은 범본 불전들에서 항상 devānām indra-śakra-의 순서로 나온다.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천신들의 제왕인 샤크라’이다. ‘강대한 자’를 뜻하는 샤크라는 석(釈)이라는 한자어로 음역되고, 그 순서에 따라 현장이 번역한 천제석(天帝釋)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석-제환-인(釋提桓因)은 샤크라를 뒤가 아닌 앞에 두고 음역한 경우이고, 제-석-천(帝釈天)의 경우는 indra와 śakra의 순서가 바뀐 상태에서 음역된 것이다. 후자의 명칭은 아마도 33천에 맞추기 위해 천을 마지막에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선법당 천제석과 33천에 속하는 천신들이 모여 법회를 여는 장소는 선법당(善法堂)이고, 이는 선견성을 중심으로 남동쪽에 위치한다고 전한다. 선법당의 산스크리트 표제어는 수-다르마(sudharmā)로 알려져 있다. 범본 구사론(3장 169/03-04)에는 인간들이 저지른 악행(a-kṛtya)과 선행(kṛtya)을 논하기 위해 모인다는 이 장소는 sudharmā nāma deva=sabhā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를 번역하면 ‘선법으로 불리는 신전(神殿)’이 된다. 『팔천송반야경』 4장 ‘반야바라밀다의 공덕’편에서 세존께서 천제석에게 여래의 사리(舍利, śarīra)들로 가득 찬 염부제와 반야바라밀다, 그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할 것이냐고 물으시고, 이에 천제석은 여래의 안내인인 반야바라밀다를 취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여래의 사리들 또한 공경한다며 그 이유를 사리가 반야바라밀다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여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선법당을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아뢰는 장면이 나온다.
“세존이시여, 이는 마치 제가 선법당으로 불리는 신전의 제 천좌(天座)에 앉아 있을 때, 제게 속한 천자들이 공경을 표하기 위해 제게 다가오지만, 제가 자리에 앉아있지 않을 경우, 저 대신 제가 앉아 있던 자리에 경배하고, 우요(右繞)의 예를 취한 뒤(pradakṣiṇī=kṛtya)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33천 가운데 주선법당천(住善法堂天)이 이곳에 존재한다.
그 밖의 33천 범본 구사론(3장 168/08)에 따르면, 선견성 외부의 주변 사방에 천신들의 놀이-공간(krīḍā=bhūmi)인 네 개의 유원(遊園, udyāna) 또는 숲(vana)이 있다고 하면서, 각각의 이름은 ① 차이트라-라타-웃야나(caitraratha=udyāna), ② 파루샤카(pāruṣyaka), ③ 미슈라-와나(miśra=vana), ④ 난다나-와나(nandana=vana)로 표현되어 있다. ① caitra=ratha는 ‘빛나는’의 citra와 ‘바퀴(輪)’를 의미하는 ratha의 합성어에서 브릇디를 통해 파생된 소유합성어의 형용사로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그 의미는 ‘해(日)를 갖고 있는’으로 추정되며, 여기에 유원이 붙게 되면 최종적으로 ‘해가 항상 위치해 있는, 햇볕으로 늘 가득 찬 유원’이라는 뜻이 될 수 있다. 33천 가운데 잡전천(雜殿天)이 이와 관련되어 있다. ② pāruṣyaka 또한 어원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채로운’을 의미하는 paruṣya에서 접미사 ka와 어두 모음의 장음화를 통해 파생된 중성명사로 보이고, 그 의미는 대략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있는 유원)’으로 파악해본다. ③ miśra는 ‘혼합된, 섞인, 다양한’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무엇이 그렇다는 것일까? 출처는 알 수 없으나 이 형용사에 ‘경사’를 의미하는 타타(taṭa)가 붙은 어형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전체 의미는 ‘다양한 굴곡이 있는 숲’이 되고, 자연스럽게 33천 가운데 험안천(險岸天)으로 연결된다. ④ nandana는 ‘즐거움’을 뜻하기에 이 장소의 의미는 ‘기쁨의 숲’이 된다고 볼 수 있다. 33천 가운데 주환희원천(住歡喜園天)이 이와 관련되어있다. 그리고 이 숲에는 목련(kovidāra)류에 속하는 원생수(圓生樹)로 의역되는 파리자타카(pārijātaka)란 나무들이 자라고, 그 향기가 도리천 전체를 가득 메운다고 한다. 33천 가운데 파리야다수원천(波利耶多樹園天)이 이와 관련된다.
●●다음 어원 여행은 공거천(空居天)과 관련된 용어이다.
전순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대학원 졸업.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교 인도유럽어학과에서 역사비교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시작된 한국연구재단 지원 하에 범본 불전(반야부)을 대상으로 언어자료 DB를 구축하고 있으며, 서울대 언어학과와 연세대 HK 문자연구사업단 문자아카데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팔천송반야경』(2019, 불광출판사),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반야바라밀다심경』(2012, 지식과 교양), 『불경으로 이해하는 산스크리트-신묘장구대다라니경』(2005, 한국문화사)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