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直指)로 만나는 선지식] 참다운 진리의 세계(True Reality)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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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直指)로 만나는 선지식] 참다운 진리의 세계(True Reality)로 오라
  • 범준 스님
  • 승인 2020.02.19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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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마라 존자와 용수 존자

#1 가비마라 (迦毗摩羅, Kapimala) 존자의 기억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또한 그 일이 없었다면 부처 님께서 남기신 선등 (禪燈) 을 부촉받지 못했을 것이니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기억이고, 한편으로는 스승의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할 일임이 틀림없 다. 그 일은 바로 스승인 제12대 마명 (馬鳴) 존자와의 대론 (對論) 에서 설복 당한 일이다.
당시 가비마라는 마가다 (Magadha) 국의 파탈리푸트라 (pāṭaliputra, 華氏城)
출신으로 제자 3,000명을 거느린 바라문 수행자였다. 인도 전역에 명성을 떨치며 존경받는 스승이 된 마명 존자는 밧지 (Vajji) 국의 바이샬리 (vaiśālī)
를 중심으로 교화를 펴고 있었다. 어느 날 외도의 스승인 마명 존자를 대론으로 굴복시키기 위해 바이샬리로 찾아간 가비마라는 각지에서 모여든 대중들 앞에서 마명 존자의 질문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는 굴욕을 당하고 설복하고 만다. 대론이 끝난 후 가비마라는 스승인 마명 존자에게 가르침을 구하고 불교에 귀의하였다. 스승에게 심법을 부촉받은 이후 제 13대 조사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인도 전역을 다니며 교화를 펼쳐나갔다.

#2 제자를 찾아 나서다

가비마라 존자는 여러 지역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리다 어느 때 깊은 명상에 잠겼다.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감당할 수 있는 제자에게 법을 부촉해야 할시기가 다가오는구나.” 점점 쇠약해 가는 육신을 더 이상 믿고 있을 수 없었다. 그의 교화의 역정은 서인도로 향하고, 어느 도시에 이르게 되었다. 이 도시에서 교화를 펼치던 가비마라 존자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기이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도시 근교의 산에서 북쪽으로 10여 리 더 들어가면 큰 나무가 있는데 나무의 그늘이 어찌나 거대한지 500마리의 용 (龍) 을 덮고도 남을 정도 입니다. 그 거대한 나무의 이름은 ‘용수 (龍樹) ’인데, 이 용수는 항상 자신을 따르는 용의 무리에게 설법을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들은 가비마라 존자는 ‘용수’라는 기이한 존재를 만나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신을 따르던 대중들과 함께 용수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3 의심하지 말고 참다운 진리의 세계로 오라

평소 왕래하는 인적이 드문 깊은 산에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설법하고 수행과 명상을 즐기던 용수는 어느 날 강력한 기운에 이끌려 명상에서 깨어 난다. ‘세상에 이름난 존귀한 존자께서 이곳으로 오고 있다.’ 용수는 때에 맞추어 가비마라 존자가 오시는 길목에 나아가 영접했 다. 가비마라 존자를 향해 “이곳은 깊고 적막하여 용과 이무기들만이 사는 곳인데 존귀하신 분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가비마라 존자는 “나는 그리 존귀한 사람이 아니오. 이곳에 현자가 있다 하여 만나러 왔소이 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을 듣고 용수는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해 보았다.
‘이 존귀하신 존자는 일불승 (一佛乘) 이 결정된 종성 [決定性] 을 얻어 진리를 가려내는 안목 (道眼) 을 밝히신 분일까? 어쩌면 위대한 성인의 진실한 교법 [眞乘] 의 계승자는 아니실까?’ 평소 고결한 스승을 기다리고 있던 용수는 눈앞에 나타난 가비마라 존자의 예법을 갖춘 위의에 감복하며 생각이 뒤엉켜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용수의 생각을 파악한 가비 마라 존자가 말하였다.
“그대 마음속 분별심과 의심은 다 내려놓으시오. 부질없이 내가 깨달 음을 얻은 성인인지, 진실한 교법의 계승자인지 의심하거나 판단할 일이 아니오. 지금 시급한 일은 출가 수행자가 되어 ‘참다운 진리의 세계 [眞實際] ’ 로 들어가는 것이오. 그러니 어서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고 판단해 보시오.”

#4 선등 (禪燈) 을 부촉하다

용수는 자신의 속내가 들킨 것이 부끄러워 가비마라 존자에게 예법을 갖추어 사과드린 후 단박에 자신의 의심과 분별심을 꿰뚫어 버린 스승님께 자신의 제자 500명과 함께 출가하였다. 오랜 기간 제자를 찾던 가비마라 존자는 불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이 된 ‘용수 보살’에게 “여래의 정법안장 (正法眼藏) 을 그대에게 부촉하노라”라는 말과 함께 한 구절의 게송을 전한다.

非現非隱法 드러나지도 않고 감춰져 있지도 않은 이치를

說是眞實際 참다운 진실의 세계 (True Reality) 라 하니

悟此隱現法 감춰져 있기도 하고 드러나기도 하는 도리를 알면

非愚亦非智 그제서야 어리석지도 지혜로운 것도 아니지.

----------------------------------해설----------------------------------

제13대 가비마라 존자가 제14대 용수 존자에게 법을 부촉하는 장면으로 용수 존자는 용수보살과 동일인물이다. 이 이야기의 중요 지점은 선법을 부촉하며 남긴 게송에 등장하는 ‘은현법 (隱現 法)’ 과 ‘진실제 (眞實際) ’이다.
‘은현법 (隱現法) ’이란 존재의 본질 [理] 과 현상
[事] , 근본 [体] 과 작용 [用] , 내면 [內] 과 표면 [外]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모든 존재는 나타내어 보여지는 면 [現] 과 감추어진 부분 [隱] 의 조합으로 구성, 지속, 변화, 소멸한다는 이치를 통찰하는 것, 그것 이 ‘참다운 진리의 세계’이며 진실제라 한다.
예를 들면 은법 (隱法) 의 관점에서 표현하는 진리란 이언진여 (離言眞如) 이다. 언어 관념에 의해 존재를 파악하는 인식은 언어의 틀을 유지하는한 존재의 본질을 볼 수 없게 만든다. 본질을 깨닫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틀을 해체해야 하고, 그래야만 관념화되고 고착된 언어의 틀을 벗어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현법 (現法) 의 측면에서 나타내는 진리는 의언진여 (依言眞如) 이다. 모든 존재가 독자적 상태에서 자기 동일성을 유지시켜 나갈 수 없는 무아
(無我) 임을 철저히 아는 인식세계에서는 존재를 표상화시키는 데 언어가 유용한 틀이기에 언어로 표현되는 진리의 세계에서 자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용수는 지금 가비마라 존자가 성인의 기준에 맞는지 요리조리 의심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아직 분별심을 벗어나지 못한 미혹한 습관의 잣대가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가비마라 존자는 용수의 의심과 분별심을 깨뜨려 참다운 진리의 세계는 상대적 관념을 초월한 은현이 자재한 이치에 있음을 가르쳐 용수의 인식세계를 전환하고자 한다.
‘용수라는 큰 나무가 용들에게 설법했다’라는 것은 인도의 사신숭배 (蛇神崇拜) 와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다. 고대부터 인도는 열대성 기후에 잦은 폭우로 습한 기후조건에서 뱀의 출몰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원주민들은 일찍이 사신숭 배를 하게 되었다. 아리안족은 인도를 정복한 뒤원주민들의 사신숭배를 이어받았고, 뱀을 신격 화한 개념으로 용과 용왕 등이 등장한다. 사신숭 배의 믿음이 불교에 수용되어 불법 (佛法) 을 수호 하는 호교자 (護敎者) 로 인도와 중국, 한국의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용수 (龍樹) ’의 원래 이름은 ‘나가르주나(Nāgārjuna) ’이며, 산스크리트어로 ‘용 (龍) ’을 뜻하는 ‘나가 (naga) ’와 ‘나무 [樹] ’를 뜻하는 ‘아가르주나(agarjuna) ’를 조합하여 표기했다. ‘용수라는 큰 나무가 용들에게 설법했다’라는 신화적인 표현은몇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1 마치 실제의 나가 [龍] 가바다로부터 태어나는 것처럼 용수는 진리의 영역이라는 바다로부터 태어났다.
2 용이 머무는 데는 한계가 없듯이 양극단 (兩極端) 의 두 가지 견해에 집착하지 않는다.
3 용이 보석과 같은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경전의 보고 (寶庫) 를확보하고 있다.
4 용의 용맹한 눈처럼 불과 같이 빛나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글.
범준 스님

 

 

범준 스님

운문사 강원 졸업. 사찰 및 불교대학 등에서 출재가 불자들을 대상으로 불교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봉은사 전임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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