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절을 찾는 것은 절이 좋아서이다.
절이 좋은 것은 그 고요로 해서이다.
요즈음 절은 관광객으로 시끄럽기는 해도 그것은 잠시, 그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나면 다시 귀가 째앵 하는 고요로 깊이 잠긴다. 산속에 자리한 그 마음이 우선 고요하다.
산에서는 물도, 풀도, 돌도, 모두 고요하다. 사람조차도 산에 들고 절에 안기면 고요해진다. 일상이 증발한 곳. 절에서는 우리의 삶도 말갛게 바랜다. 절에서는 모든 사물이 추상화된다.
내 발이 디디고 선 땅조차도 백지장처럼 무게를 잃는다. 무중력의 우주적 공간이 거기 펼쳐진다.
한정식
1937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하고 일본대학 예술학부 예술연구소를 수료(사진 전공)했다. ‘나무’, ‘발’, ‘고요’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작품집으로 『나무』, 『발』, 『풍경론』, 『북촌』, 『흔적』, 『고요』 등이 있다. 저서로 『사진예술개론』, 『사진-시간의 아름다운 풍경』, 『현대사진을 보는 눈』, 『사진과 현실』, 『사진, 예술로 가는 길』, 『사진산책』 등이 있으며, 현재 중앙대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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